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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구(1933~1979)

나이가 들어서인지 불현듯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부와 명예 한 점 남기지 못하시고 홀연히 가신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는 나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한 유산을 남기셨음을 깨닫는다.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다. 중소제조업을 경영하시느라 늘 자정 무렵 집에 오셨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와의 대화는 거의 없었다. 셋째인 내가 네 명의 아들 중 유일한 현역병으로 전방에서 생고생할 때 먼 길 면회를 오셨다. 한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 아버지는 “어떠냐? 군대 힘들지?”라며 말을 꺼내시더니 술 서너 잔에 본인의 군 생활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다. 그러고는 긴 시간을 내기 어렵다며 서둘러 돌아가셨다.

몇 달이 지나 혹한과 폭설로 버스마저 멈춘 겨울날 다시 홀로 면회를 오셨다. 통닭 한 마리 가슴에 품고 무릎까지 찬 눈길을 헤치며 숨찬 걸음으로 산을 넘어오셨다. 외박을 나와 밤새워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버지와 그렇게 길고 많은 얘기를 나눈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다음 날 아침 첫차로 떠나시며 차창 너머로 뭐라 하셨는데, 짐작건대 “잘하렴, 늘 아버지가 지켜볼게”라고 하신 것 같다. 버스는 아스라이 멀어졌고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두 달 후 부고가 날아들었다.

평소 과묵한 아버지는 늘 온화했고 사람을 편하게 대하셨다. 한 번도 내게 인상을 찌푸리거나 역정을 내시지 않았다. 아버지는 석가모니의 무재칠시(無材七施·돈이 없어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일곱 개의 복) 중 삼시(三施)를 실천하셨다. 이것이 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주신 소중한 유산이다. 환한 얼굴로 남을 대하는 화안시(和顔施), 격려와 양보의 말을 전하는 언시(言施),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남의 괴로움을 헤아리는 심시(心施)이다.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온화한 미소의 아버지가 더욱 그립다.

아들 이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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