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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동 문학평론가 서강대 명예교수

지난 한가위 전야(前夜) 문재인 대통령은 한복을 입은 엄숙한 모습으로 국민 앞에 나와 추석 메시지를 읽었다. “보름달이 어머니의 굽은 등과 작은 창까지 세상을 골고루 비추듯이 국민 모두에게 공평한 나라를 소망한다. 활력 있는 경제가 서로를 넉넉하게 하고 공평한 사회가 서로에게 믿음을 주며 평화로운 한반도가 서로의 손을 잡게 할 것이다.” 그러나 임기 초와는 달리 그의 말은 ‘민족 대이동’의 물결 속에 고향을 찾는 대다수 국민에게 공허한 메아리로만 들렸다. 이번 추석 가족들 간의 얘기는 어디를 가든 결실에 대한 만족스러운 미담(美談)은 없고 시국에 대한 무거운 주제뿐이었기 때문이다.

가족, 친지 사이에 펼쳐진 화두는 전 방위로 압박해 오는 나라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스스로 ‘원리원칙주의자’라고 하는 문 대통령이 범죄 의혹을 받는 조국 서울대 교수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함으로써 법치가 무너지고 무법천지의 나라가 되고 있다는 불안감과 분노 때문이다. 대통령은 “위법성이 입증 안 됐는데 의혹만으로 사퇴시키면 나쁜 선례를 남긴다”고 했지만, 그간 청문회에서 낙마한 고위 공직 후보자 중 위법성이 확인된 경우는 거의 없다. 대통령은 국민 다수의 저항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을 공직자로 임명하는 선례를 남기는 왜곡된 역사를 스스로 썼다. 조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사문서 위조 혐의로 기소되는 과정에서 몇 차례 증거인멸 의혹을 받고 있고,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확대돼 가는 사모펀드 사건에 연루된 의혹 때문에 검찰의 집요한 추적을 받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민의(民意)의 양식과 상식을 넘어 수사 대상자를 국법을 다스리는 수장에 임명한 대통령의 나르시스적인 독재적 통치 행위는, 나라의 질서를 지키는 법무부를 세기의 웃음거리로 만들고 법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큰 실수다. 대통령이 같은 정부 기관에 있는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적(敵)으로 만들어 콜로세움에서처럼 목숨을 걸고 정면대결을 하도록 한 것은 독재자나 할 수 있을 법한 일이다. 법무부가 장관 취임 다음 날 검찰총장을 장관 수사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은 국민을 당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문재인과 조국의 나라’라는 말이 국민 사이에 나돌기 시작한 게 우연일까.

이렇게 민심이 이반해 대통령의 추석 메시지가 미사여구로 쓰인 최면적 감상문으로만 들리는 것은 그의 위선적인 통치 행위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 열차를 타고’ 성장동력을 잃어가는 국가경제 현실은 물론 극도로 불확실한 안보 상황 때문이다. 가계부채는 날로 늘어나고, 8월의 소비자물가지수가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처음 마이너스로 나타나 디플레이션을 맞을 수 있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북핵 위협이 시시각각 증대되는데도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로 인한 외교적인 고립이 국가적 대재앙을 초래할 것이란 불안 또한 지배적이다.

문 대통령이 임명한 조 법무장관이 이렇게 국민을 절망과 분노에 빠뜨리고 있지만, 그는 시종일관 “국민 정서상 조금 괴리는 인정하나, 적법했다”고 한다. 독일의 법학자 게오르크 옐리네크는 “법은 윤리의 최저한이다”라고 했다. 문제는 윌리엄 피트가 지적한 것처럼 ‘법이 무시되는 곳에 전제(專制)가 생긴다’는 것이다. ‘문재인과 조국의 나라’가 그들만을 위한 전제주의 독재국가라면, 문 대통령의 추석 메시지는 국민을 속이는 현혹적인 달나라의 주술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