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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인간은 인간 이전의 세계를 사유할 수 있는가?

기사입력 | 2019-10-22 10:10

 이부록 작가  이부록 작가


A : 인간 관점으로 포획하기 전에도… 세계는 존재했다 ‘우연히’

⑧ 캉탱 메이야수(Quentin Meillassoux, 1967∼)

사유 밖에서 절대적 실재 찾아
철학, 코페르니쿠스 혁명 시도

애초 존재에는 ‘이유’가 없고
세계는 우연하게 존재하면서
언제든 변화하거나 사라질수도

미래의 가능성 한정하는 神
부재… 이것조차 우연적 사실
절망 아닌 희망의 가능성
세계의 무의미함이란
제멋대로 사고하는 것은 아냐


◇철학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위하여

약 140억 년 전, 어떤 점에 응축되어 있던 엄청난 에너지가 대폭발을 일으켰다. 대폭발 직후 우주와 우주 내의 모든 물질, 공간과 시간이 생겨났다. 빅뱅 이론이 말하는 우주의 탄생 순간이다. 오늘날 과학은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하기 전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 진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철학은 이러한 과학적 진술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인간이 부재하는 세계에서 벌어진 사건을 인간이 사유한다는 것이 정녕 가능한 일일까?

18세기 철학자 칸트는 자신의 철학을 ‘철학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라고 불렀다. 코페르니쿠스가 천동설을 지동설로 대체했듯, 칸트는 의식이 세계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세계가 의식과 관계할 때에만 경험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세계는 이성의 구조를 통과할 때에만 경험 가능한 현상이 된다. 따라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조건을 넘어 실재 자체에 직접 도달하려는 모든 시도는 경험의 한계를 망각한 이성의 월권일 뿐이다.

칸트 이후 철학자들은 칸트의 이성을 대신해 정신, 언어, 사회, 문화 등 다양한 틀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경험을 구조화하는 선행적 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칸트 혁명의 자장 아래에 있다. 비판적 합리성은 전통 철학이 추구하던 보편적 진리가 사회적, 시대적, 인간적 편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인간과 실재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거리를 인정하는 겸손한 태도를 취한다.

캉탱 메이야수는 칸트 이후 철학의 ‘상관주의적’ 경향에 이의를 제기하고 의식 바깥의 절대적 실재를 구출하려 한다. 상관주의는 의식과 세계 자체에 대해 진술하는 일은 불가능하며 우리는 오직 의식과 세계의 상관관계에만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칸트의 철학이 세계와 의식의 밀접한 관련을 보여 주었다면, 현대철학의 극단화된 칸트주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식 밖 세계에 대한 모든 질문을 부적절한 물음으로 기각한다.

예컨대 어떤 인간도, 의식도, 생명도 존재하지 않았던 약 140억 년 전의 빅뱅에 대해 인간이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인간 이전의 세계를 사유한다 하더라도 그 사유의 주체가 인간인 이상 그것은 인간적 세계에 대한 사유에 그치는 것이 아닐까? 상관주의자는 우주의 탄생에 대한 과학의 연구 성과를 부정하지 않으나, 그 사건이 오직 과학자라는 인간을 경유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140억 년 전의 ‘사건 자체’에 대한 질문은 무의미하고 잘못 제기된 물음일 것이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계 또한 무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메이야수가 보기에 칸트의 혁명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라기보다 천동설의 옹호자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입장을 되살리려는 ‘반(反)혁명’에 가깝다. 칸트는 우주의 중심이라는 독단적 위치를 인간에게서 박탈하기는커녕 세계를 인간에 의해 구성된 것으로 끌어내린다. 이렇게 절대적 세계를 상실함에 따라 현대철학의 상관주의적 경향은 모든 사유를 개인적 신념이나 합의로 환원하는 과도한 상대주의를 낳는다. 상관주의는 보편적 가치를 비판하고 가치의 문제를 각자에게 되돌려 주려고 한다. 이 신중한 태도는 절대적 신에 대한 증명을 포기한 채 신자들 각자의 신앙심에서 신의 의미를 찾으려는 신앙주의와 유사하다. 모든 사유가 세계에 대한 하나의 편견에 불과하다면, 그런데도(혹은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유에 나름의 의미가 있다면, 특정한 사유를 그릇되었다고 비판할 수 있겠는가? 메이야수는 현대철학이 상관주의를 통해 온갖 종류의 비합리성을 승인하는 상대주의적 신앙의 도피처가 되어 버렸다고 진단한다.

