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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치의 길·고종의 길 ‘뚜벅뚜벅’… 아픔을 보듬다

박경일 기자 | 2019-08-14 14:46

서울 남산의 다크투어 코스 중 하나인 ‘국치의 길’에서 만나는 통감관저터 비석과 거꾸로 세운 비석. 거꾸로 세운 비석은 을사늑약 체결 등 한국의 국권침탈에 앞장섰던 주한공사 동상의 잔해로 만든 것이다. 서울 남산의 다크투어 코스 중 하나인 ‘국치의 길’에서 만나는 통감관저터 비석과 거꾸로 세운 비석. 거꾸로 세운 비석은 을사늑약 체결 등 한국의 국권침탈에 앞장섰던 주한공사 동상의 잔해로 만든 것이다.


일제강점기 흔적 둘러보는 서울 도심 ‘다크투어’

남산 국치의 길
‘거꾸로 세운 비석’보며 치욕 기억

경제 침탈의 길
수탈 당했던 경성의 월스트리트

고종의 길
불과 120m… 아관파천의 비극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고문실·시구문… 참혹했던 현장


서울관광재단이 첨예한 한·일 갈등 속에서 맞는 광복절을 앞두고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를 둘러보는 ‘다크 투어’를 제안했다. ‘다크 투어’를 통해 식민지 역사를 기억하는 여행코스를 추천하는 것이다. 서울관광재단이 제안하는 여행코스를 따라가면 대부분 사라지고 희미해진 당시의 흔적 앞에서, 역사 여행은 눈으로 보고 즐기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보며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아픔을 기억하라…남산 국치의 길

서울의 랜드마크인 남산은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강화도조약 이후 서울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남산 아래의 충무로 일대에 모여 살면서 영역을 넓혀갔다. 이후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남산 자락에 조선을 통치하기 위한 여러 시설이 들어섰다. ‘남산 국치의 길’은 그 흔적을 따라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길이다.

남산 국치의 길은 ‘한국통감관저 터’에서 시작한다. 한국통감관저는 1910년 8월 22일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통감과 총리대신 이완용이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한 곳. 통감관저 터에는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기억의 터’가 있고, ‘한국통감관저 터’ 비석과 ‘거꾸로 세운 비석’이 서 있다. 거꾸로 세운 비석은 일제가 을사늑약 체결의 공으로 설치한 하야시 곤스케(林權助) 비석의 잔해를 모아, 치욕을 기억하고자 하는 의미로 거꾸로 세웠다. 길은 일제강점기 때 신사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리라초교와 숭의여대로 이어진다. 남산 서울교육청 과학전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신궁 계단의 일부였다. 조선신궁은 조선총독부가 남산에 있던 국사당을 인왕산으로 이전한 후 여의도 면적의 두 배에 가까운 규모로 조성한 신사. 조선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위폐를 봉안하고 국가의 안녕을 위해 제사를 지내던 사당을 없애버리고, 일본의 건국 신과 천황을 숭배하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길은 한국통감관저터(현 서울유스호스텔 아래)에서 한국통감부(서울애니메이션센터), 노기신사(리라초교 내 남산원), 경성신사(숭의여대)를 거쳐 한양공원(한양공원 표석), 조선신궁(한양도성 발굴지)까지 2㎞ 남짓 이어진다.

#조선의 월스트리트…경제 침탈의 길

서울 종로의 보신각 남쪽 광교를 시작으로 숭례문을 지나 서울역까지 이르는 구간은 일제강점기 조선은행을 비롯해 수많은 은행이 밀집했던 금융 지역이었다. 현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자리에는 조선은행이 있었고, 맞은편에 있는 현 신세계백화점 옆 건물에는 조선저축은행이 있었다. 신한은행 광교 영업부 자리에는 한성은행, 광교약국 자리에는 민족계 은행인 동일은행 등도 있었다. ‘경성의 월스트리트’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당시 경성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발달한 공간이었다.

