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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熱 실외로 뱉는’ 에어컨이 근대건축·백화점 탄생시켰다

기사입력 | 2019-08-14 10:25

에어컨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 외관.      ⓒREUTERS/Vivek Prakash 에어컨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 외관. ⓒREUTERS/Vivek Prakash


■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일상 풍경 - (21) 밀폐된 건물 가능하게 만든 에어컨

비·바람·햇빛 등 차단하고
내부 온도·습도 인공적 조절
환기창 없이도 실내공기 제어

사막 한복판에도 최대 쇼핑몰
더운 곳·추운 곳 차이 없애
균질한 내부공간과 경험 제공

현대인에 쾌적함 선사하지만
온실가스 내뿜어 환경도 파괴
명암 뚜렷한 두얼굴의 발명품


요즘과 같은 무더위에 없어서는 안 될 생활가전이 에어컨이다. 작년의 우리나라 가구당 에어컨 보유율은 무려 87%다. 열 집 중 아홉 집 정도에 에어컨이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에어컨 판매량은 해마다 늘어 기록적인 폭염을 기록한 지난 2년간은 250만 대가 팔렸고, 올해는 사상 최대로 300만 대가 팔릴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근대건축이라고 하면 르코르뷔지에나 미스 반데어로에와 같은 거장이 다 만든 것처럼 여기지만, 근대건축이 특유한 균질 공간을 만들 수 있었던 데는 에어컨이라는 설비가 있었다. 저명한 몇몇 건축가가 한 시대의 건축을 다 완성하는 게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근대건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잃고 고독하게 닫혀 있는 투명한 상자와 같은 건축이었다. 완성된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고 해 흰색을 가장 좋다고 여기고, 합리적 효율을 중시해 단순 기하학적 형태를 이상으로 여겼다. 게다가 비 한 방울도 자연의 바람도 집 안에 들어오게 하지 않으려는 기술을 무던히도 개발했다. 이런 건축을 보고 우리는 막연히 딱딱하다, 획일적이라고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배제하는 건축이었다.

이제는 세계의 어떤 도시에도 매끈한 유리로 덮인 단순한 모양의 건축물이 거의 똑같이 서 있다. 이런 건물은 철골 또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커튼 월(하중은 지지하지 않고 단순히 커튼 역할만 하는 바깥벽)로 지어져서 형태는 대부분 단순한 직육면체이며 밀폐된 유리로 외피를 이룬다. 여기에 또 다른 요인이 하나 더 있다. 내부 환경을 균질하게 해 실내의 빛, 온도, 습도, 소리, 바람을 거의 인공적으로 조절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외부가 없이 내부가 닫혀 있어야 하고, 환기를 위한 창 없이도 잘 유지되는 공간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에어컨이라는 공조 설비 때문에 가능했다.


에어컨은 ‘에어 컨디셔닝(air conditioning)’ 또는 ‘에어컨디셔너(air conditioner)’를 줄인 말이다. ‘에어 컨디셔닝’은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공간의 온도, 습도, 청정도를 조절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공기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에어컨디셔너’는 공기조화(空氣調和), 줄여서 공조(空調) 설비를 말한다. 이 이름은 1906년 미국 방직 공장의 습도를 유지하려고 만든 ‘에어 컨디셔닝’을 위해 만든 장치를 상용화하고자 ‘공기를 조절해 주는 것’이라는 뜻으로 만든 말이다.

컴퓨터가 군사 목적으로, 냉장고가 의료 목적으로 개발됐듯이, 에어컨은 원래는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 고안됐다. 곧 에어컨은 커다란 지붕에 덮인 커다란 단일 공간의 공기를 제어하기 위한 기술이었다. 에어컨은 쿨러(cooler)와 다르다. 쿨러는 에어컨 안에 있는 냉방기능을 말한다. 에어컨이라고 하면 쿨러만을 생각하는 데, 예전에는 쿨러 기능만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냉방과 난방의 두 기능이 있다. 이 두 기능이 함께 등장한 것은 1960년이 돼서였다.

