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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성대수술후 은퇴도 생각… 묵언수행 1년만에 고음 되찾아”

김인구 기자 | 2019-09-20 10:46

이승철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개인 녹음실에서 11집 수록곡 ‘마이 러브(My Love)’를 부르며 오디오를 점검하고 있다. 이승철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개인 녹음실에서 11집 수록곡 ‘마이 러브(My Love)’를 부르며 오디오를 점검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 1년만에 전국투어 가수 이승철

작년 10월 수술후 술도 끊어
다시 노래 못할까 두려웠다

수술 성공적…성대에 힘생겨
목소리 20년은 젊어진 기분

가족들 있어 견딜수 있었어
후배들에 늘 결혼하라 권해

조용필은 정말 대단한 선배
형님과 같은 가수 되고 싶어

CCM·동요·트로트 가미된
4년만에 13집 앨범 준비중

내년부터 ‘시즌별 공연’ 준비
봄엔 재즈·여름엔 워터파크


목 성대 수술로 1년간의 휴식기를 거쳐 돌아온 가수 이승철을 만났다. ‘보컬의 신(神)’으로 불리지만 집에서는 딸의 연애사를 챙기는 아빠인 데뷔 34년 차 가수 이승철이 말하는 나의 노래, 가족 그리고 멀리 보고 음악을 해야 할 나이에 새롭게 꿈꾸는 시즌별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날카롭던 턱선이 둥글둥글해진 지는 벌써 몇 년이 됐다. 높고 예리하게 솟구치던 고음에도 슬쩍 힘이 빠졌다. 게다가 요산 수치가 높아 통풍약을 먹고 있다. 하지만 그가 ‘라이브의 황제’이고 ‘보컬의 신(神)’이라는 데 이의를 달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오는 10월 5일부터 전국투어에 들어가는 가수 이승철(53)을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개인 녹음실에서 최근 만났다. 투어를 앞두고 녹음실은 다소 들뜬 분위기. 공연 스태프들이 장비를 챙기고 세트 리스트를 점검하고 있었다. 이승철은 “꼬박 1년 만의 공연입니다. 지난해 목 성대 수술로 약 1년간 본의 아니게 긴 휴가를 보냈어요”라며 “음악을 할 수 없는 시간이 생각보다 답답하고 괴로웠지만 가족들이 있어 견딜 수 있었습니다”고 말했다.

이승철은 지난해 10월 난생처음으로 성대에 칼을 댔다. 직업상 성대를 혹사하다 보니 작은 폴립(물혹)이 생겼다.

“성대는 매우 예민한 조직이에요.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하이(고음)가 안 되고 목이 쉬고 피치(음정)가 안 맞고… 진찰을 받으니 폴립이 있다고 수술받으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놀랐죠. 수술해도 괜찮을까, 이전처럼 노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러나 안 하면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죠.”

가수들은 종종 성대결절이라는 질환에 시달린다. 성대를 무리하게 쓰면 탈이 나는 일종의 직업병이다. 그러나 성대결절은 수술보다 보존치료를 우선으로 한다. 그만큼 실제로 수술하는 일은 드물다. 이승철은 수술이 불가피했다. 걱정이 없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론 수술이 너무 잘돼서 다행이에요. 지난해 10월 2일 했으니까 이제 거의 1년이 다 돼 가네요. 성대가 20년은 젊어진 기분입니다. ‘희야’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네버엔딩 스토리’ 등 제 노래가 무척 고음이잖아요. 솔직히 한 5년 전쯤부터는 키(Key)를 반 정도 내려서 부를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수술 후에는 다시 원래의 키로 불러요. 고개를 뒤로 젖히지 않아도 가성이 짱짱하게 올라가요. 오히려 성대의 힘을 줄여야 할 정도예요. 하하.”

30년 넘게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얻은 여유와 긍정적 마인드, ‘슈퍼스타K’ 심사위원으로 활동할 때의 카리스마가 여전했다. 우울한 상황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재치도 녹슬지 않았다. 하지만 수술할 때만 해도 절망적이었다. 데뷔 후 처음으로 그는 ‘은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노래를 못할 줄 알았습니다. 평소 스키를 즐기는데 그동안 스키 타다가 세 군데 다쳤거든요. 그중 수술받은 어깨 관절은 아직도 뻑뻑한 느낌이랄까 그런 게 있어요. 성대도 수술하면 원상복귀는 어려울 거라 생각했죠.”

