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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하며 살거나, 악당이 되거나… ‘양극화’ 세상에 분노하다

안진용 기자 | 2019-10-11 10:53


■ 영화 ‘기생충’ - ‘조커’가 던지는 계급의 문제

‘기생충’의 반지하방 가족
정신병藥도 못사먹는 ‘조커’

韓·美 사회 공통의 문제인
‘빈부격차’에 관한 이야기

‘불편한 진실’ 보여주지만
흥행엔 성공… 공감 불러내


“한국, 미국, 유럽 모두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다. 나는 매우 유니크하고 낯선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기로 결심했다.”

영화 ‘기생충’으로 칸국제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은 봉준호 감독은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LA 아크라이트 시어터에서 열린 ‘기생충’ 프리미어 행사에 참석한 후 할리우드리포터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기생충’은 양극화에 대한 이야기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둘러싼 계급 이슈를 다루기 위해 봉 감독이 내세운 ‘지하실’이라는 공간은 예술가로서 그가 말한 ‘유니크하고 낯선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칸국제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조커’(감독 토드 필립스)는 어떠한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코미디언이 되길 꿈꾸는 소시민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이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조커가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세심하게 그린 이 영화 역시 결국은 고담시(市)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사회 양극화와 그에 따른 충돌을 보여준다. 그리고 필립스 감독이 보여준 유니크는 단연 조커의 재해석이다.

‘기생충’과 ‘조커’의 공통분모는 빈부 갈등이다. 주인공은 가난하다. 그리고 그들 곁에는 물리적 거리만 가까울 뿐, 발버둥쳐도 도무지 닿을 수 없을 만큼 먼 곳에 위치한 부자들이 산다. 두 주인공은 생활 속에서 가난을 체득한다. ‘기생충’의 기택(송강호)은 비가 오면 살림살이가 물에 잠길 것을 걱정해야 하는 지하방에 살지만, 그가 모시는 성공한 사업가 동익(이선균)의 아들은 비가 오면 저택 마당에 나가 비가 새지 않는 천막 안에서 인디언 놀이를 즐긴다. 플렉 역시 연장정부의 재정 지원이 끊겨 더 이상 공짜 심리상담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약은 어떻게 받아요?”라고 물을 수밖에 없는 누추한 인물이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양극화로 인한 분노를 집단이 아닌 철저히 개인에게 응축시킨다. 두 주인공의 극단적 행위를 촉발시킨 근간 역시 지극히 개인적이다. 기택에게는 ‘냄새’였다. 기택은 신분을 위장해 부유층의 삶 속에 편입했다고 생각했지만, 동익은 “냄새가 자꾸 선을 넘는다”고 말한다. 가난이라는 공기까지 바꿀 수 없었던 기택이 벽에 부딪힌 셈이다. 결국 기택은 냄새 때문에 코를 싸잡는 동익을 칼로 찌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기택의 냄새가 ‘조커’에서는 플렉을 향한 ‘조롱’으로 치환된다. 그는 마지막까지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꿈은 잃지 않으며 당대 최고의 엔터테이너인 머리 프랭클린(로버트 드니로)을 동경한다. 하지만 프랭클린이 격려를 가장해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플렉은 조커로서 본색을 드러내며 폭주하기 시작한다.

두 영화를 본 대중의 공통적인 반응은 ‘불편하다’이다. 하지만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은 흥행에 실패한다는 속설을 딛고 ‘기생충’은 한국에서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고, ‘조커’는 북미에서 개봉 후 사흘간 9350만 달러(약 1115억 원)를 벌어들이며 역대 10월 개봉작 첫 주 오프닝 신기록을 세웠다. 불편함을 딛고 관객들이 두 영화를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잘 만든 영화인 동시에 관객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현실 속에서 양극단 중 한 곳에 속해 있거나 양극단의 대립을 경험한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대목이 있다는 의미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교수는 “‘조커’와 ‘기생충’뿐만이 아니라 최근 할리우드 독립영화들도 계급 문제를 많이 다루고 있다. 이런 영화들이 왜 나오게 됐는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정권을 잡은 후 많은 자유주의 가치가 흔들리면서 계급 간 대립이 격화되고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영화에 반영된 것”이라며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겪는 문제라 할 수 있는데 봉 감독도 그런 관점을 ‘기생충’에 담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주인공의 심리를 지지하게 되는 경향을 띤다. 이 때문에 양극단의 대립 속에 극단적 폭력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기생충’과 ‘조커’와 같은 영화가 악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과 그들의 불법적 행위에 당위를 부여한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지엽적이다. ‘기생충’의 기택은 살인을 저지른 후 지하실에 갇힌 채 감옥과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된다. ‘조커’의 경우 사회적 안전장치의 부재가 결국 악인을 잉태하게 됐다고 웅변할 뿐, 그의 행위를 지지하지는 않는다. 이 교수는 “플렉이 조커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연방 정부가 재정 지원을 끊어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플렉이 더 이상 약을 먹지 못하고, 상담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조커’는 사회적 시스템의 미비를 꼬집는 분명한 메시지를 담았다”고 덧붙였다.

봉 감독 역시 “영화의 아름다움과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싶었다”며 “혁명적인 목적을 위해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양극단 현상이 불러온 부조리를 다뤘을 뿐, 기택의 분노와 불법적 행위를 옹호한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은 셈이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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