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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논설위원

지난 14일 피의자 신분으로 일차 검찰에 불려갔다 나온 조국 서울대 교수는 “전직 법무장관으로서 이런 조사를 받게 돼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혐의자로 억울하다는 건지, 피의자로서 부끄럽다는 건지 애매한 표현이다. 법률 용어로 혐의자는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받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와 달리 피의자는 ‘범죄 혐의가 있어 정식으로 입건됐으나, 공소 제기가 되지 않은 사람’이다. 혐의가 적용돼 기소되면 피의자는 피고인 신분이 된다.

피의자 조 씨의 심경은, 8시간에 걸친 검찰 조사 후 변호인을 통해 밝힌 말에서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그는 부인 정경심 씨의 공소장과 언론 등에서 거론하고 있는 자신에 관한 혐의 전체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일일이 답변하고 해명하는 것이 ‘구차하고’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검찰 조사 때 입을 꾹 다물고 조사에 응하지 않은 이유를 밝힌 것이다. 여기에서 ‘구차해서’라는 말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국어사전의 풀이를 넘어 ‘새로운 용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구차하다는 말은 본래 살림이 몹시 가난하다는 뜻의 형용사다. 1930년에 출판된 ‘보통학교 조선어사전’에도 나온다. 당시에는 ‘구챠’라 적고, 간신(艱辛)·빈곤 곧 가난이란 뜻으로만 사용됐다. 그보다 12년 앞서 나온 ‘언문 주해 보통문자집’에는 ‘구차소치’ 곧 구차한 연고로 그러하게 된 것이란 뜻만 소개돼 있다. 이때의 ‘구차’는 ‘진실로 구(苟)’와 ‘또 차(且)’ 자로 이뤄진 한자어로, 두 글자 모두 구차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요즘에는 물질적인 삶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의 말이나 행동으로까지 의미가 확장돼, 떳떳하거나 버젓하지 못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병을 이유로 재판을 거듭 연기하는 것이 구차하다고 생각했는지 스스로 법정에 섰다처럼. 그 뜻은 한국의 표준어와 북한 문화어가 다르지 않다. 결국 조 씨의 ‘구차해서’는 남북 어디에서도 쓰지 않는 출처 불명의 화법인 셈이다.

그의 말을 사전 풀이대로 새기면 ‘(검찰에) 일일이 답변·해명하는 게 떳떳하지 못하고 불필요하다’는 말이 된다. 구차미봉(苟且彌縫)이란 말이 있다. 일이 잘못된 것을 임시변통으로 이리저리 주선해서 구차스럽게 꾸며 맞춤이란 뜻이다. 검찰은 패스하고 법원에서 해명하겠다는 그의 처신에 딱 들어맞는 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