이승철은 수술 후 가족이 있는 홍콩에서 지냈다. 둘째 딸이 지난해 초 홍콩국제학교에 들어갔고, ‘기러기 아빠’로 지내다가 수술한 김에 아예 홍콩으로 건너간 것이었다.

“지난 33년간 2000번도 넘게 공연했는데 홍콩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쉬려니 별생각이 다 들었어요. 수술 후 처음 한두 달은 거의 ‘묵언수행’이라고 할 정도로 말없이 집에서만 보냈습니다. 자연히 은퇴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싫었어요. 조용히 사라졌으면 사라졌지, 이런 일로 ‘은퇴 당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죠. 가족과 함께였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멀리 보고 음악을 해야 하는 나이임을 알아요.”

홍콩에서의 시간은 이승철에게 약이 됐다. 모처럼 가족과 온종일 시간을 보냈다. 그 좋아하는 술도 1년간 딱 끊었다. 베트남과 하와이로 가족여행도 다녀왔다. 재활하면서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는 딸의 통학. 영락없는 ‘딸바보 아빠’였다.

“늦둥이 둘째 딸이 이제 초등학생인데 노래는 제법 하지만 춤을 못 추는 것까지 나를 닮았어요. 하하. 성격이 매우 밝고 적극적입니다. 외국어, 수학 등 공부도 제법 하고 운동도 좋아하고요. 그런데 자신은 미래 전공을 이미 정했대요. 해양생물학. 운동이나 음악은 재미있는데 아빠를 보니까 하기는 정말로 힘들어 보인다나요? 성격이 매우 밝고 적극적이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큰딸은 대학에서 비주얼아트를 전공한 후 디자인 일을 하고 있다. 요즘은 딸의 고민스러운 연애사를 챙기는 것도 아빠 이승철의 몫이다.

“가수 후배 중에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친구들에게 전 늘 결혼을 권유해요. 아마 이승철 혼자였다면 제가 지금 뭘 하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애들이 커가고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지금처럼 소중한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1986년 부활 1집으로 데뷔한 이승철은 올해로 데뷔 34년째다. 30년이 넘은 만큼 이제 그의 이름은 한 명의 가수를 지나 나훈아, 조용필처럼 한국 대중가요를 잇는 독립된 브랜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가왕’으로 불리는 조용필이 인정한 보컬이기도 하다.

“조용필 형님의 위치는 정말 대단합니다. 가요계의 리더로 하늘에서 내려주신 분 같아요. 요즘은 수술 후 홍콩 생활과 공연 준비로 형님을 만난 지 오래됐지만 후배로서 존경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어요. 오래 버티자는 생각을 하고 있죠. 누가 ‘조용필 같은 가수가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전 당연히 ‘아이 호프 소(I hope so)’라고 할 거예요. 하하.”

이승철은 데뷔 후 12장의 정규 앨범을 냈고 대부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12집을 낸 것도 벌써 4년 전, 13집을 기다리는 팬이 너무 많다.

“1994년 발표한 ‘색깔 속의 비밀’은 개인적으로 애착이 많이 가는 앨범이에요. 미국 뉴욕에 살면서 당시로선 최초로 현지의 뮤지션들과 협업을 했으니까요. 이제는 그렇게는 할 수 없겠죠.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리는 게 중요합니다. 저도 좋은 노래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팝, 록,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를 구사했던 이승철은 최근엔 동요, CCM, 트로트까지 살펴보고 있다. 크리스천으로서 CCM에 관심이 많고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자연히 동요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특히 트로트는 이승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소위 ‘세미 뽕짝’에 깊은 관심이 있다.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김수희의 ‘애모’,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 노사연의 ‘만남’ 등이 모델이다.

데뷔 35년째를 맞는 내년에는 좀 더 새로운 시도를 계획하고 있다. 소위 ‘시즌별 맞춤형 공연’이다.

