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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규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

고령화 따라 노후자금 더 필요
DLF 피해자 상당수가 노년층
금융상품 복잡성 이해에 취약

일순간에 노인빈곤층으로 추락
고위험 상품 판매 禁止론 미흡
표본상품 등 적극 대책 내놔야

지난 1994년 세계은행(IBRD)이 펴낸 ‘고령화 위기를 방지하면서’라는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화 시대에는 노후를 공적연금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노후대책을 위해서는 공적연금과 더불어 직장연금 그리고 개인저축 등 다층적 방법을 통해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한국 사회도 2019년 현재 65세 이상의 인구 비율이 14.9%로 이미 고령사회로 진입했고, 2030년에는 24.1%로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보고서에서 제안한 방법을 통해 노후를 맞이해야 하는 시대에 이미 들어섰다. 국민 대부분이 국민연금, 퇴직연금 그리고 개인저축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노후를 위해 적립하고 있는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의 경우 대규모 자금을 전문 운영기관에 맡기는 것과는 달리 개인저축은 소규모 자금을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를 개인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최근 금융권에서 판매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에 투자한 개인들이 원금에도 훨씬 미치는 못하는 손실을 봐 사회적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피해를 본 개인 투자자들의 상당수가 노후를 위해 오랫동안 마련한 목돈을 투자한 노년층이라는 점이다. 문제가 되는 두 은행에서 판매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투자자 중 65세 이상의 노년층이 3분의 1이나 돼 노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심각하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되는 저금리 환경에서 개인저축을 통해 노후 대책의 방편으로 삼으려던 노인 투자자들은 어쩔 수 없이 안전한 저축성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찾아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태를 맞아 투자자들의 집단소송이 예고되는 가운데, 금융정책 당국은 고위험 상품을 투자자들에게 권하는 과정에서 불완전 판매가 없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대책은 사후적으로 문제를 수습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향후 있을 유사한 사태를 방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2003∼2013년 10여 년 동안 영국의 중앙은행 총재를 지내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했던 머빈 킹도 아무리 정교한 수학을 기반으로 설계된 파생상품이라 할지라도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과거 경험이 없다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파생상품의 높은 불확실성을 지적한 바 있다.

만일 판매자가 투자자들에게 정확한 설명을 통해 완전판매가 이뤄졌다 하더라도 과연 노인 투자자들이 해외금리, 환율 등을 연계한 복잡한 구조를 갖는 금융 상품의 안정성을 판단할 수 있을지 매우 의문시되기 때문이다. 국내외 금리·환율 그리고 이에 영향을 미치는 향후의 국내외 경제 상황에 대한 예측은 전문가들에게도 쉽잖은 일인데 노년층 투자자들이 이런 판단을 통해 의사결정을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개인은 자신의 노후 자금이 얼마나 필요한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저축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도 노후를 위한 저축을 개인들의 역량에 따른 의사결정에만 의존할 수 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고령인구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 지금, 정부는 노년층에 고위험 금융 상품을 권유하는 것을 금지(禁止)하는 소극적인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년층 투자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장할 수 있는 표본적 금융 상품을 개발하고 소개하는 적극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개인저축의 잘못된 투자 결정은 자칫 중산층 노인들을 정부 보조에 기댈 수밖에 없는 노인빈곤층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 이런 경우 치러야 하는 재정 부담과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면 정책의 필요성은 충분하다.

복잡한 구조의 금융 상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교육과 더불어 특히 노인들이 안정적으로 투자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역할은 고령화 시대에 필요한 금융정책이자 복지정책이다.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들의 역할도 필요하다.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금융기관들은 시각을 넓혀 본연의 영역인 금융 분야에서도 사회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노년층을 위해 안전한 금융 상품을 개발·제공하는 역할이야말로 고령화 시대 금융기관의 중요한 역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