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독서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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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문화부장

정확한 데이터 집계를 해보진 않았지만, 통상적으로 큰 사회적 사건이나 대규모 이벤트가 있을 때는 책이 팔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총선이나 대선, 월드컵이나 올림픽, 또 대형 스캔들이나 사건이 있으면, 출판사는 자발적으로 판매 전망을 낮춘다. 그리고 이 전망은 대개 틀리지 않는다. 주변에서 소설보다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지고, 스티븐 킹의 스릴러보다 더 마음을 졸이게 하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그 어떤 판타지보다 상상 초월에 기존 장르 문법을 걷어차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책에 집중할 마음의 여유도, 깊게 생각할 시간도 없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2019년 10월 지금 한국 사회가 그렇다.

정치는 요동치고, 경제는 추락해 내 삶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다. 이에 대한 뉴스와 그 이상 쏟아지는 가짜 뉴스의 교차로에서 편이 갈리고, 소통 통로가 꽉 막힌 듯 답답한 마음에 ‘광장’으로 나서야 하니 책 볼 시간은 정말 없다. 실제로 현재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어린이 만화 ‘흔한 남매’가 몇 달째 1위다. 어린이 책이라고, 만화라고 베스트셀러 1위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흔한 남매’를 필두로 한 고만고만한 베스트셀러 목록은 책 볼 여유가 없는 한국인의 ‘바쁜 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실, 지금이야말로 책을 읽어야 할 때다. 우리가 맞고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한 일목요연한 설명을 서점가의 책들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한국적인 특수 상황인 동시에 전 세계에서 동시에 진행 중인 시대적 흐름으로 지난 몇 년간 이를 분석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 민주주의 연구가 두 명이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최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놀랍게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무너졌음을 분석하고 있다. 이들이 밝히는 민주주의 붕괴의 명백한 신호는 경쟁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인, 언론을 공격하는 선출된 지도자 등이다. 또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헌법 같은 제도가 아니라 상호관용이나 규범이라며 이들이 무너질 때 민주주의도 함께 허물어진다고 했다. 책이 전하는 상호 관용은 다른 의견도 인정하는 정치인들의 집단 의지, 규범은 자신의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이다. 얼마 전 젊은 두 사회학도가 쓴 ‘공정하지 않다 - 90년생들이 정말 원하는 것’과 미국 30대 저널리스트의 ‘밀레니얼 선언’은 조국 전 장관 정국에서 벌어진 공정 세대론 문제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또 미국 법학자의 ‘병목 사회’는 기회가 어떻게 병목현상으로 정체돼 사회 문제로 발화되는지를 보여주고 경제 전문가 리처드 리브스의 ‘20 vs 80의 사회’는 기존의 1 대 99의 구도에서 벗어나 상위 20%, 중상류층의 위선과 불공정한 행위를 비판하며, 이들의 반성과 도덕적 책무를 요구한다. 이 모두 우리의 현 상황에 대한 해석과 분석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흔한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개별 사건에 흥분해 온·오프 광장으로 나아가 진영논리로 치달아가기보다는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진행형 문제들을 동시대적 큰 흐름 속에서 다시 성찰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그래야 합리적인 해결책도 마련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광장에서도 책을 펼쳐야 한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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