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수 장군 무덤 앞에 무릎 꿇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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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주 예비역 육군대장 前 제2작전사령관

조국의 위선 국민 모두 아는데
개혁 아이콘 자처하는 철면피
적폐청산 인격살인 책임도 커

40년 헌신한 將軍 지독한 모욕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 느껴야
인권 운운 말고 당장 사퇴해야

가족 비리의 책임자이자 피의자인 사람이 법무부 장관이라며 개혁을 부르짖고 다닌다. 대통령까지 나서 불법을 수사하는 검찰을 압박할 정도로 ‘조국 사태’는 점입가경이다. 지난 2년 그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진행된 ‘적폐청산’은 국가권력을 이용해 반대 세력을 약화시키고 정권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의도였음이 분명해졌다. 그 자체로 국정농단이고, 청산 대상이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과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적 가치를 지켜온 우리 사회 주류였다는 점에서 반(反)헌법적 반역사적이다. 정부 부처별로 각종 위원회를 급조해 이전 정부의 실정을 파헤치는 것이 현 정부 전반기 국정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법의 심판에 앞서 여론재판이 진행되고, 조롱과 수모를 통한 인격살인이 뒤를 이었다.

이런 근본적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지난 정부의 탄핵을 딛고 등장한 정권이라면 흩어진 민심을 통합해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철저하게 편을 가르고,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주적(主敵)인 양 간주하면서 그들을 상대로 싸워 왔다. 그러한 국가권력 남용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 개혁의 아이콘인 양 행세하는 모습이 낯 뜨겁다. 장관으로 임명된 덕에 국민이 그의 본모습을 자세히 알게 된 것은 슬픈 코미디다. 국민이 더 놀라는 것은 그의 비정상적인 이기적 삶의 궤적이 아니라,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위선과 이중성이다. 동물의 왕국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을 인간 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우선, 조국 씨는 이재수 장군(將軍)의 무덤에 가서 무릎을 꿇으라. 민정수석 재임 당시 현 정부는 이 전 기무사령관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필자는 기갑병과 장교로 임관해 군 생활 40년의 대부분을 탱크 및 장갑차와 지내왔다. 기계화부대가 야외 훈련을 할 때 기무부대는 훈련 지역 주민들이 불편을 느끼거나 해를 입을 수 있는 조건 등을 파악해 지휘관에게 조언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는 전 국가적 역량이 집중됐던 터라 군 역시 많은 장비와 병력을 투입했고, 투입된 군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당연히 기무부대가 현장에서 함께 활동했을 것이다.

기무부대가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이 전 기무사령관은 포토라인에 서서 당시 기무부대는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했으며 한 점 부끄럼이 없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그러나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에 들어선 그는 포승줄에 묶인 채로 언론에 노출됐다. 나라를 위해 40년 동안 헌신한 장성을 흉악범 취급해 포승줄에 묶어 언론에 공개한 것이다. 법원이 도주의 우려가 없고 범죄 혐의에 다툴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한 것으로 보아 이 장군을 흉악범 취급한 것은 모욕을 주기 위한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 전 기무사령관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참담한 죽음 앞에 당시 민정수석이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이 전 기무사령관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 자기 자신과 관련된 일에는 인권과 인륜을 거론하고 있으니, 그의 지독한 이중성을 다시 느끼게 된다. 그의 재임 기간에 일어난 계엄령 문건 파동만 해도 그렇다. 군대에서 유사시를 가정한 다양한 대비는 군의 고유 임무다. 군대를 허물어 버리겠다는 의도가 아니고서야 군 통수권자가 해외에서 비장하게 수사를 지시할 사안이 아니었다. 이것도 민정수석이 건의했을 것 아닌가.

필자의 경우는 또 어떠한가. 당시 국민은 ‘공관병 갑질’이란 자극적 선동에 묻혀 그 뒤에 가려진 국가권력 남용의 실체를 볼 수가 없었다. 이미 민간인 신분이 된 사람을 의도적이고 불법적으로 군인 신분을 유지시킨 후 군사법원에 기소한 사법농단 사건이다. 민간인 신분의 상태에서 87일간 군 영창에 구금함으로써, 민간인을 군사법원에 세울 수 없다는 헌법 제27조를 고의로 짓밟은 것이다. 당시 군 수사관은 자기들은 상부의 지시에 따를 뿐이며 주기적으로 수사 상황을 청와대에 보고해야 한다고 불평했다. 그렇다면 그 보고를 받는 청와대 부서는 민정수석실이 아니면 어디란 말인가.

이 모든 권력 남용과 관련된 사람이 권력기관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인권과 검찰 개혁을 논할 자격이 없다. 더 늦기 전에 이재수 장군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 후 사퇴하는 게 마지막 남은 도리일 것이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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