에어컨은 방 안에 있는 실내기와 방 밖에 있는 실외기 2개가 한 세트가 된다. 실내기와 실외기는 하나의 파이프로 연결돼 있으며, 이 파이프를 통해 실내의 열이 밖으로 나간다. 그 파이프 안에는 냉매(冷媒)가 있다. 이 냉매가 실내 공기 안에 있는 열만 싣고 방 밖으로 내보낸다. 냉매 사이에는 열교환기가 있다. 냉매가 지나는 파이프가 열차가 다니는 노선이라면 열교환기는 열이 타고 내리는 역과 같다. 그러니까 에어컨으로 방이 시원해지는 것은 외기를 안으로 끌어들여서가 아니라 실내공기에 있는 열을 밖으로 내보내기 때문이다. 결국 에어컨이란 건축의 내부와 외부가 차단된 상태에서 내부의 열을 외부로 뱉어내는 장치다.

이 때문에 에어컨 실외기는 열기가 인근 건축물에 사는 사람이나 보행자에게 직접 닿게 되고 건물 벽에 그대로 노출되기 쉽다. 그래서 최근에는 실외기를 법규상 도로면에서 2m 이상 높은 곳에 설치해 열기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닿지 않게 하고, 벽에 노출하지 않고 건물 내부나 옥상에 설치하게 했다. 이 경우라도 건너편 도로변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실외기를 설치해야 하며 가림막을 세워 가리도록 했다. 그만큼 에어컨은 내부에만 충실한 설비 장치라는 말이다.

옛 건축은 일반적으로는 토착 재료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구조체도 풍토에 맞춰 만들었다. 자연조건이 언제나 가혹한 곳이 아니라면 아침저녁의 변화나 계절의 변화에 민감했으므로 기후에 따라 창이나 문의 모양도 많이 달랐다. 건물이 놓인 위치가 다르니 그 차이를 살려 무언가 의미를 주고자 했다. 또한 건물이 지어지는 곳의 고유한 생산 시스템 때문에 방마다 넓이도 달랐다. 그러나 근대건축의 에어컨은 단절된 채 독자적인 내부 환경을 자동으로 제어하기 때문에 건물을 어디에 짓고 방이 어디를 향하고 있어도 차이가 별로 없다. 이 때문에 아무리 덥고 아무리 추운 곳이라도 에어컨으로 제어되는 인공 환경은 어디에나 똑같은 건축물을 지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고속으로 사람과 사물을 수직 운반하는 엘리베이터가 발명돼 고층건물이 발전했다면, 에스컬레이터와 만나 피막으로 밀폐된 환경 속에서 연속하는 내부 공간을 만든 것은 에어컨이라는 공조 설비였다. 그 덕분에 자연 환기에 구애받지 않고 개구부가 작고 기밀성이 높은 커튼 월로 덮인 고층 건물이 크게 발전했다. 그래서 미국의 문명비평가 루이스 멈퍼드는 인공적인 공기 냉각과 유리로 지어진 근대적인 상업 건물 사이의 관계를 “에어컨의 요구에 따라 결정된 외관”이라고 요약한 바 있다. 그럴 정도로 에어컨이 근대 이후의 건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 주변의 오피스텔이나 원룸 주택에 한 집에 한 대씩 발코니에 실외기가 일률적으로 노출돼 있는 독특한 모습도 이에 속한다.

에어컨은 천장의 역할도 크게 바꿨다. 근대 이전의 건축에서 내부 공간의 진수는 천장에 있었다. 이런 시대에는 높이 올려다보는 천장에서 무언가 삶의 생명력을 느끼곤 했으므로 두 겹의 천장을 만들어 그 속을 사용하겠다는 생각은 거의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와서는 사람을 쾌적하게 해 주고 효율성을 올린다고 기술적으로 진보한 각종의 기계설비와 기구, 공조 덕트, 배선 등을 위층의 바닥 밑과 천장 사이의 천장 속에 은폐했다. 이렇게 덕트 등 설비를 감추려고 만든 천장을 영어로 ‘false ceiling’(가짜 천장)이라고 한다. 그 대신 ‘가짜 천장’ 사이에 많은 장치를 집어넣어 누구라도 똑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평탄한 천장으로 그 아래에 있는 균질한 공간을 향유할 수 있었다.

에어컨은 바닥, 바깥 유리면, 평탄한 천장으로만 이뤄진 실내 전체를 하나의 방으로 사용하든지 아니면 환경이 똑같은 방으로 자유로이 칸막이할 수 있다. 그 결과 하중을 받는 벽의 역할은 사라지고 언제든지 치환할 수 있는 칸막이벽이 이를 대신했다. 컴퓨터의 데스크톱처럼 외부에 전혀 무관심하지만, 반대로 내장만 바꾸면 유행에 맞춰 내부를 수시로 쉽게 바꿀 수도 있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에어컨에 의한 균질한 인공 환경은 바닥면적을 더욱 크게 만들어 실내를 넓고 깊게 만들 수 있었다. 따라서 에어컨이 없었더라면 외부와는 관계가 없이 수많은 사람이 내부에 모이는 백화점이나 쇼핑몰, 컨벤션홀과 같은 건물들이 생겨날 수 없었다.

