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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평화’ 쇼는 끝났다

기사입력 | 2019-10-23 11:44

이미숙 논설위원


김정은, 백두산 후 금강산 카드
판문점선언 1년반 만에 파탄
核 견지하며 ICBM 도발 시사

새로운 길은 체제 종말 신호탄
문 대통령, 평화 환상 버리고
韓美동맹 지소미아 복원해야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북한 비핵화 쇼가 끝날 조짐이 더 뚜렷해졌다. 올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을 제시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마침내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 카드를 꺼냈다. ‘화려한 수사’로 포장했던 남북 정상회담 합의들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의미다.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 이후 1년 반 만에 거추장스러운 ‘가식의 옷’을 벗어던진 셈이다. ‘선임자들의 의존 정책’까지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대남 합의뿐만 아니라 아버지 김정일 시대의 합의까지 묵살하겠다는 구상도 보인다. 김정은의 ‘새로운 길’은, 남북 관계가 막연한 평화 환상에서 벗어나 냉엄한 현실로 제자리를 잡을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차라리 잘된 일이다.

겉보기에 북한의 새로운 길은 소련 말기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새로운 사고를 연상시킨다. 고르바초프의 신사고는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로 이어졌지만, 김 위원장의 경우엔 단지 핵보유국을 공인받으면서 제재를 풀기 위한 협박 수단이다. 당연히 요란한 쇼와 구호만 있을 뿐이다. 스톡홀름 협상 결렬 후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2017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연쇄 도발로 한반도 위기를 높인 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대화 국면으로 선회할 때도 백두산에 올랐다. 북한 행보엔 나름의 규칙이 있다. 백두산 등정은 22개월간의 비핵화 대화 쇼를 접고 중대한 변화를 모색하겠다는 신호다. 연평도 포격과 같은 제2의 대남 도발이나 핵실험 재개, ICBM 도발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문 대통령은 물론, 탄핵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재선 캠페인에 나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겐 악몽이다. 대표적인 외교 성과가 완전히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이런 약점을 노린다. 그러나 막상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도발에 별로 놀라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 발사 등에 나선다면, 그것은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천재일우의 전화위복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 대선은 11월 초에 있기 때문에 선거 직전의 급변 상황, 즉 ‘10월의 충격(October Surprise)’이 일어나곤 한다. 이미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 미션센터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마련해놓았다. 최대 압박으로 빅딜에 집중하되, 여의치 않으면 ‘코피 전략’이나 부분 공격 또는 예방전쟁 차원의 전면 파괴에 나선다는 방안이다. 미 국방부 시뮬레이션에선 북한이 반격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됐다. 중국과 러시아 입장이 더 큰 변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다. 실제로 2017년 말엔 대북 군사공격 직전까지 갔다. 김 위원장의 새로운 길은 체제 파멸의 길이 될 수도 있다.

문 정부는 1·2차 남북 정상회담을 최대 국정 성과로 내세우면서 남북공조에 집중해왔다. 이 과정에서 한·미 동맹 관계는 느슨해지고, 한·일 관계는 최악이 됐다. 북한의 핵 포기 의지는, 문 정부가 과장해온 것일 뿐 애당초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 애매한 조건부 표현을 문 정부가 과대해석하며 비핵화 쇼를 주선해왔을 뿐이다. 만약 북한이 도발로 선회하면 대북 정책의 정당성이 붕괴하면서 ‘안보 탄핵’ 국면이 올 수도 있다. 불행히도 그럴 가능성이 커간다. 북한이 획기적 양보를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과 선거라는 두 방향에서 궁지에 몰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힘들다. 하루아침에 대화에서 대결로 선회할 수 있다. 임기와 선거가 없는 김 위원장도 전쟁 위협에는 지지 않고 맞설 것이다.

비핵화 쇼 와중에도 김 위원장은 중국과 러시아의 후견을 다져왔지만, 문 대통령은 남북대화에 매달리며 미·일과의 공조 틀까지 깨버렸다. 문 정부는 동맹의 바퀴를 린치핀으로 다시 조이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도 복원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을 ‘돈’으로 환산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축으로 한 한·미 동맹의 가치를 떨어뜨릴수록 한국이 나서서 동맹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한국은 세계 최강국이 아니라, 강대국 사이에서 동맹에 사활을 걸어야 할 나라이기 때문이다. 북한 비핵화 의지가 허구로 드러난 이상, 민족 공조의 환상에서 탈피해 한·미 동맹과 한·일 공조에 기반한 현실주의적 대북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게 북핵 앞에서 대한민국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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