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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범 썸랩 대표

개인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는가.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는 어느 수준까지 용인돼야 하는가. 인터넷이 삶의 한 부분이 된 현대사회에서 각국이 안고 있는 공통된 고민 중 하나다.

이런 점에서 지난 14일은 닷새 앞선 한글날보다 ‘글’의 힘을 더 지독하게 생각하게한 하루였다. 이날은 가수 겸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날이다. 평소 우울증을 앓았던 설리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주된 이유로 악플이 지목된다. 평소 소신을 생활 속에서 행동으로 보여주는 설리의 모습에 “참 단단한 청년”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런 그마저도 악플러의 ‘사이버 테러’에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한 것이다.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 숨어 온갖 조롱과 인격 모욕의 말을 쏟아놓고 희열을 느끼는 자들은 ‘손가락 살인자’나 마찬가지다. 인터넷상에서의 악플은 그 공간을 가리지 않고, 전파성까지 크다는 점에서 그 부정적 영향력은 더 가공스럽다.

썸랩이 운영하는 네이버 연애·결혼 주제판에는 연인의 사랑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는데 이런 사랑의 공간에도 악성 댓글은 빠지지 않는다. 외모 평가는 애교 수준이고, 성희롱과 외설적인 말도 부지기수다. 외국인 연인을 둔 커플 이야기에는 인종차별 댓글도 서슴지 않는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공감이 이어지다가도 댓글에 악플이 한둘 등장하면 분위기가 한순간 확 바뀐다. 자정 댓글이 달리기도 하지만, 자극적인 악플에 맞장구치는 댓글이 이어진다. 한번 악플로 물들기 시작한 댓글창이 깨끗해지긴 쉽지 않다. 살인 무기가 돼버린 이런 악플에 희생당한 사람들은 11년 전 최진실을 비롯해 현재진행형이다. 악플 피해자가 생길 때마다 온 사회가 비통해하고 가슴 아파하지만, 손가락 살인자들은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악플러에게 자제와 선처를 호소하는 방법 외에 악플 살인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무엇보다 댓글 문화 개선이 시급하다. 우리 스스로가 악플에는 악플임을 지적하는 댓글을 달며 악플러가 더는 활동하지 못하도록 당당히 맞서야 한다. 더불어 제도적 차단책도 고민해야 한다. 인터넷실명제가 2012년 헌법재판소로부터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언론의 자유까지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이 나온 바 있지만 또다시 인터넷실명제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면적인 인터넷실명제가 어렵다면 ‘댓글 부분 실명제’라도 이젠 도입을 고민해야 한다. 포털업계도 자율적인 악플 자정·차단 기능 도입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이 같은 악플러의 횡행은 갈수록 거칠어지는 한국 정치·사회적 갈등과도 그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처절한 반성도 필요하다. 정치권이 앞장서는 선동 풍조, 양보와 타협의 가치를 삼켜버린 진영논리의 범람 등으로 인터넷 언어는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는 원칙적으로 제한받지 않는 게 바람직하지만, 자율 정화 없이 무제한의 ‘인터넷 자유’를 요구할 수도 없다. 우리에겐 주먹을 휘두를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는 상대방의 코앞에서 멈춰야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