과거에는 장을 볼 때도 밖을 보고 자연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것이 바자르나 아케이드가 됐고 그다음에는 에어컨의 발명으로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인공적인 쇼핑몰이 대중에게 제공됐다. 벽면에 창을 내지 않고 수많은 물건을 진열하고 그 사이를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는 백화점과 같은 건물에 딱 맞는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이런 건물일수록 관심은 내부로 집중됐다. 내부 공간 한가운데에는 위에 천창을 두고 모든 층을 뚫은 공간을 둬 사람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렇게 하면 어느 층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알고 위아래를 다닐 수 있는 장점도 함께 나타났다.

에어컨의 발명은 자본주의의 낙원을 만들어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인 두바이 몰(Dubai Mall)은 완벽한 사막에 둘러싸인 채 무지하게 더운 외부에서 벗어나 시원한 내부가 계속 이어지는 지상의 낙원과 같은 곳이다. 그런데도 에어컨으로 제어되는 내부공간의 구성 방식도, 그 안에 있는 브랜드도 모두 세계의 다른 쇼핑몰과 똑같다.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라스베이거스도 에어컨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다. 에어컨이 장소의 차이를 없애고 도시도 세울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런 내부 공간은 커다란 건축물에만 있지 않다. 자동차를 타고 자택을 출발해 대형할인매장으로 간다고 하자. 그 주택에서도 에어컨은 가동하고 있었다. 그 자체가 밀봉된 방인 차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대형할인매장을 향하고 있다. 자기 집에서 자동차를 타고 매장을 향하고 있는 사이도 감각적으로는 튜브와 같은 내부다. 차에서 내리면 에어컨이 잘 가동되는 대형할인매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가는 곳이 고속도로에 직결돼 있는 아웃렛 몰이라면 에어컨에 의한 내부 환경은 더 완벽해진다.

도시를 이동하는 환경에서도 에어컨이 작동하는 내부로만 이뤄진 곳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건물만이 아니라 자동차에도, 매일 드나드는 지하철역과 움직이는 지하철에도, 공공 통로에도 에어컨은 가동하고 있다. 에어컨은 건축물을 내부화하고 공공공간, 상업공간, 교통공간을 튜브처럼 연결해 간다. 더운 날 집에 혼자 있는데 에어컨을 틀기 어려워 지하철역 오가는 수고만 하면 지하철이나 쇼핑몰에서 눈치 보지 않고 하루를 시원하게 보낼 수 있다는 노약자가 많아졌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커피숍을 찾는 노인도 많은 것을 보면 어느덧 에어컨이 만든 균질 공간은 고령화하는 우리 사회의 일상이 됐다. 이처럼 사람들은 외부보다는 내부를 찾으며 그 결과 내부는 점점 더 거대해지고 확장해 간다. 에어컨으로 고안된 밀폐된 거대한 건축이 그대로 일상의 준(準)공공공간이다.

그럼에도 에어컨은 실내의 시원함을 위해 막대한 전기를 소비한다. 룸 에어컨은 선풍기 20∼30대를, 벽걸이 에어컨은 선풍기 10대 이상을 틀 수 있는 전기를 소비한다. 에어컨은 이산화탄소에 의한 대기오염과 온실가스 배출량의 10%를 차지하는 온난화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된 지 이미 오래됐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난한 문제다. 짐바브웨 출신의 건축가 믹 피어스가 40도를 오르내리는 수도 하라레에 에어컨이 없는 쇼핑센터를 설계했다고 모두 칭찬하지만, 그렇다고 몹시 덥고 몹시 추운 우리나라의 상업공간이나 공공공간에서는 이런 설계가 가능하지 않다. 공공공간을 확대하면서도 환경을 파괴하는 에어컨은 지구의 환경을 먹으며 쾌적함을 주는 역설적인 설비 장치다. (문화일보 7월 24일자 26면 20 회 참조)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에어컨이 없었더라면 쇼핑몰은 생겨날 수 없었다. 세계 최초의 쇼핑몰 사우스데일 센터(Southdale Center) ⓒWikimedia Commons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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