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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DJ-오부치 선언’ 정신 살려야

기사입력 | 2019-08-14 11:51

최상용 前 주일 대사 고려대 명예교수

1945년 8·15는 기쁘면서도 슬픈 날이었다. 일제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방된 기쁜 날이지만, 슬프게도 미·소 냉전에 의한 분단 체제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은 이데올로기의 조직적인 양극화인 미·소 냉전의 산물이었다. 한·일 양국의 국내 냉전으로 인한 격심한 조약 반대 운동 속에서, 역사문제에 대한 논의는 우선순위에서 배제돼 버렸다. 그 후 미·소 냉전과 한반도 냉전의 이중 구도 속에서 한국은 미국·일본과 함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냉전의 중심축을 형성하게 됐다.

1998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미·소 냉전이 무너진 상황에서 이뤄졌다. 이 공동선언은 각기 국내 냉전으로 인한 갈등 없이 두 나라 여야 정치권은 물론 국민의 광범한 지지 속에 당시 김대중(DJ) 대통령과 일본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합의, 서명했다. 획기적인 것은 1965년 기본조약 당시 유보됐던 역사문제에 대해서, 일본 정부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한국 정부의 ‘화해와 협력’을 상호 인정하고 양국 정상이 직접 서명했다는 점이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우리 국민이 가장 호감을 갖고 있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담화에는 한·일 관계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다. 공동선언은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 내용을 담았으며, 한·일 관계사에서 양국 정상이 역사 반성과 사죄에 관해서 확인한 최초의 협정이다.

한국과 일본의 학계에서는 1965년 기본조약과 1998년 공동선언의 역사적 의미를 부각시켜 ‘1965년 체제’와 그것을 보완한 ‘1998년 체제’라는 개념이 통용되고 있다. 공동선언은 한·일 간에 상호 인정과 가치 공유를 통한 화해와 협력의 좋은 선례다. 오부치 총리는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 특히 평화적 정권교체에 경의를 표했고, 김 대통령은 일본이 평화헌법 아래서 비핵 3원칙을 지키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경제 지원을 통해 국제사회에 공헌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공동선언은 11개의 핵심 내용과 43개의 행동계획으로 구성돼 있는데, 극단의 시대였던 20세기의 황혼에 서서 새로운 21세기의 한·일 관계를 선취(先取)한 전략적 관점이 포함돼 있다. 특히, 두 정상은 남북 관계 개선 및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력을 약속했다. 북한의 비핵화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진전되면 북·일 정상화의 길이 열리고, 그 길은 한반도 평화 공존의 환경에 부합하는 것이다.

현대 국제정치에서 평화 공존은 냉전시대의 시한적인 타협이 아니라, 경제 교류를 통한 평화적 상호 의존 관계다. 경제 교류가 있는 국가 간에는 무역 갈등은 있을 수 있으나 전쟁 가능성은 작다는 게 ‘통상평화’이다. 경제 교류와 함께 국가 간의 지속적인 문화 교류는 상호 학습의 과정이기 때문에 평화에 기여한다는 ‘문화평화’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이 화해 협력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일본의 대중문화를 국내에 개방한 것인데, 거센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내린 그 결단이 오늘날 한류의 출발점이 됐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공동선언을 지지하고 있고, 다행하게도 당시 공동선언에 반대했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최근 들어 공동선언을 지도자의 결단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2019년 8·15를 기점으로 한·일 양국 정상이 역사문제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정신을 계승하고 쟁점 현안은 외교로 풀겠다는 의지를 양국 국민을 향해 다시 한 번 천명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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