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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이 꿈꾸는 나라

기사입력 | 2019-11-08 11:34

신의진 연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부모에게 학대받는 아이들…
의사소통 어려운 외국 노동자

먼저 다가가 도움주기는커녕
비난하고 배척하고 있진 않나

세심하게 돌보는 사회 시스템
이런 제도 없다면 아픔은 계속


지난달 23일 개봉된 ‘82년생 김지영’이란 영화가 여전히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처음 출판 때부터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꿰뚫고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결혼 후 육아를 위해 직업을 포기한 30대 한국 여성이 겪는 온갖 차별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이 소설을 나는 차마 읽지 못했다. 그래도 영화는 갈등이 좀 더 순화되었으리라 기대하고 용기를 내서 보았다. 내 기대는 맞았다. 협조적인 남편, 지영의 아픔을 치유하는 정신과 치료 등 그래도 해결 지향적 결론이 원작보다는 희망적이라 덜 아팠다. 그리고 현재 50대 직장 맘이면서, 아이들과 부모들의 심리적 문제를 치료하는 의사인 내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82년생 김지영’이 던진 사회적 의미는 세대, 성별, 개인적 성향에 따라 무척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 당사자인 30, 40대 여성들은 꼭 자신들의 처지와 같다며 폭발적인 공감을 내보이고, 반대로 남성들은 ‘우리는 눈치 보느라 더 힘들다’며 서운해하며 부모 세대는 공감 반에 (참을성이 없다고) 혀를 차는 분들 반인 것 같다. 나는 영화 속의 지영보다 더 처절했던 내 30, 40대 시절을 돌아보며 지영을 꼭 안아주고 계속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굶어 죽을 만큼 가난이 무서운 나라는 아니다. 우리 윗세대들이 희생과 노력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그 덕분에 그런대로 먹는 문제는 해결됐지만, 이후 발생한 계층 간·세대 간 갈등, 빈부 격차, 사회적 차별 등의 이슈가 해결되지 않아 주류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꿈을 잃고 절망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82년생 김지영’이 던진 수많은 의미 중에서 페미니즘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한층 더 높은 차원의 가치를 찾고자 한다. 과거 페미니즘 운동이 다른 차별적 이슈들도 조명해 더 큰 사회운동을 만들어낸 것처럼. 부모에게 학대받고 아동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들, 의사소통이 어려운 외국인 노동자들, 심지어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는 학습 장애를 가진 학생들,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사회 적응이 어려운 사람들 등 다 손으로 꼽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들은 차별받는다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제대로 목소리조차 내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 이들을 만났을 때 먼저 다가가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도움을 줄 만큼 여유가 있을까? 오히려 ‘왜 자꾸 문제를 만드느냐, 왜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못하느냐’며 비난하고 배척하고 있지는 않을까? 떨어지기 싫어하는 두 돌 아기가 엄마 옷에 일부러 구토하는 바람에 지각한 워킹맘에게 ‘쟤는 항상 지각이나 한다’는 냉정한 비난이 가해진 순간을 나는 아직도 아프게 기억한다. 주의가 산만하고 활동량이 많아 학교 적응이 어려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아동을 두고 ‘저 친구와는 어울리지 말라’며 따돌림을 조장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눌하게 말할 때 경멸의 눈으로 보는 사람들, 심지어 이들의 서투름을 악용하는 고용주들도 있다.

이 땅에서 또 다른 ‘82년생 김지영’의 설움들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우선은, 각 개인의 성숙한 자세가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뭔가 어려움이 있어 일반인들의 속도에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을 자기중심적 시각에서만 바라보고 잘 못 한다고 비난하고 소외시키는 문화는 이제 사라졌으면 한다. 개개인의 시각 변화에는 홍보와 교육도 필요하지만, 먼저 깨달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가능하다. 주변에서 특정인들에게 차별이 일어날 때 절대 외면하지 말고 부당하다고 외치고 도움을 줘야 한다. 고등학생 지영이 성추행을 당할 때 버스에서 내리게 해 보호했던 아주머니처럼. 우리 모두 모난 돌이 되어 각자 차별에 저항하고, 침묵하는 다수에게 경종을 울려야 ‘지영’을 구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다 지영이 될 수 있기에, 더는 모른 체할 수는 없다.

개인들의 성찰뿐만 아니라 사회제도의 변화도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선진국들은 차별받는 위치에 있거나 스스로 일어서기 어려운 약자들을 빈틈없이 돌보는 사회 시스템을 잘 만들고 있다. 이에 비해 선거 때 표만 의식해 약자들을 위한다며 즉흥적인 현금 배포성 복지정책을 남발하는 정치권의 무책임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적(敵)이다. 차별적 위치에 있거나 스스로 일어서기 힘든 약자에게 생계뿐 아니라 자아실현도 가능하게 하는 세심한 제도가 진정 필요하다. 그냥 함께 울어주고 안아준다고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82년생 김지영’이 직장을 포기하지 않고 육아를 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보자.

가장 먼저, 현재의 획일적 무상 보육이 아니라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도 잘 돌볼 수 있는 질 높은 보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한, 부모나 아이가 갑자기 아플 때 특별히 이들 가족을 돌봐주는 긴급 지원 제도와 유능한 아동심리 전문가들도 필요하다. 그리고 출산과 육아로 인한 노동력 공백을 보완할 수 있도록 꼼꼼하게 손질된 기업 문화와 제도를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반드시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제도가 없이는 ‘82년생 김지영’의 아픔은 계속될 것이다. 아니, 또 다른 차별받는 약자들이 영원히 확대·재생산될 것이다. 그러면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계층 간 갈등이 심해지며 국론은 분열돼 흔들리는 대한민국호가 좌초의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소외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꿈과 희망이 실현되도록 돕는 성숙한 개인, 발전된 사회제도가 진정한 미래 희망 제조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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