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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克日, 규제철폐 경쟁부터 앞서야

기사입력 | 2019-08-14 11:46

김병직 논설위원

‘암반 규제’로 악명 높았던 日
아베노믹스 구조개혁 힘입어
규제혁파가 경제부흥 이끌어

한국은 겹겹규제로 기업발목
요란한 ‘경제 克日’구호보다
규제철폐부터 일본 앞서야


4차 산업혁명시대의 총아로 떠오른 데이터 경제에서 일본이 글로벌 리더십을 키워가고 있다. 일본은 데이터 경제의 핵심이 개인정보의 상업적 활용에 있다고 보고 지난 2015년 ‘익명 가공정보’ 개념을 도입해 이의 상업적 활용을 허용하는 내용으로 개인정보보호법을 전격 개정했다. 일본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내년에는 사물인터넷(IoT) 생태계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전문으로 다루는 거래소를 설립하겠다는 계획까지 최근 발표했다. 데이터산업 활성화를 위해 발의된 데이터 경제 3법 개정안이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진보단체 반대에 막혀 옴짝달싹 못 하는 한국 입장에서 보면 꿈 같은 일이다.

전통적으로 관(官)의 힘이 강하고 변화가 더딘 일본 사회의 규제는 ‘암반(巖盤) 규제’라고 불릴 정도로 그 악명이 자자했다. 특히 전후 폐허를 딛고 일본경제가 1980년대 중반 세계 1위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기적적인 발전을 이루자, 시장을 이끄는 ‘정부 규제’에 대한 믿음은 신앙과도 같이 단단해졌다. 이 같은 일본 내 규제 지상주의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된 게 소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다. 장기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온갖 정책을 도입해 봤지만, 무위로 돌아가자 ‘민간의 활력’만이 다시 경제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기업규제 완화 등 구조개혁을 아베노믹스 3개의 화살 중 하나로 들고나오면서 규제 혁파는 일본 경제를 최전선에서 이끄는 기관차 역할을 하고 있다.

때마침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를 강행하면서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각종 대응책이 봇물 터지듯 나온다. 이 중 하나가 기업 규제 완화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국내 소재·부품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수출규제 품목의 연구·개발(R&D) 업무에 대해 특별연장근로를 통한 주 52시간 제도 예외를 인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국내에서 개발된 일본 수출규제 대응 물질에 대해선 한시적으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화평법) 등 기업들이 거쳐야 하는 환경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정부가 뒤늦게나마 규제완화책을 꺼내 든 건데, 이에 대한 경제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극일(克日)을 한다며 내놓은 대책이 현재 일본에서 시행 중인 것과 비교해도 한참 못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일 양국은 원칙적인 주당 근로시간(한국 52시간·일본 51.3시간)은 비슷하지만, 일본은 기업 현장 상황에 따라 성수기 등 일손이 부족할 때는 연장근로 한도 시간을 연 720시간까지 늘릴 수 있다.

아베 정부의 규제 혁파는 원스톱 처리를 특징으로 한다. 부처 간 이견 조율 과정에서 책임 떠넘기기식 핑퐁게임을 차단하기 위해 규제개혁 창구를 총리 직속의 내각부로 일원화한 것이다. 모든 규제 완화는 접수부터 답변까지 최장 2개월 내 끝내도록 시스템을 갖췄다. 실행 책임은 장관에게 지우되 이를 관리할 조직은 총리가 직접 챙긴다. 최저임금의 지역별·업종별 차등화, 농업부문 기업 진출 확대, 수도권 규제 철폐 등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는 각종 규제 혁파가 이런 시스템 아래서 가능해졌다. 일본은 지난 2017년에는 제한적으로 허용해오던 원격진료 관련 규제를 대대적으로 걷어내는 결단도 내렸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는 복막 투석이 필요한 만성신부전증, 부정맥, 만성폐쇄성폐질환 등의 환자들에게 원격진료가 가능하다. 지난해부터 스마트폰 영상통화를 통한 진료가 가능해졌고 올해부터는 약을 택배로 받는 원격조제를 허용하고 건강보험 적용도 시작했다. 이는 글로벌 바이오 헬스 분야에서 일본이 주도적 위치를 선점하는 기폭제가 됐다. 의사단체 등의 반발로 지난 2000년 원격진료 시범사업 이후 20년 가까이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한국과 대비된다.

자유무역의 근간을 흔든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를 제대로 된 ‘경제 극일’을 통해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는 요구가 높다. 그러나 요란한 구호와 급조된 임기응변책으로 일본 경제를 넘어설 수는 없다. 더욱이 한국 기업이 겹겹 규제라는 쇠사슬에 묶인 상태에서, 규제철폐 날개를 달고 미래로 내달리는 일본 기업을 따라잡아 주길 바라는 건 난센스다. 진정으로 경제 극일을 원한다면, 천 마디 말보다 규제 철폐 경쟁에서부터 일본을 앞서보겠다는 결의가 더욱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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