메이야수는 현대의 신앙주의에서 탈출하고자 철학에 절대적 실재의 문제를 재도입한다. 절대(absolu)란 우리와의 모든 관계로부터 풀려난 것(ab-solu), 즉 인간의 사유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유 밖에서 절대적 실재를 되찾으려는 메이야수의 작업은 아직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철학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완수하려는 시도이다. 이는 칸트의 반혁명에 대항하여 인식론에 종속되었던 존재론의 문제를 철학적 논쟁의 중심부로 복귀시키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존재의 근본적 우연성

절대적 실재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메이야수가 칸트의 혁명을 무효화하고 전통적 형이상학으로 회귀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상관주의 철학이 전통 형이상학을 타당하게 비판했다고 여긴다. 세계를 총괄하는 제1원리나 필연적 법칙으로서의 절대적 실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것들은 세계에 대한 인간적 관점을 세계 자체인 양 절대화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적 실재가 반드시 어떤 원리나 법칙으로 이해될 필요는 없다. ‘형이상학적 절대’를 비판한다고 해서 상관주의처럼 절대 자체를 모조리 배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메이야수가 보기에 상관주의는 형이상학과 동일한 절대 개념을 전제하고, 절대를 인간의 유한한 인식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옮겨 놓을 뿐이다. 형이상학이 찾으려던 존재 이유의 문제는 극복되지 않은 채 영원히 미뤄진다. 세계의 존재 이유는 영원히 발견할 수 없는 것으로 신비화되고 만다. 현대의 신앙주의는 존재의 근본적 이유에 도달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면서도 존재의 심오한 이유를 끊임없이 욕망할 때 생겨난다.

형이상학처럼 존재 이유의 문제에 그럴듯한 답을 제시해서도, 상관주의처럼 답을 영원히 유보해서도 안 된다. 절대적 실재의 신비화를 벗어나려면 존재 이유의 문제에 실망스러운 답이 내려질 수밖에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메이야수가 제시하는 절대적 실재는 어떤 절대적 원리, 근거, 존재 이유가 아니라 존재의 근본적 우연성, 즉 ‘이유의 부재’를 뜻한다. 상관주의가 이유(raison)의 부재에서 존재 이유에 접근하려는 이성(raison)의 한계를 발견했다면, 메이야수는 이유의 부재를 이성의 무지와 무능력으로 보지 않는다. 이유의 부재란 이유율(principe de raison·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에서 벗어난 이성이 존재의 절대적 비이유율(principe d’irraison)을 포착하는 적극적인 앎의 지점이다. 메이야수가 보기에 세계의 근본적 이유를 발견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애초에 존재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는 이유 없이 우연적으로 존재하며, 언제든 이유 없이 변화하거나 사라져 버릴 수 있다. 존재에 대해 유일한 필연적인 진술은 존재가 우연적이라는 것뿐이다.

메이야수는 존재의 절대적 우연성이 오직 수학을 통해 사유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필연적 질서에 천착했던 고전 수학과 달리, 현대수학은 모든 집합의 집합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함으로써 세계의 근본적 비이유율을 드러냈고 여러 무한 사이의 구분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유한성 바깥을 사유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런 이유로 메이야수의 철학은 ‘수리 형이상학’이라고도 불리는데, 그는 더 나아가 순수 형식적인 수학의 기호들이야말로 세계의 무의미를 전면에 드러내고 우연적 절대에 가닿을 수 있다는 점을 논증하려 한다. 우주의 탄생, 지구의 형성과 같은 사건들은 항성 발광이나 방사성 동위 원소 등의 증거를 통해 수학화할 때에만 인간적 세계 바깥을 향하는 가설이 된다. 인간과 무관한 실재를 포착하는 수학의 역량은 우리를 ‘거대한 바깥’으로 되돌려 보낸다. 여기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존재하는 세계, 언제나 다르게 변화할 가능성을 유지하는 세계를 사유할 때 비로소 철학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가능할 것이다.

