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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인간과 비인간을 객체로 일원화할 수 있는가?

기사입력 | 2019-11-12 10:17

 변영근 작가 변영근 작가


A : “인간과 나머지 세계는 ‘평등한 객체’”… 사유의 틀 재정립해야

(11) 그레이엄 하먼(Graham Harman, 1968~)

인간·비인간 하이브리드 생산
자연·사회 근대적 이분법 한계
상호작용 객체지향존재론 제시

숲속 나무 쓰러진건 실재객체
행위력 있는 유령은 감각객체
객체, 각각 감각·실재속성 지녀

인간, 사물처럼 주체아닌 객체
구분대신 객체로 일원화하면
주·객체 나눈‘갑·을’사라져
갑질도 다시 생각하게 될 것


최근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에 푹 빠져 있는 듯하다. 많은 전문가는 4차 산업혁명의 실체를 부정하거나 ‘기술 결정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해당 개념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보통신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이와 결합된 생산 및 소비의 변화가 어떤 형태로든 일어나리라는 점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와 같은 변화에는 수많은 비인간 존재가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하며 인간이 거주하는 세계 안으로 들어온다는 특징이 있다. 알파고, 자율주행 자동차, 생활 밀착형 인공지능,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활용한 복합 현실 기기 등의 사례는 21세기 초입에 인간이 경험하고 있는 다양한 기술과학적 변화를 한눈에 보여 준다.

이런 시대상 속에서 많은 사상가는 인간이 더 이상 독립적 주체로서 객체와 유리된 채 존재할 수 없음을 지적했다. 인간이 수많은 사물과 존재론적으로 뒤얽힌다는 점에서 ‘유사 객체’ 또는 ‘유사 주체’가 된 것이다. 미국 철학자 그레이엄 하먼 또한 이들 사상가 중 하나로, 자신의 사상에 ‘객체지향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기술과학과 인간 사회의 상호작용에 대한 새로운 사유 지점을 제시한다.

하먼의 객체지향존재론은 브뤼노 라투르, 미셸 칼롱, 존 로 등이 발전시킨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과 많은 부분에서, 특히 데카르트 이후 자연과 사회를 구분하는 근대적 이분법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에서는 인간과 비인간, 주체와 객체가 네트워킹을 통해 더 많은 하이브리드를 생산한다고 본다. 기술과학이 발전하고 새로운 하이브리드가 생성되면서 주체와 객체, 사회와 자연,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근대적 이분법의 허점이 드러난다.

하먼 또한 근대적 이분법을 무효화하려는 기본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하먼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사회를 주체와 연결하고 자연을 객체와 연결하는 관점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하먼에 의하면 인간이라는 주체, 인간이 구성한 사회와 문화 등은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객체와 다르지 않다. 인간만이 주체는 아니며 모든 것은 객체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센서가 인간을 바라보고 있다면, 자동차의 인공지능이 주체처럼 작동하는 객체이며 인간은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된다. 인간을 만유의 척도로 삼아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종차별주의처럼 윤리적 논쟁을 야기할 만한 모순적 관점을 낳을 수 있다. 개와 고양이는 가족으로 대우하는 반면 소와 돼지는 음식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은 다른 동물을 종에 따라 차별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인간만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인간 이외의 존재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하먼은 인간과 나머지 세계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것을 객체로 일원화한다면 세계에서 벌어지는 문제점의 상당 부분을 해결 내지는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이 평등한 객체로서 수평적으로 존재하고 세계를 객체와 객체의 관계로 재정립할 수 있다면, 세계를 새롭게 이해하는 이론과 윤리적·정치적 실천들이 생겨날 것이다. 만약 상대방이 객체이고 나도 객체라면, 나는 주체인 갑이고 상대는 객체인 을이라는 생각 때문에 일어나는 ‘갑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까? 동식물이 객체이듯 인간도 객체라면, 공장식 사육, 도살, 동물 실험을 마구잡이로 행할 때와는 다른 관행이 생겨나지 않을까? 인간이 지구와 동등한 객체로서 연결돼 있다면, 거리낌 없이 아마존 열대 우림을 벌목하고 플라스틱 병입 생수와 비닐 제품을 남용하던 때와는 다른 생활 방식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먼을 비롯한 객체지향존재론자들은 오늘날 세계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이런 식으로 파악하고 해결하고자 한다.

하먼은 객체를 실재객체와 감각객체로 구분한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졌다면 이 사태는 실재객체다. 누군가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를 듣거나 기록했다면 그것은 감각객체다. 유령이나 귀신은 실재객체가 아니지만 사회적 실체로서 문화에 존재하고 고유의 행위력도 있다는 점에서 감각객체다. 한편 객체에는 실재속성과 감각속성 등 두 가지 속성이 있다. 실재속성은 객체에 내재된 속성이고, 감각속성은 외부에서 측정하고 감지할 수 있는 속성이다. 이를테면 블랙홀은 물리적으로 실재한다는 점에서 실재객체다. 블랙홀은 외부로 정보를 발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재속성이 있지만 현재 과학 지식으로는 블랙홀에 감각속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이와 반대로 산타클로스나 염력 등의 초상 현상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볼 수 없기에 실재속성 없이 감각속성만 있는 객체다.

