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작년 영평상 시상식에 참석한 백건우·윤정희 부부. 뉴시스

아내 알츠하이머 투병 공개
청소년 오케스트라 재능기부
손편지로 음악 지망생 격려

“외롭고 희망이 없다 할 때도 음악은 저를 버리지 않았어요. 저의 친구로 격려해줬기에 참고 견딜 수가 있었어요. 그 대신에 우리는 그 진정한 친구에 대해 진심으로 존경하고 내 몸 같이 아껴야 해요.”

피아니스트 백건우(73) 씨가 음악가를 지망하는 한국 청소년들에게 손글씨로 직접 편지(사진)를 썼다. 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에서다. 아내인 배우 윤정희(75) 씨의 알츠하이머 발병 사실을 공개한 직후여서 위로를 받아야 할 처지이지만, 오히려 미래 세대의 음악 지망생을 격려하는 거장의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이날 페스티벌은 세종문화회관이 사회공헌사업으로 지난 2010년 창단한 ‘세종꿈나무 오케스트라’와 서울 서대문, 노원, 강서, 강남, 서초구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참여했다. 특히 해발 700m 높은 지대에 사는 강원 평창의 ‘꿈의 오케스트라’와 사회복지법인 ‘함께 걷는 아이들 올키즈스트라 관악단’이 함께했다.

백 피아니스트는 이날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함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1악장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4악장을 협연했다. 세종문화회관 측은 “거장이 미래 세대 아이들과 협연하는 것도 드문 일인데, 재능 기부 차원에서 무료로 나서 감동스럽다”고 전했다.

이날 공연 전 세종문화회관 분장실에서 백 피아니스트를 만났을 때,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아내 윤정희 배우의 발병이 “오래됐다”고 말했다. 윤정희 배우는 지난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알츠하이머 환자 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그 즈음에 발병 증세가 나타났다고 한다. 백 피아니스트와 딸인 바이올니스트 백진희(42) 씨는 그동안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으나, 윤 배우가 주변 사람을 몰라볼 정도로 상태가 악화하자 그를 사랑하는 팬들에 대한 공적인 의무감으로 이번에 언론에 공개했다.

백 피아니스트는 영화 팬들이 윤 배우를 앞으로도 사랑하고 응원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윤 배우는 현재 딸이 사는 파리 근교의 호숫가 마을에서 전문 의료진의 간호를 받고 있다. 딸 진희 씨가 식사를 챙기고 있다고 한다.

백 피아니스트와 윤 배우는 1976년 결혼한 이후 해외 연주 투어를 함께 다니며 늘 연인 같은 부부의 모습을 보여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백 피아니스트는 이제 혼자 해외 투어를 다녀야 하니 마음이 허전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굳건히 음악 여정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기획사 빈체로에 따르면, 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연주하기 위해 11일 출국한 후 24일 서울에 다시 올 예정이다. 오는 12월 7일 예술의전당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한다. 12월 11일부터는 쇼팽의 발라드, 왈츠 등을 들려주는 전국 투어 콘서트를 시작한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