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전된 국가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에 따른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는 지시 서한을 지난 26일 무역대표부(USTR)에 보냈다. 중국을 핵심 타깃으로 하면서도 “멕시코·한국·터키도 개도국 지위를 주장한다”며 한국을 적시했다. 또 “90일 후까지 WTO 논의에 진전이 없으면 USTR가 부적절한 국가를 골라 개도국 처우를 없애라”는 후속 대책까지 지시했다. WTO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미국이 내년 대선을 1년 앞둔 올 11월 쯤 한·미 양자 관계 차원에서 농산물 개방 압력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 문제는,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점이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게 될 경우 WTO 가입 이후 한국이 농업 분야에서 예외적으로 인정받았던 높은 관세와 정부 보조금 등을 선진국 수준으로 내려놔야 한다. “농업만은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오겠지만, 이번 기회에 한국 농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진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현재 513%의 고(高)관세율로 쌀 시장을 지키고 있다. 쌀 변동직불금 등 농산물에 대한 직접 보조금과 세금감면 등 간접지원까지 포함해 농업에 쏟아붓는 보조금이 연간 11조 원에 이른다. 30년 가까이 매년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투입했음에도 농업 경쟁력은 높아지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농업은 단순 1차 산업이 아닌 융복합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변모 중이다. 이젠 식량 안보·식량 주권 도그마에서 벗어나 한국 농업의 글로벌 생존력을 높여야 한다. 농촌 표(票)를 의식한 나눠주기식 보조금은 농업 자생력을 갉아먹을 뿐이다. 한국과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일본이 쌀 직불제를 폐지하고 토지 소유와 농업 규제를 풀어 농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농업은 개방 예외지대라는 수세적 대응을 넘어, 한국 농업을 고부가가치 수출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런 농정(農政)개혁엔 손을 놓은 채 계속 농업을 성역화하고 보조금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국 농업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