이처럼 두 종류의 객체는 각각 두 종류의 속성과 연계되므로 네 가지 경우의 수가 생긴다. 감각객체의 감각속성, 실재객체의 감각속성, 감각객체의 실재속성, 실재객체의 실재속성이 그것이다. 하먼은 이를 ‘네 겹의 객체(quadruple objects)’라고 부른다. 그는 네 겹의 객체에 각각 시간, 공간, 에이도스, 본질(에센스)의 요소를 대입했다. 첫째, 감각객체의 감각속성인 ‘시간’은 의미의 획득 과정을 뜻한다. 우리가 감각객체를 경험하며 현상학적으로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매 순간 감각속성이 변화하는데 이 과정이 곧 시간이다. 기술과 사회에 대한 통시적 연구는 감각객체의 감각속성을 따라 진행하는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실재객체의 감각속성은 해당 객체의 부분임과 동시에 분리돼 있다. 부분이면서 분리돼 있는 이 상태는 연접과 이접의 문제를 발생시키며 ‘공간’의 문제로 환원된다. 기술과 사회에 대한 공시적 연구는 실재객체의 감각속성을 따라 진행하는 방법론이다. 셋째, 하먼은 감각객체의 실재속성을 ‘에이도스’라고 부른다. 에이도스는 변화하는 감각속성 외에 감각객체에 내재하는 불변의 속성을 의미한다. 특정한 객체가 갖는 대상 영속성(object permanence)은 이 텐션 때문에 가능해진다. 넷째, 실재객체와 실재속성의 텐션인 ‘본질’은 직접 접근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양자 세계에서 특정 입자의 운동량을 알 때의 위치(혹은 위치를 알 때의 운동량)처럼 이는 본질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하다. 이에 접근하려는 시도는 마치 유리수의 세계에서 무리수를 이해하거나 4차원 시공간에 거주하면서 5차원의 세계를 감각하려는 것과 같다.

객체를 세계의 근본 구조로 파악하려는 객체지향존재론은 객체에 대한 환원주의적 접근과 과도한 구성주의적 접근 모두를 배격한다. 우리는 어떤 기술적 대상이나 사회적 현상, 예술 작품을 이해하고자 이를 더 간단한 객체로 환원해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이상 근원으로 내려갈 수 없는 가장 단순한 객체를 가정하는 것은 잘못이며, 하먼은 이를 ‘언더마이닝(undermining)’의 오류라고 부른다. 또한 하먼은 이와 반대 방향의 접근방식을 ‘오버마이닝(overmining)’이라고 지칭한다. 예를 들어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데리다의 말은 모든 것을 텍스트로 오버마이닝하려는 시도다. 언더마이닝과 마찬가지로 오버마이닝적 관점이 곧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학이론이 전적으로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이해하는 스트롱 프로그램과 같은 입장은 사회라는 객체 위에 구성된 과학이론보다 더 상위 단계의 객체를 상정할 수 없기에 오버마이닝의 오류다.

세기의 전환점에 우리가 경험하는 기술과학의 급격한 발전은 주체와 객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요청한다. 하먼은 자연-사회 중합체를 둘러싸고 등장한 이슈들을 새롭게 사유하는 틀을 제공한다. 그는 초끈 이론 등의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차용해 객체지향존재론을 ‘새로운 만물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라고 부른다. 객체지향존재론이 만물 이론이 될 수 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과학의 이슈와 사회적·문화적 쟁점에 대한 사유의 틀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이는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준석 DGIST 기초학부 교수
공동기획 : 이감문해력연구소



■ 그레이엄 하먼은

분야 - 철학 - 형이상학, 사회·정치 철학, 과학기술학(기술 철학)
사상 - 객체지향존재론, 사변적 실재론
주요 활동·사건 - 사변적 실재론 콘퍼런스 개최(2007), 브뤼노 라투르와의 논쟁(2008), 마누엘 데란다와의 논쟁(2017)
관련 인물 - 마르틴 하이데거(영향→), 브뤼노 라투르(영향→, ←비판), 캉탱 메이야수(←비판, 동료↔), 마누엘 데란다(동료↔)

동시대 철학의 사변적 실재론 운동을 선도한 핵심 인물로, 객체의 형이상학에 관한 사유 체계인 객체지향존재론을 창안했다. 1968년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출생했다. 1990년 세인트존스대에서 철학 학사 학위를, 1991년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알폰소 링기스의 지도 아래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9년 드폴대에서 하이데거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를 마친 뒤 이집트로 이주해 2000~2016년 카이로아메리칸대 철학과 교수로 재임했고, 2016년 미국으로 돌아와 서던캘리포니아건축대 철학 특임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에든버러대 출판부에서 펴내는 ‘사변적 실재론’ 총서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이상의 약력에서 볼 수 있듯 대학 내 전통적 철학 학파에 속해 있지 않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그 덕분에 전통에 구속받지 않고 독창적 사상을 자유롭게 전개하고 있으며, 전통 철학보다 과학 기술학, 기술 철학, 예술 비평 등의 분야에서 더 많이 읽히고 활용된다. 한편 여타의 사상가들에 비해 쉽고 명료하고 속도감 있는 문장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박사 재학 시절 생계를 해결하고자 온라인 스포츠 매체 기자로 일하면서 현재의 문체를 터득했다고 알려져 있다.

주요 저술로는 하이데거 철학을 재해석한 ‘도구-존재’(2002) 등이 있다. 초기 사변적 실재론이 구성되던 시기에 ‘사변적 실재론을 향하여’(2010), ‘네 겹의 객체’(2011), ‘소란스러운 인기몰이’(2013)를 집필했고, 객체지향존재론을 어느 정도 완성한 뒤에는 ‘비유물론’(2016), ‘객체지향존재론’(2018), ‘사변적 실재론’(2018), ‘예술과 객체’(2019) 등을 썼다. 동료 연구자인 레비 브라이언트, 마누엘 데란다 등과 공동으로 엮고 쓴 책도 여러 권이며, 브뤼노 라투르, 캉탱 메이야수 등 다른 사상가를 명쾌하게 소개한 작업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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