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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과 추상의 접점에 선 조형미와 서정성

이경택 기자 | 2019-09-11 10:15


- 강광 화백 개인전 ‘아름다운 터에서’

제주 강요배 등 민중작가 양성
민중미술의 1세대로 불리지만
그들과는 다른 독창적인 화법

1990년 이후 해학적인 호랑이
민화와 닮은 모더니즘 작품도

“역사와 현실에 부조리한 가치에
침묵적 저항으로… 독특한 서사”

22일까지 가나아트센터 전관서


노동자들의 분노가 표현된 시위 현장 대형 걸개그림과 포스터 그리고 울긋불긋한 깃발. ‘민중미술’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강광(80) 화백은 ‘민중미술’ 작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제주에서 젊은 날을 보내며 민중미술 계열 작가로 불리는 강요배 등 작가를 길러내고 본인도 ‘민중미술 1세대’ 작가로 통하지만 그의 작품은 시대의 현실을 직설적으로 비추던, 흔히 ‘민중미술’로 불린 1980년대 리얼리즘 미술 흐름과 분명히 결을 달리한다. 추상과 구상의 접점에 있는 그의 작품은 ‘직접적’ 표현의 민중미술 작가와 달리 초기 작품부터 뛰어난 조형미와 서정성을 보여주고 있다. 강 화백의 개인전 ‘아름다운 터에서(The Land)’가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1, 2, 3 전관에서 열린다.


함경북도 북청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 발발 2년 전 월남해 전쟁의 참화를 몸소 겪어내며 서울대 미대를 마쳤고, 월남전에 참전했으며 민주화 운동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민중미술’이 태동해 발전해 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1969년 제주에 내려갔어요. 그런데 밀감밭을 그냥 멋지다고 그리지 않았어요. 저는 제주도 풍경을 그려도 4·3항쟁의 아픔을 겪은 땅의 모습이 느껴지게 그렸습니다.” 제주 시내 오현고등학교에서 미술 선생을 할 당시를 그는 그렇게 회고했다. 또 작가노트에 이렇게 썼다. “예술가는 한 시대를 고발하고 정화시키는 예언자다. 그것이 음악이나 문학이나 그 외의 다른 수단으로 표현되는 예술가의 사명 또한 마찬가지다.”

민중미술 작가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그는 화법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길을 걸었다. 1970∼1980년대 그의 작업은 추상과 구상의 특성을 모두 드러내 보여준다. 원근법과 사실적 묘사와 같은 회화적 기교를 배제한 채 기하학적인 형태로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산과 나뭇가지, 푸른 색면으로만 묘사된 하늘 등은 그가 동시대의 사회비판적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구상과 추상 사이에서 조형성을 실험했음을 보여준다.

또 1990년대 후반에 완성된 그의 작업들을 살펴보면 향토성이 강하게 나타나며 우리나라 민화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해학적으로 묘사된 호랑이가 등장하고 평면으로 패턴화된 꽃과 나무들이 나타난다.

미술평론가 이경모는 평론 글에 “그의 리얼리즘은 대중을 자극하는 선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며 “부조리한 가치에 강광은 촌철살인의 응축된 형상과 비선형적 서사구조를 통한 ‘침묵적 저항’으로 맞섰다”고 썼다.

이처럼 강 화백은 바람 잘 날 없던 현대사와 그로 인한 삶의 비극을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라는 두 갈래 길에서 자연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형태로 구현해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민중미술이 일부 미술애호가들에게 야기할 수 있는 거부감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이재언 인천 아트플랫폼 관장은 “강광 화백은 항상 자연과 대화하며, 동시대 희로애락을 단답형으로, 무언가 항상 긴 여운을 남기는 그림으로 표현하는 자연주의 서정시인이다. 담백하고 투박하며 선이 굵은 선화(禪畵) 같고 삽화 같은 그림의 화가로 자신의 작품에 어떤 프레임을 대입시키기를 거부한다”고 평가했다.

2003년 인천 강화도 마니산 자락으로 삶터를 옮긴 후 작업에 매진해온 작가는 2012년부터 붓을 꺾었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작업실에는 하얀 여백의 빈 캔버스가 여전히 놓여있다. 그는 무연한 표정으로 캔버스에 앞에 앉아 ‘때’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2017년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부인 박서혜(73) 시인이 이런 시를 썼다. “여름 내내/무늬도 근사한 말벌 집을 품고 있던 저 나무,//지금 /살아온 날들의 빛깔로/ 단풍 드는 중이다//저 많은 잎들도/ 추억 따라/단풍 드는 품새가/다 다르다.” 시집 ‘멋진 늦가을’(다인아트)에 실린 표지 시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강광 화백의 ‘호랑이가 있는 풍경’. 민화의 토속적, 해학적인 특징이 엿보인다. 가나아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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