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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듣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

기사입력 | 2019-09-11 11:56

황주리 화가

가을이면 창문 밖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더 선명하게 들리던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생각난다. 추석과 생일이 가끔 겹치는 내가 자신에게 주는 생일 선물로 산 그 음반의 기억은 날씨 좋은 날에 학생들의 시위 행렬과 최루탄 냄새로 눈물이 나던 그 아까운 청춘의 기억과도 맞물린다. 불의를 보고 불의라 부르짖을 수 있는 우리 인생 속 가장 짧고 소중한 시간 젊음, 오늘도 젊은이들은 정의를 외치며 세상 속을 행진한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는 “젊은 건 참 좋다” 혼잣말을 한다.

며칠 전 150분 동안 쉬지 않고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하는 요요마의 바흐 프로젝트 공연을 봤다. 요요마가 서툰 한국말로 “여러분 추석 잘 보내세요”하고 인사말을 했다. 체조경기장이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몸집이 작은 요요마가 바흐를 연주한다. 그 뒤의 거대한 화면의 영상 속에 실제 크기보다 열 배는 넘는 거대한 요요마가 섬세한 거장의 표정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자유를 통제하는 큰 화면 속의 독재자 빅브러더가 아니라 내게 요요마는 바흐의 음악을 구원의 메시지로 통역하는 평화의 전도사처럼 보였다. 소년 파블로 카살스가 고악보 가게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발견해 200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는, 그 깊고 신비롭고 철학적인 음악을 현대의 요요마가 연주하는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행복했다.

그 음악을 듣는 사람 중에는 장사가 잘 안 돼 음식점 문을 닫는 사람도, 취직이 안 돼 캥거루족으로 살아가는 우울한 젊은이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걱정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터였다. 300년 전의 바흐에서 요요마로, 또 같은 시공 속에서 바흐의 음악을 듣는 수많은 사람의 걱정거리들은 그 순간 잠시나마 사라진 듯했다. 어쩌면 먹을 것, 입을 것 걱정하지 않는 풍경은 당연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삶은 콩 한 접시도 맛있게 나눠 먹는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 난방 시설이 없어 햇볕에 쪼그리고 앉아 볕을 쬐는 사람들, 그것은 머지않은 과거의 우리 조상들 모습이기도 하다.

같은 시공 속을 사는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문명의 속도 속에 사는 걸 목격하는 일은 충격적이다. 지구는 구석기시대부터 최첨단 컴퓨터 시대까지 모든 시대가 공존하는 경이로운 공간이다. 어릴 적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어느 날 보니 잘사는 나라가 돼 있었다. 생각하면 조상들의 고생이 마음 아프고, 길이 보전하자는 애국가의 가사에 눈물이 나기도 한다. 과학자들의 예언에 따르면 50년 뒤에는 스스로 청소하는 주택, 뇌와 연결되는 인터넷, 뉴욕∼영국을 40분이면 가는 교통 혁명이 이뤄진다고 한다. 그런 세상에 살게 될 후세들이 부러워진다.

올해도 몇 달 남지 않은 시간 동안 가까운 사람 몇몇 분이 세상을 떠났다. 그중에는 친했던 동갑내기 화가 친구도 있고, 가을에 만나자며 전화하신 지 열흘 뒤에 세상을 떠나신 은사님도 계시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만나서 밥을 사주시던 만화가 ‘고바우’ 김성환 선생님도 계시다. 한동안 못 뵈었는데 연락 한번 해봐야지 하던 중 선생님의 부고 기사를 접했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는 일, 커피를 내리는 일, 화분에 물을 주는 일 등 아주 시시하고 평화로운 일상일 것이다.

얼마 전 어느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이런 문장이 마음에 꽂혔다. ‘누가 뭐라든 자기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는 게 악의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처음 듣던 내 젊은 날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가까운 사람들이 적잖이 세상을 떠났고, 오랜만에 추석과 생일이 겹치는 나는 아직도 악의로 가득한 세상을 슬퍼하며, 그 음악에 위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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