“이승철의 뮤직파크 개념이 될 것 같아요. 그 브랜드 안에서 봄에는 언플러그드 중심의 재즈 파크, 여름엔 젊은층을 타깃으로 한 워터파크, 가을엔 별을 보며 음악을 듣는 스카이파크, 겨울엔 크리스마스 콘서트 식이죠. 1년 공연 전체를 하나로 기획해 시즌별, 연령대별로 맞춤형 공연을 마련하는 겁니다.”

보컬이 워낙 뛰어나서 이승철을 퍼포먼스형 가수로만 보는 시선이 있지만 그는 사실 어느 가수보다 뛰어난 싱어송라이터다.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영화 ‘청연’의 ‘서쪽하늘’, 드라마 ‘불새’의 OST ‘인연’ 등은 직접 작사했다. 대부분 곡도 직접 편곡한다. 편곡 과정을 통해 평범했던 곡들은 ‘이승철 스타일’의 노래로 재탄생했다.

“좋은 가사를 쓰기 위해서는 많이 봐야 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시를 많이 읽는 편입니다. 중요한 것은 같은 사랑 이야기라도 뻔한 것, 디테일하지 않은 것은 재미없다는 겁니다.”

이날 인터뷰는 술과 함께했다. 먼저 사진 촬영을 한 이승철은 곧바로 헐렁한 티셔츠로 갈아입고 오더니 편하게 하자며 맥주를 꺼냈다. 기자도 같이 마셨다.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취중 토크가 됐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맥주는 와인으로 바뀌었다. 취중 인터뷰는 그렇게 3시간도 넘게 진행됐다. 이승철은 개인사든 과거의 일이든 숨김이 없었다. 다만 몇 가지 일은 아직은 어린 둘째 딸을 위해 남겨달라고 했다. 딸이 아빠를 이해할 때쯤 꼭 자신의 입으로 아빠의 ‘네버엔딩 스토리’를 말해주고 싶다면서. 기자는 흔쾌히 손가락을 걸었다.

이승철의 전국투어 ‘더 라이브(The Live)’는 10월 5일 경기 일산 공연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토요일마다 쉬지 않고 계속된다. 이승철은 “오랜만에 연말까지 달려보자”며 웃음 지었다.


■ SNS속 이승철

딸바보 아빠 맛집 찾는 미식가 라이브황제의 일상


이승철은 서울 은평구에서 태어나 불광초, 서대문중, 대신고를 졸업한 후 수원대를 다니다 1986년 밴드 부활의 보컬로 데뷔했다. ‘희야’와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그때 터진 곡이다. 1989년엔 솔로로 전향했고 ‘안녕이라고 말하지마’가 크게 히트했다.

1990년 초 여러가지 상황속에 방황하기도 했지만 ‘오늘도 난’(1996) ‘오직 너뿐인 나를’(1999)이 연달아 흥행에 성공했고, 2002년엔 부활로 재결합해 ‘네버엔딩 스토리’를 발표해 사랑받았다.

이후로도 그의 히트곡은 너무 많아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 30여 년간 정규 12장을 포함해 20여 장의 앨범을 냈고, 270여 곡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공연한 횟수는 2000회가 넘고, 솔로와 밴드 시절을 포함한 앨범 누적 판매량은 1000만 장 정도다.

만약 이승철의 최신 근황을 알고 싶다면 그의 SNS를 보면 된다. 그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팬클럽 ‘이승철과 새침데기’ 등 다양한 SNS 채널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콘서트 스케줄이나 방송 내용을 알리는 것도 있지만 대체로 일상을 보여주는 사진과 동영상이 많다.

특히 가족과 여행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이때만큼은 스타 아티스트가 아닌, 영락없는 ‘딸바보’ 아빠다. 1년 만의 콘서트가 이제 2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그는 지난 추석 연휴에도 가족이 있는 홍콩에 다녀왔다. SNS에는 대추 송편과 토란국(사진)을 담은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연예계 소문난 미식가인 이승철은 특히 음식에 관심이 높은 편이다. SNS에 음식 관련 게시물이 유독 많다. 주로 음식 그 자체를 보여준다. 음식을 먹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먹방’과는 다르다. 오징어구이, 송이라면처럼 간단한 것부터 민어전과 홍어, 마라탕까지 난도가 높은 음식 등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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