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방승배 사회부 차장

지난주 한산도에 다녀왔다. 한일 간 ‘경제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승전지에서 정신무장을 하기 위해 작정하고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휴가지인 통영에서 배를 탈 기회가 생겼고, 목적지가 한산도였다. 이순신 장군이 전략을 짜고 군무를 관장했던 집무실인 ‘제승당(制勝堂)’을 둘러봤다. 제승당은 문자 그대로 ‘승리를 만드는 건물’이라는 뜻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해군작전사령부 같은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이곳에서 철저하게 ‘제승’을 위한 전략과 전술에 몰두했다. 달 밝은 밤에 긴 칼 옆에 차고 계셨던 바로 그 수루(水樓)에 올라 한산도 앞바다를 굽어봤다. 1592년 7월 8일 판옥선 5∼6척으로 왜선 73척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해 그 유명한 ‘학익진(鶴翼陣·학이 날개를 편 듯이 치는 진)’ 전법으로 격파(도주 14척)한 한산대첩 그래픽을 보고 있노라면 그 치밀한 전략에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언급을 자주 했다. 지난달 12일 문 대통령은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 이후 전남도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전남 주민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불과 12척의 배로 나라를 지켜냈다”고 말했다. 30일 거제시 ‘저도’를 방문한 자리에서는 “저도 일대 바다는 옛날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께서 첫 번째 승리를 거둔 옥포해전이 있었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내면을 다룬 소설 ‘칼의 노래’의 작가 김훈 씨는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현대 사회의 지도자는 적이 330척을 가지고 들어올 때 내가 12척밖에 없는 사태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부는 8개월 전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에 손을 놓고 방관하다 일본 보복이 시작되니 허둥지둥하는 모습이다.

일본이 지난 2일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각의 결의를 단행하자 문 대통령은 긴급 국무회의를 열고 “일본에 다시 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기겠다는 전략과 전술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경제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을 이기는 전략이 남북경협이라는 말은 귀를 의심케 했다. ‘극일(克日)’전략이라기보다는 외세와 대결구도가 선명해질수록 정권에 힘이 쏠린다는 ‘안보결집 효과’를 노린 말로만 들렸다.

전략 부재의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칠천량해전(부산항 공격)에서 완패했다. 당시 ‘입으로만 싸웠던’ 정치인들의 “육군은 왜군이 강하고 수군은 우리가 강하다”는 주장에 맞서 이순신 장군은 “이길 수 있는 곳에서 싸워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그의 함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해임되고 비극은 시작됐다. 제승당 옆에 세워진 입간판에 적힌 이순신 장군의 어록 가운데 옥포해전을 앞두고 부하들에게 했다는 ‘물령망동 정중여산’(勿令妄動 靜重如山·가볍게 움직이지 마라. 태산같이 침착하고 무겁게 행동하라)이라는 말이 기억난다. 위기에 봉착할수록 더 진중해져야 한다고 강조한 이 말은 이 정부를 이끌고 있는 위정자들이 꼭 가슴에 새겼으면 한다.

b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