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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지소미아 폐기 발효까지 열흘
文정부 無知가 동맹 위기 자초
청와대에 반미·반일 기류 감지

중국은 노골적으로 한국 무시
김정은도 한국 자산 철거 지시
9·19합의 사드3不 폐기해야

개인에게나 국가에나 매 순간이 중요하지만, 특별히 운명적·결정적 순간이 있다. 대입 수능을 앞둔 53만8734명의 입시생에겐 오는 14일 시험일이 그렇듯, 집권 후반기에 접어든 문재인 대통령에겐 앞으로 열흘이 정권의 외교 성패가 갈리는 중대한 시점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이 오는 23일 0시로 파기되면 대한민국 번영의 주춧돌 역할을 해온 한·미 동맹이 신뢰 위기에 빠지고 한·일 협력도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동맹의 원심력이 커지는 만큼 중국의 압박과 북한의 핵 갑질도 드세질 것이다.

지난주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등 고위 인사 4명이 동시 방문을 통해 지소미아의 긴요성을 설득한 데 이어, 14일 방한하는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최후 설득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직 문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10일 여야 대표와의 회동 때 언급한 “일본의 경제침탈” 표현에선 대일 항쟁의 결기를 읽을 수 있다. 방콕 아세안 + 3 정상회의 때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먼저 다가가는 성의를 보였지만 지소미아에 대해선 완강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지소미아 유지를 직접 요청하는 식으로 ‘체면’을 세워주는 게 마지막 카드일지 모른다. 조셉 윤 전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그런 아이디어도 거론했다. 그러나 가능성이 희박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소미아의 복잡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다, 생중계 방식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자신의 탄핵 청문회에 신경이 쏠려 있다.

청와대는 지난 8월 22일 지소미아 종료 발표 때 ‘국민의 자존감’을 내세웠다. 한·미 동맹과는 상관이 없다고 했다. “동맹의 신의를 무너뜨린 결정”이라고 국무부가 비판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후 한·미 양국에서 “지소미아 파기로 한·미·일 공조가 위기에 빠지고 북·중·러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지만, 청와대는 마이동풍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10일 태연스럽게 “한·미 동맹과 지소미아는 관련이 없다”고 했다. 지소미아 파기가 몰고 올 동맹 위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무시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미·일에 노(No)라고 하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겠다는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문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맞아 최근 베이징에서 중국 외교소식통과 사드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사드 추가 배치 중단,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 불참여, 한·미·일 군사 동맹 불추진을 골자로 하는 ‘사드 3불(不)’을 “임시 합의”라고 말했다. “완전 해결”이 아닌 만큼 사드 보복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특히 “그나마 3불 합의가 깨지면 한·중 관계는 끝장”이라면서 “북핵보다 사드가 중국 안보를 위협한다”고 했다. 공격용 핵보다 방어용 사드를 위험시하는 주장에서 “한·중 관계 호시절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은 북핵을 부담 아닌 자산으로 접근하면서 한국과 거리를 두고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때의 정경분리 원칙도 양국의 경제 파워가 비슷했을 때의 얘기일 뿐,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13조6800억 달러로 한국의 8배가 된 상황에서는 유용하지 않다. 중국의 든든한 후원 속에 핵보유국 행세에 나선 북한도 남북관계 재조정 입장을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0월 금강산 현지지도 때 김정일 시대의 남북경협을 ‘나라 힘이 약할 때 했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금강산 남측 시설 일방 철거 지시는 김대중 - 노무현 시대의 대남 의존 상징을 털어내고 김정은식 독자개발을 하겠다는 의지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구상이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더 커진 셈이다.

이런데도 문 대통령은 안보 공조를 해야 할 미·일엔 ‘노’라고 하면서, 중국·북한을 상대로 시진핑 주석 방한과 김 위원장 답방에 매달리고 있다. 후반기를 시작한 문 정부는 과거와의 싸움에 힘을 소진할 게 아니라 3불 합의와 9·19 평양선언 선(先) 폐기를 통해 대중·대북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 파상적인 미·중 경쟁으로 국제 정세가 신냉전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미·일에 각을 세우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가치 외교를 위태롭게 해 결과적으로 북·중 공산주의 세력을 돕게 된다. 계속 북·중에 저자세 외교로 일관한다면 실패로 갈 수밖에 없다. 남은 임기를 잘 마무리하려면, ‘노’를 외칠 대상은 미·일이 아니라 북·중이라는 사실부터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