◇사변적 윤리학을 향하여

인간적 세계 바깥에서 존재의 근본적 우연성을 발견하는 작업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메이야수는 우연적 세계를 다루는 자신의 존재론이 어떤 윤리학적 지향과 합쳐져야 한다는 점을 꾸준히 강조한다. 최근 그는 자신의 박사 논문 ‘신적 비실존’의 주제를 ‘유한성 이후’에서 전개한 존재론적 전망과 조화시키고 있다. 메이야수의 우연적 세계에는 질서와 정의를 보장하는 신이 존재하지 않지만, 이 부재 역시 우연적 사실에 불과하다. 미래의 가능성을 일거에 한정하는 신도, 신적 정의의 필연적 부재도 없는 세계에서 신의 우연적 부재란 절망의 필연성이 아니라 희망의 가능성이다. 이는 우연적 세계의 무의미함이 세계를 제멋대로 사고하는 일을 허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세계의 무의미함과 우연성을 허용하는 절대적 조건들은 희망할 수 있는 미래의 양태들을 명확히 한정하고 선별한다. 메이야수는 ‘유한성 이후’에서 발견한 존재론적 우연성의 문제를 실마리로 삼아, 그 자체로 다르게 존재할 수 있는 세계에서 어떻게 다른 미래를 희망할 수 있을지를 논한다.

엄태연 낭테르대 철학과 박사과정
공동기획 : 이감문해력연구소


■ 캉탱 메이야수는

분야 - 철학 - 실재론·유물론
사상 - 사변적 실재론·유물론
주요 활동·사건 - 사변적 실재론 운동, 2세기 넘게 이어진 칸트주의 비판

포스트 구조주의 이후 가장 주목받는 프랑스 철학자로, 칸트 이후 한 세기 넘게 이어진 주류 유럽 철학에 반기를 들었다. 첫 저서 ‘유한성 이후’로 지성계 전반의 주목을 받았고, 영미권의 젊은 사상가들에게 특히 큰 영향을 끼쳤다. 이를 계기로 ‘사변적 실재론’이라는 신진 철학 운동의 중심 인물로 부상했으며, 과거 자크 데리다가 미국 지성계에 등장했던 상황에 비견하기도 했다.

1967년 파리에서 마르크스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메이야수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철학을 접했다. 고등사범학교 재학 시절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읽고 자신만의 철학을 세우는 데 본격 착수했다. 1991년 교수 자격 시험을 준비하며 알랭 바디우의 ‘존재와 사건’을 읽고 당시 구상하던 근본적 우연성 개념에 수학적 토양을 접목하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1997년에는 헤겔 연구의 권위자 베르나르 부르주아의 지도 아래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알랭 바디우, 이브 뒤루와 함께 국제현대프랑스철학연구센터의 창립에도 참여했다. 소설가 겸 고대·중세 철학가 그웨나엘 오브리와 결혼했고, 현재 파리 판테온소르본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6년 첫 책 ‘유한성 이후’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책에서는 인간과 세계의 상관관계만을 고찰의 대상으로 삼는 칸트 이후의 비판 철학을 ‘상관주의’라고 규정하고 비판했다. 또한 어떤 의식에도 주어지지 않는 ‘선조성’이라는 개념과 존재의 필연적 우연성이라는 문제를 고찰했다. 이듬해에는 동료 철학자 그레이엄 하먼 등과 함께 ‘사변적 실재론’ 콘퍼런스를 개최해 철학이 절대적 실재를 새롭게 발굴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 후 ‘형이상학과 과학 밖 소설’에서 아이작 아시모프의 과학 소설을 예시로 삼아 과학 소설과 ‘과학 밖 소설’의 차이를 지적했고, 인과적 과학 법칙의 안정성이 무너진 세계를 어떻게 그려낼지를 모색했다. 2011년작 ‘수와 세이렌’에서는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 ‘주사위 던지기’에 등장하는 수적 유희와 우연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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