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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최근 국내 개봉된 다큐멘터리 ‘헬로 평양’은 독일 청년 눈에 비친 북한의 요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청년들은 “이 나라에선 가이드가 보여주는 것만 볼 수 있다”면서 “두려움 때문에 누구도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지 못한다”고 불평한다. “평양은 공상과학 영화 버전 같은 도시”라고도 했다. 지난 2013년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의 딸 소피는 방북 후기에서 북한을 “현실이 조작된 나라”로 규정하면서 “북한에선 국가 차원의 트루먼 쇼가 진행되고 있다”고 썼다. 당시 아버지와 함께 평양을 방문한 소피는 자신이 만난 북한 사람들에 대해 “당국의 선전선동에 세뇌된 듯했고, 현실에 대한 자각도 없는 듯했다”며 이들을 영화 ‘트루먼 쇼’ 출연자에 비유했다.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는 모든 것이 세트장처럼 완벽하게 조작된 섬에 사는 트루먼의 일상을 그린 영화다. 20여 년 전 영화지만 상징적 메시지가 강해 여전히 많은 이에게 회자되고 있다. 20대 소피가 북한을 보면서 오래전 영화 트루먼 쇼를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이다. 북한은 트루먼 쇼가 진행되는 나라이고, 주민들은 쇼의 출연자들이라는 얘기다. 영화에선 주인공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섬을 떠나지만, 북한 주민들은 3대 세습 ‘총연출자’ 때문에 ‘영화’ 밖 세상으로 나오기 힘들다.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 와다 하루키 교수는 북한을 ‘극장국가’로 규정한다. 극장국가란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가 19세기 발리의 정치를 연구하면서 만든 개념으로 정치적인 의례(儀禮)나 행사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체제를 지칭한다. 와다 교수는 북한이 김일성 패밀리 신격화를 통해 통치된다는 점을 들어 극장국가로 규정했다. 김정은은 극장국가의 총연출자인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국민과의 대화’란 미명의 팬 미팅 토크쇼에서 현실과 괴리된 인식과 처방을 내놓았다.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청와대라는 세트장에 사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기자들의 질문은 아예 배제하고 있고 비서실에서는 특정 기자의 취재엔 응하지 말라는 지침까지 내렸다는 얘기도 있다. 문 대통령이 세상 흐름과 판이한 인식을 가진 것은 참모들이 치밀하게 만든 가공의 세트 안에서 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남북한 모두 트루먼 쇼의 나라가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