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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동 경제산업부 부장

일본의 경제 보복(수출 규제)이 현실화한 뒤 정부가 혁신성장과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R&D)을 확대하겠다면서 뒤늦게 부산을 떨고 있다. 대통령까지 소재 산업 대기업을 찾아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책임 있는 경제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핵심 소재의 특정 국가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난리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없더라도 혁신성장을 활성화하고 소재·부품·장비 R&D를 확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문재인 정부가 뒤늦게 야단법석을 떠는 게 영 미덥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정부가 가장 중시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알아보려면 다른 무엇보다도 돈의 흐름을 좇는 게 가장 빠르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 R&D 예산 증가율(국회 통과 기준, 전년 대비)은 2018년 1.0%, 2019년 4.1%였다. 2017∼2019년 연평균 R&D 예산 증가율은 2.6%에 불과했다. 같은 시기 전체 예산(총지출) 증가율은 2018년 7.1%, 2019년 9.5%였고, 2017∼2019년 연평균 총지출 증가율은 8.3%였다. 경제계에서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 R&D를 촉진하기는커녕 심하게 홀대해왔고, 사실상 싹을 죽인 거나 다름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요즘 혁신성장과 소재·부품·장비 R&D에 대단히 신경이라도 쓰는 것처럼 ‘쇼’를 하는 데 엄청나게 공을 들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지난 4일 마치 엄청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소재·부품·장비 예산을 ‘1조 원+α’로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가 그동안 우리나라 소재·부품·장비 예산이 얼마인지 제대로 발표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재·부품·장비 예산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지난 5일 발표한 지난 19년간 소재·부품·장비 예산이 5조4000억 원이었다는 통계도 사실상 처음 공개된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21일 내놓은 ‘혁신성장 확산·가속화를 위한 2020 전략투자방향’ 등은 한술 더 뜬다. 뜬금없이 ‘D.N.A.(데이터·네트워크(5G)·인공지능(AI)) + BIG 3(시스템반도체·바이오헬스·미래차) 분야’라는 말을 만들어 낸 것은 그렇다고 치자. “내년에 D.N.A. + BIG 3 분야에 올해보다 1조4600억 원(45%) 늘어난 4조7100억 원의 예산을 넣겠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예산이 D.N.A.나 BIG 3 예산으로 분류되는지 설명도 없다.

문재인 정부는 애당초 혁신성장이나 소재·부품·장비 R&D에 별 관심이 없었다. 소득주도성장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그나마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애면글면해서 혁신성장을 국정 어젠다의 일부로 집어넣는 데 성공했지만, 김 전 부총리가 있을 때나 지금이나 성과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문 정부에서 혁신성장에 성과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을 철천지원수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혁신성장과 소재·부품·장비 R&D에서 성과를 내려면 지금이라도 대기업은 옥죄고, 중소기업만 육성하겠다는 비현실적인 발상을 버려야 한다. 문 정부 출범 이후 변변한 규제 완화 하나 한 게 없는데, 인제 와서 예산 몇 푼 더 넣는 것만으로는 혁신성장과 소재·부품·장비 R&D에서 성과를 낼 수는 없을 것이다.

haed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