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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對 의견 무시하곤 개혁 성공 못 한다

기사입력 | 2019-09-10 11:38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美국민 양극화 近因 트럼프 독설
文대통령, 원론만 강조하고 침묵
반대편도 포용, 국민통합 이뤄야

대표자 ‘편가르기’는 사회 분열
개혁정책 추진도 통합 고려해야
법무장관 임명 과정도 마찬가지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해도, 꼭 필요한 말을 하지 않아도 문제다. 국민 모두의 대표자로서 사회통합을 책임진 대통령의 경우엔 특히 그렇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불필요한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미국 사회의 분열을 악화시키고 있다. 그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꼭 필요한 말을 제대로 하지 않아 한국사회의 분열을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의 다변(多辯)은 유명하다. 기업인·방송인 시절부터 수다스러운 독설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논란을 일으킨 트럼프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그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 선거 때는 차치한다 해도,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이끌면서도 끊임없이 설화(舌禍)를 일으켜 미국민을 자기편과 반대편으로 양분시킨다. 동조하지 않는 측은 흑백논리로 무자비하게 비난·조롱하고, 지지하는 측은 감상적으로 선동하는 그의 입은 SNS 덕에 밤낮이 없다. 미국 사회의 양극화엔 여러 근본 원인이 있겠지만, 현직 대통령의 과도한 언설(言舌)이 한몫 거들고 있다.

트럼프와 거꾸로, 문 대통령은 과묵하다. 본인이 지향하는 국정 기조만 간단하게 언명하는 정도다. 적폐청산, 소득주도성장, 청년실업, 탈(脫)원전, 남북 화해, 한·일 갈등 등 핵심 과제와 관련해 나아갈 방향을 강한 톤이지만, 원론을 밝히는 데 그친다. 각론적 의문이나 비판적 의견에는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너무 세세히 말하다가 실수하거나 비판을 꼬치꼬치 반박하다가 분란을 격화시키는 것보다는 전략상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묵함이 지나쳐도 곤란하다. 양극적 논쟁과 부정적 여론이 비등한다면 침묵을 지키지 말고 스스로 나서서 뭔가 적절한 말을 해야 한다. 한편으론 왜 그 정책·결정이 필요한지 친절하게 부연하고 정당화하는 변호의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반대하는 사람들을 보듬는 포용의 말을 할 필요가 있다.

다원화된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의 당위적 입장에 충분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을 때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겠는가. 대통령이 직접 나와 진지하고 충실한 말로 변호해야만 국민이 신뢰하고 지지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또한,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설득당하지 않는 사람들을 달래고 위로하며 포용하는 말을 건네야 한다. 대통령은 자기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원수로서 사회통합을 최고 가치로 지키는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각종 사회 변혁도 국민 간 통합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시도해야 한다. 만약 대통령이 충분한 부연·변호 없이 국정을 밀어붙이고 반대편에 진지한 포용의 말을 건네지 않는다면, 그들은 모멸감·소외감·자괴감을 느끼며 적대적 불만 계층으로 남을 것이고, 그만큼 사회통합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상징적’ 대의(symbolic representation)라는 개념이 정치학에 있다. 대표자가 정책으로 국민의 구체적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policy)’ 대의 혹은 ‘이익(interest)’ 대의와 달리, 결과가 가시적으로 나오지 않더라도 말을 통해 국민의 추상적 효능감과 체제 소속감을 높이는 경우를 뜻한다. 대표자가 정책·이익 대의만 추구하면 혜택과 비용이 어떻게 배분되는지에 따라 많은 국민을 소외시키고 사회를 분열시킬 수 있다. 반면, 상징적 대의에도 신경 쓰는 대표자는 비(非)지지층을 포함한 국민 전체를 상대로 축하하는 말, 응원하는 말, 위로하는 말, 해명하는 말, 사과하는 말 등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국민 모두를 포용하며 사회통합을 기하려 할 것이다.

상징적 대의의 중요성은 오늘날 두드러진다. 사회의 복잡성·파편성·급변성·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국민은 막연한 불안감과 초조함,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럴수록 구체적 정책 이익 못잖게 심리적 안정이나 치유를 갈구하는 경향이 커진다. 말로써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하는 상황이다. 숙의(熟議)·공론(公論)·수사(修辭) 등 말을 강조하는 개념들이 학계·시민사회·정치권에서 유행하게 된 시대적 배경이다.

대통령이 말만 앞세워도, 역으로 충분하고 적절한 말을 하지 않아도 사회통합이 약해진다. 사회 체제를 지키라는 국민의 지상명령을 받은 최고위 대표자라면 절실하게 새겨들어야 할 자명한 이치다. 특히, 국민을 갈등의 격랑에 빠뜨린 이번 법무부 장관 임명과 관련해 새겨들을 만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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