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에서 상연 중인 뮤지컬 ‘그림자를 판 사나이’의 한 장면. 프로듀서인 오훈식(왼쪽 사진) 알앤디웍스 대표는 “새로운 스타일로 무대를 꾸민 것이 인정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김호웅 기자

- ‘그판사’ 무대 올린 오훈식 알앤디웍스 대표

자기 그림자 악마에게 판 남자 이야기
LED 화면 활용 판타지 구현
“리허설만 네번 봤는데 만족감 커”

‘호프’로 예그린어워드서 3관왕
연극전문제작사 설립도 추진
“연극·뮤지컬 윈윈하는 구조 만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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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가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창작 뮤지컬에 대한 제도·지원 문제를 탓하기보다는 창작자가 우선 작품을 많이 만들어 관객과 소통해야 우리만의 역사가 쌓이는 거 아니겠어요?”

뮤지컬 제작자인 오훈식 알앤디웍스(R&D WORKS)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16일 저녁 ‘그림자를 판 사나이’(그판사) 개막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그의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판사’는 알앤디웍스가 만든 다섯 번째 창작 뮤지컬이다. 창작물은 해외에서 흥행력이 입증된 라이선스 작품에 비해 투자를 받기가 힘들고 캐스팅, 대관, 마케팅에서 어려움이 많다. 알앤디웍스는 그런 난관을 뚫고 지난 2013년 ‘마마, 돈 크라이’를 시작으로 ‘셜록홈즈’ ‘더데빌’을 선보였다. 올 1월엔 ‘호프(HOPE):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을 상연했고, 연말에 또 다른 창작물 ‘그판사’를 무대에 올린 것.

창작물을 이렇게 쉼 없이 만들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게 궁금해서 오 대표와 전화로, 대면으로 두 차례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 43세인 오 대표는 ‘세종, 1446’을 만든 한승원(41) HJ컬쳐 대표와 더불어 창작 뮤지컬의 기수로 불리는 인물이다. 설앤컴퍼니에서 일하다가 독립해 지난 2008년 지금의 회사를 꾸렸다. 회사 이름에 ‘연구·개발(Research&Develope)’을 넣을 만큼 독창적 작품에 대한 열망이 컸다고 했다.

“콘텐츠 회사로서 우리만의 것을 계속 만들어 히스토리로 쌓겠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있습니다. 뮤지컬 시장이 정체 상태라서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런 만큼 새로운 시선과 흥미로운 내용으로 관객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 관객들은 라이선스 작품을 무조건 편애하지 않고 창작 뮤지컬에도 점점 애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로듀서답게 차분한 표정과 단정한 말투를 지녔으나 그 속에 청년처럼 열정이 끓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제작한 ‘호프’는 제8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올해의 뮤지컬상 등 3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상을 받을 때 참으로 감회가 컸어요. 그동안 허튼짓을 하지 않았다고 인정받은 것이니까요. 저희 제작사와 함께 스태프, 배우들이 모두 합심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번에 올린 ‘그판사’가 우리 뮤지컬 무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으면 하는 소망을 피력했다. 현대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뿐만 아니라 독창적 스타일로 구축한 작품성이 평가받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판사’는 돈이 나오는 마법 주머니를 얻기 위해 자신의 그림자를 악마에게 판 남자가 주인공이다. 기이한 판타지 세계가 펼쳐짐과 동시에 물신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의 현실에 대한 통찰을 전한다. 개막 공연을 보니,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인 그림자를 표현하는 방법이 신선했다. 배우들이 독무, 군무로 그림자를 연기하는가 하면, 조명과 의상 등으로 다채롭게 구현했다. 전체적으로 검은 색조의 무대를 꾸미면서도 화려한 색감의 장면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LED 화면을 무대 안에서 활용해 판타지의 기이함을 전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정영 시인이 담당한 대본과 넘버 가사는 시적 에스프리가 넘쳤고, 우디 박의 음악은 전체적으론 에너지가 과하지만 극의 박진감을 살렸다. 조형균, 장지후 등 주역 배우뿐만 아니라 각종 춤과 노래를 소화해낸 앙상블의 흡인력이 뛰어났다. 특히 그림자 독무에서 탁월한 무용 기량을 보여준 임상희 배우가 돋보였다.

“저는 리허설만 네 번을 봤는데요, 만족감이 큽니다. 아주 새로운 게 나왔다는… 하하.”

이렇게 웃음을 보인 그가 뜻밖에 연극전문제작사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뮤지컬만 해도 벅찰 텐데, 시장 상황이 더 힘든 연극 회사라니….

“뮤지컬 무대도 결국 배우들의 공력이 핵심입니다. 연극 무대에서 연기력과 인성을 다지는 게 중요합니다. 뮤지컬과 윈윈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고 해요. 인지도 있는 선배 배우들이 나서 후배들을 지도하는 체제로 간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해요. 연극 시장이 어렵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면 관객이 봐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