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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극단주의’를 우려한다

기사입력 | 2019-08-08 12:01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지층 기대어 반대그룹 배제
포괄주의 정치보다 즉각 효과
美 트럼프 彼我분리가 대표적

단기적 효과 노린 정치적 마약
민주제도 약한 한국엔 치명적
文대통령 그런 유혹 경계해야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국민 모두를 쳐다봐야 한다. 지지층뿐만 아니라 반대층도 고려해야 한다. 그는 정부 수반일 뿐 아니라 국가원수이기 때문이다. 내각제에서 총리가 정부 수반의 역할만 하는 것과 다르다. 대통령은 어느 한쪽 진영의 논리와 특정 정책만 절대 고수하기보다는, 다양하고 상반된 국민 의견과 입장을 경청·존중·조정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은 정파적 총리와 다를 바 없어지고, 국가 전체적으로 통합의 세는 약해지고 정파적 균열과 대립이 과도해지며 뒤숭숭한 국가 위기론마저 난무하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면교사(反面敎師)다. 그는 지지층에만 기대며 그들을 자극, 흥분시켜 국정 운영의 원동력을 얻는 전략을 취한다. 반대하는 사람이나 그룹은 적(敵)으로 규정하고 조정이나 절충은커녕 소통, 경청조차 시도하지 않는다. 비판은 가짜 뉴스라고 일축한다. 미국 정치의 정파 대결은 역사가 오래지만, 트럼프는 그 격렬함 및 피아(彼我) 구분의 단순함에서 전임자들보다 훨씬 더 극단에 있다. 중도·온건·포용·성찰 등의 단어는 수사나 시늉 수준에서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너무 편협한 가치관을 내세워 예전 같으면 회피 대상이 됐을 극단론자들을 응원할 뿐 아니라 측근으로 활용, 기용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극단주의는 계산에 입각한 전략일 수 있다. 탈(脫)산업, 탈물질주의, 지구화 등 전환기적 추세가 확산되는 오늘의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탈대중사회 상황을 고려했을 것이다. 증오 대상인 적을 만들어 지지층을 결집하는 극단주의 전략이, 중도로 외연을 확장하려는 포괄주의 전략보다 정치적으로 더 유리한 상황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미 2004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전략적 극단주의를 써서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모으는 데 성공했고 재선에서 압승했다.

전략적 극단주의는 대통령 측의 단기적 정치이익을 도모해줄지 몰라도 결국 국가의 재앙이 된다. 대통령이 극단으로 가면 그 반동으로 다른 극단도 힘을 얻게 되며 양극의 대결이 심해진다. 군소 정당의 극단주의와 달리 대통령의 극단주의는 체제를 거대한 이분법적 프레임에 몰아넣는다. 양측은 권력을 얻고 놓치지 않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을 것이므로 자칫 탈법·불법·초법의 수단들까지 동원될 수 있다. 구심력과 원심력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후자가 과도해져 균열과 대립이 통합의 기운을 압도한다면 그 국가는 내부뿐 아니라 외부와의 관계에서도 여러 위기증후군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 문제는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비슷한 대통령제인 한국도 조심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탈대중사회 진입 문턱에서 불안정·불확실성의 시대에 있다. 정치인이 전략적 극단주의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조건이다. 사회 일각에서는 이미 대통령의 전략적 극단주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전략적 극단주의가 격화한다면 그 폐해는 미국에서보다 더 클 것이다. 첫째, 200년 넘게 유지돼온 미국 헌법이 통합의 상징인 데 비해 우리 헌법은 그런 통합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미국의 정부·정치권력은 분산돼 있어 대통령의 극단주의가 가져올 여파에 제약이 가해지지만, 권력 집중적인 우리는 그런 기대를 하기 어렵다. 셋째, 정부·정치권에 비한 시장·시민사회의 위상과 자율성에서도 양국은 대조적이어서 대통령의 극단주의가 체제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권력만 좇는 정파적 정치인에게 전략적 극단주의는 마약과 같다. 단기적으로 느끼는 이익(효용)이 크고, 한번 사용하면 그 덫에 빠져 계속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국가 전체를 이분법적 분열과 대립으로 몰고 국정 거버넌스를 망가뜨리며, 그 와중에 정치인 본인이나 측근들도 결국 정파적 전면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정파성을 띠는 정치인은 이러한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을 수 있다. 반면, 대통령은 일반 정치인이 아니다. 국가원수로서 현실적 정치이익뿐 아니라 국민 모두를 바라보며 다양한 입장을 포용하는 당위성도 추구해야 하는 고차원의 정치인이 대통령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한·중국·러시아의 독재자는 물론이고 내각제인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나 반면교사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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