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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논설위원

법무장관 후보자가 ‘아파트 쇼핑’이란 조어까지 등장시켰다. 국어사전의 풀이로는 공동 주택 양식의 하나에 불과한 아파트! 그러나 좀 더 풀이하면, 오 층 이상의 건물을, 층마다 여러 집으로 일정하게 구획하여, 각각의 독립된 가구가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든 주거 형태를 말한다. 당당히 외래어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아파트의 본명은 어파트먼트 하우스로, 영어에서 넘어온 말이다. 미국에서 어파트먼트는 세 들어 사는 주거 형태를 말한다. 거기에다 가옥(家屋)이란 의미의 하우스까지 따라붙은 8음절의 이름이 ‘경제적’으로 개명된 것은 일본어 ‘아파토’를 그대로 들여왔기 때문이다.

꼬리를 잘라내고 머리만 따서 만든 일본식 외래어는 많다. 전기 배선과 코드의 접속에 쓰이는 콘센트도 그중 하나다. 모국어 이름은 컨센트릭 플러그. 콘센트는 플러그가 있을 때 비로소 제구실을 할 수 있다. 콘센트가 전기 공급 장치의 암컷이라면 플러그는 수컷에 해당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콘센트는 일본의 실수로 잘못 태어난 ‘사생어’다. 어원인 컨센트릭(concentric)이란 말에는 ‘중심이 같은’ ‘동심원의’라는 뜻만 있다. 플러그를 꽂는 기구인 콘센트는, 영어로 파워 아웃렛 또는 파워 리셉터클, 파워 포인트라고 한다. 일본이 잘못 만든 외래어마저 그대로 옮겨 쓰고 있는 것이다. 콘센트 외에도 일상생활 용어 가운데는 일본식 외래어가 수없이 많다. 코스튬플레이에서 온 코스프레(분장놀이)나 리모트컨트롤(원격조정기)을 줄인 리모컨 등….

물건이 다 팔리고 없는 경우를 일러 품절이라고 한다. 품절은 얼른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다. 원인은 어원이 시나기레(品切れ)라는 일본식 한자어라는 데 있다. 그래서 동남, (물건) 없음 같은 쉬운 우리말로 다듬었지만 익숙하지 않다. 흔히들 쓰는 추월이나 횡단보도 같은 말도 각각 오이코시와 오단호도라는 일본식 한자어이다. 그밖에 건배, 분재, 수목원, 수선, 엽기적 같은 말 또한 일본식 한자어다. 너무 굳어져 지금은 우리말로 바꾸기 어려운 용어들이다.

이렇듯 우리말에 일제의 잔영(殘影)이 드리워져 있다. 국력이 쇠하고 국격이 추락하면 나라말도 힘을 잃는다. 뜨거운 8월은 나라를 되찾은 광복절(15일)과 빼앗겼던 국치일(29일)이 함께 있는 달이다. 일본말 섞인 우리말을 살펴보며 백척간두에 선 나라의 현실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