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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2년 전 정부와 여당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인 주 52시간 근무제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쳤다. 기업 규모는 물론 업종과 직종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은 무시하고 일률적·전면적 시행에 들어갔다. 68시간을 52시간으로 한꺼번에 25% 줄이면 탄력근로제나 선택근로제라도 확대해 달라는 중소기업의 간청도 물리쳤다. 지금 중소제조업은 줄줄이 조업을 줄였고 30∼40대 실업자가 쏟아졌다. 늦었지만 기획재정부 장관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보완하겠다고 약속했고, 최근에는 문 대통령도 근로기준법 재개정을 약속했다.

대통령의 약속과 장관의 약속은 말뿐이었다. 고용이 최악인데도 좋다고 선전하다 보니 주 52시간제 공약을 수정할 핑계를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선거철이라 노동계의 반발이 두렵고, 그렇다고 그대로 두면 중소기업의 조업 중단과 폐업 사태가 우려되니 고용노동부 장관이 꼼수 같은 보완책을 내놨다. 중소기업에 계도기간을 준다면서 얼마인지 밝히지 않고, 법에도 없는 경영상의 사유를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에 포함하겠다고 해놓곤 기업의 사정을 보면서 결정하겠단다.

청와대는 노동행정이 법보다 위에서 군림하도록 만들고, 장관들을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만들었다. 주 52시간제 시행부터 보완책까지 청와대 참모들이 진두지휘했다. 그나마 현장 목소리를 듣는 장관이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기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노동계와 교감하는지 몰라도 산업 현장과는 담쌓고 통계 놀음하면서 대통령의 오판을 부채질했다. 권한도 책임도 없는 청와대 참모들이 설치면서 경제성장률은 3%대에서 1%대로 반 토막 나고, 공공 단기 아르바이트 세금 일자리를 제외하면 실제 실업률은 3%에서 6%대로 2배 올라갈 지경에 이르렀다.

문 정권은 유달리 다른 나라와 비교하기 좋아한다. 그러나 비교를 잘못하면 정책 실패와 경제 실정(失政)을 합리화하고 계속 오판하게 된다. 우리나라처럼 법정 근로시간을 한 번에 25% 줄여 주 52시간제를 일률적·전면적으로 시행한 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3배나 차이가 나는데도 똑같이 적용하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크지도 않은 유럽연합(EU)은 모든 제도는 중소기업을 우선한다는 법으로 적용에 특례를 인정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근로시간 제도는 물론 노동시장 제도를 유연화해야 고용과 생산성이 올라간다고 권고한다.

중소기업 문제를 책임지는 장관, 고용 문제를 책임지는 장관, 경제문제를 책임지는 장관은 모두 어디 갔나? 장관들은 대통령에게 경제가 위험하다고, 주 52시간제를 이대로 밀고 가면 중소기업이 무너지고 대량 실업이 올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노동시장 제도를 유연화시킨다고도 말해야 한다. 결자해지(結者解之)! 문 대통령은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수뇌부를 불러 공약에 구애받지 말고 주 52시간제를 보완하고, 반드시 이번 정기국회에서 근로기준법을 처리해 달라고 주문해야 한다.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노동계는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그러나 모든 근로자와 사업체에 똑같이 적용하라는 것은 비극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주 52시간제에 대한 정권의 오판과 노동계의 집착은 위험 수위를 넘었다. 외환 위기의 내부 원인도 대통령의 오판과 노동계의 개혁 반대에 있지 않았던가. 제2의 외환위기 비극을 피하려면 문 대통령의 결단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