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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규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

510兆 넘는 예산 곧 國會 제출
文정부 들어 지출 증가 급상승
의무지출 비율의 급증도 심각

SOC 투자 필요하나 졸속 조짐
미래에 빚과 후유증 넘길 수도
정치 악용과 시장 왜곡도 우려

9월 초까지 국회에 제출될 예정인 2020년도 정부 예산안(案)의 윤곽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알려진 대로라면 예산안의 규모가 최소 510조 원 이상으로, 전년도 증가율 8.5%를 뛰어넘는 규모여서 연속 2년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게 된다. 국내외 기관들이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하는 등 우리 경제에 대한 전망이 여의치 않다는 우려를 본격적으로 나타내기 시작한 지난 5월, 2019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대통령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면서 팽창예산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그렇지만 이보다 앞서 지난 3월 ‘예산안 편성지침’을 의결하는 자리에서 경기 활성화를 위한 재정의 적극적 역할에 대한 경제부총리의 언급이 있었다. 올해 들어 일찍이 경제에 대한 정부의 상황 인식이 바뀌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 간에 장기화하고 있는 무역 협상과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이 무역분쟁으로 이어지고 있어 적극적인 재정정책의 역할에 대한 경제적·정치적 명분이 더해지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서면서부터 팽창예산을 통한 정책과 관련해 재정의 지속 가능성 문제가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재정 지출과 재정 수입 사이 작아지던 증가율의 폭이 2017년 이후 다시 급격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2018년부터 전체 정부 지출 가운데 의무 지출의 비율이 50.6%로 재량 지출의 비율을 넘어섰고, 이런 추세 또한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방이전 지출과 복지 지출의 가파른 증가로 인해 의무 지출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가 계속된다면, 중앙정부의 경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재정정책의 여력이 작아지는 구조적 문제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아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의 적자 비중이 최근 급속히 증가하는 가운데, 2020년 대규모 팽창예산이 이뤄지게 된다면 재정적자의 폭도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커지게 될 것이다. 지난해에 시작된 경기 둔화가 올 들어 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당초 예산편성 때 예상했던 세수 확보가 어려워질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국가부채의 규모가 급속히 커질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저금리 정책으로 인해 국내의 통화 당국이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의 범위가 상당히 좁아진 상태에서, 재정 건전성이 예상보다 빠르게 나빠진다면 경기침체에 대비할 수 있는 유일한 정책 수단마저 잃어버리게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2020년도 정부의 예산안에는 또한 2019년도에 축소했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의 증대를 통해 경기에 대응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알려져 있다. SOC에 대한 투자는 경기 대응에 유용한 수단이면서 후대에는 생산적 자본을 남겨줄 수 있다는 명분을 갖는다. 그러나 그동안 있었던 모든 SOC 관련 투자사업이 이런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만일 국채 발행을 동원해서라도 이런 SOC 투자사업을 진행한다면 오히려 다음 세대에는 빚과 잘못된 투자사업의 처리 문제로 인한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만을 남겨주게 될 것이다. 단기간의 경기부양 효과와 지역적 여론만을 의식한 정치적인 고려로 결정되는 사업은 이런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SOC 투자사업의 결정에서는 여야 불문하고 정치적 이해득실을 떠나 중장기적으로도 국민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정부는 예산을 통해 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할 때 정부 재원의 대규모 지출이 관련 시장을 왜곡·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은 큰 규모로 지출이 이뤄지기 때문에 관련 시장 참여자들의 행태를 변화시킬 수 있어 이런 변화를 예상치 못한 정책은 성공할 수 없게 된다. 이런 문제는 교육·보육·일자리 사업 등 사회 서비스 전반에 걸친 관련 정책뿐 아니라 정부가 2020년도 예산안에서 강조하고 있는 연구지원사업 등 사업 전반에서 나타날 수 있다. 예산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업 관련 문제들 전반에 걸쳐 대비할 수 있는 정교한 정책의 틀을 구축하는 계획이 필요하다. 자칫 준비되지 않은 사업을 서둘러 시행하게 되면 정책의 목표도 달성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로 인해 발생한 왜곡 현상과 이를 통해 구축된 기득권으로 인해 새로운 정책 도입마저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