지금의 KEB하나은행 명동 사옥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있었다. 1908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설치한 회사다.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조선의 땅을 헐값으로 매입하거나 가로채 수많은 농지와 임야를 소유한 뒤 이를 일본인에게 싸게 팔아넘기는 특혜를 주거나 조선의 소작농들에게 땅을 빌려주고 높은 소작료를 징수했다. KEB하나은행 명동 사옥 앞에는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나석주 의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어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옛 조선은행 건물을 들러보자. 일제는 1911년 조선 은행법을 만들고, 1912년 르네상스 양식의 3층 건물을 준공해 조선은행을 열었다. 일제는 이곳을 본점으로 해 한국 금융계를 장악하고 중국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맞은편의 신세계백화점 본점도 함께 들러보자. 1929년 경성에 일본 미쓰이(三井) 그룹이 운영하는 한국 최초의 백화점인 미쓰코시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미쓰코시백화점은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의 건물을 지었는데, 지금 신세계백화점 본점 건물이 당시 외형을 그대로 보존한 채 영업하고 있다.

# 치욕을 기억하라…고종의 길

일제에 의해 명성왕후가 시해되자 고종은 경복궁을 몰래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하는데 이 사건을 ‘아관파천’이라고 한다. 2011년까지 미국 대사관 직원들의 숙소로 사용되던 부지가 한·미 정부의 합의에 따라 우리나라 소유로 바뀌면서,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경복궁을 빠져나왔던 길이 복원됐다. 힘이 없던 나라의 치욕을 기억하는 고종의 길은 총 길이가 불과 120m로 천천히 걸어도 10분이 되지 않는 짧은 코스다. 궁녀가 타던 가마에 몸을 싣고 도망쳐야 했던 고종의 당시 상황을 떠올려보면, 그 길을 걷는 10분이 마치 1시간처럼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한 나라의 왕이자 남편으로서 고종이 겪었을 슬픔과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고종의 길 끝에 다다르면 아관파천의 목적지인 구러시아 공사관 건물이 나타난다. 6·25전쟁 당시 파괴돼 첨탑과 지하 통로만 남아있다. 안전 문제로 인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돼 있어 밖에서만 관람이 가능하다. 고종은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서 머물다가 외국 공관이 밀집해 있던 정동의 덕수궁으로 환궁하게 된다.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격동의 시대로 흘러가는 조선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은 덕수궁이 위치한 정동을 중심으로 일어나게 된다. 덕수궁에서 가장 유심히 둘러볼 곳은 중명전이다. 서양식 궁궐 건축물로 황실도서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중명전은 덕수궁 화재 후 고종의 집무실로 사용됐다. 중명전에서 강제로 을사늑약이 체결돼 조선은 외교권을 상실하게 되고, 5년 후에는 일제식민지가 되는 한일병합조약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 때문에 중명전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장소다. 중명전을 나와 정동길을 걸으며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교회, 배재학당, 이화학당을 느긋하게 둘러보자.

# 저절로 숙연…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서대문형무소에는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투옥됐다. 1907년 경성감옥으로 시작해 서대문감옥을 거쳐 서대문형무소로 명칭이 변경됐고, 해방 후에는 서울구치소로 역사를 이어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철거가 논의되기도 했으나,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역사관으로 복원했다. 일제강점기 때 경성감옥은 옥사 규모만 480여 평에 달했고, 이곳을 거쳐 간 독립투사만 4만 명이 넘었다. 붉은 벽돌로 이뤄진 전시실에는 형무소를 거쳐 간 독립운동가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5000여 장의 수형 기록표를 모아 놓았다. 앳된 얼굴을 한 소년, 소녀부터 백발이 성한 노인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일제에 대항했던 그들의 모습을 보면 숙연해진다.

사형장 입구에는 미루나무 한 그루가 우두커니 서 있다. 독립투사들은 사형장으로 들어서기 전 나무 앞에 서서 마지막으로 울분을 토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줄기 빛조차 허락되지 않던 독방과 섬뜩했던 고문 장면을 복원해놓은 고문실, 시체를 몰래 내다 버리던 시구문까지 둘러보면 당시의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사진 위부터 일제강점기에 한국 및 대륙 경제 수탈을 위하여 일제가 세운 중앙은행이었던 조선은행 건물. ‘고종의 길’에 있는 구러시아공사관, 서대문형무소의 거울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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