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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한양대 교수·국제정치학

반도체 소재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한국 경제의 급소를 누르고 있다. 치졸하기 짝이 없는 일본의 행동에 부글부글 속이 끓는 심정이야 필설로 다할 수 없지만, 더욱더 냉정하게 국익을 우선해야 우리 국민에게 유리하다. 일각에서는 한·일 간에 맺어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파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으나 감정적으로 행동할 일이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이 협정을 유지해야 할 이유는 크게 다음 세 가지다.

첫째는, 한·미 동맹 때문이다. GSOMIA는 미국의 요구가 커서 맺어진 협정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을 발사해도 미국과 한국 그리고 미국과 일본은 정보를 공유하는데 한국과 일본은 정보 공유가 안 되니 미국이 중간에서 그 불편이 작지 않았고, 미국은 한·미·일 연대를 잘 유지해서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협정을 잘 유지하긴커녕 파기한다면 한·미 관계가 불편해지는 만큼 이 협정을 한국이 파기하자고 나서선 안 된다.

둘째는, 한·일 간의 갈등을 미국이 일본에 중재할 수 있는 매개체가 GSOMIA가 될 수 있다. 일본이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산업의 근간을 흔들면서 국민감정이 나빠져 GSOMIA를 파기하자는 주장이 없지 않지만, 미국을 생각해서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고 있다는 한국의 태도를 미국이 전혀 무시할 수 없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철회하라는 명분을 줄 수 있는 매개체가 GSOMIA다. 외교의 레버리지로 미국을 설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한·일 간 군사 정보 공유는 서로에 이득이 된다. 일본은 탈북자들이 준 정보, 즉 휴민트(HUMINT)를 통해 얻은 북한에 관한 소상한 정보를 갈구한다. 서로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공유한다 해도 일본으로선 탈북자를 통한 북한 내부의 정보는 그 어떤 정보보다 가치가 있다. 한국으로서도 일본의 정찰위성이 촬영한 북한 내부의 사진들과 통신감청 정보 등이 많은 도움이 된다. 일본은 향후 10년 이내에 군사용 첩보위성 10기를 운용할 예정이다. 3∼4기를 운용하는 한국보다 정보 수집의 폭이 넓고 통신감청 장비도 한국보다 뛰어나다. 그리고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다 보면 북한과 중국은 물론 일본의 동향 파악에도 도움이 된다.

반도체 소재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이른 시일 내에 해결해야 한다. 하루아침에 개발될 수 있는 기술도 아니기에 현안을 일단 해결해 놓고 기술 자립은 시간을 걸려 해결할 일이다. 일본과 기술 경쟁에서 한국은 아직 뒤처진 분야가 적지 않다. 티탄합금, 탄소섬유 수지, 로켓과 인공위성의 기술 등 한국이 따라잡아야 할 기술 분야가 많다. 아베 신조 총리의 비열한 수출 규제 조치는 한국에 큰 교훈을 준다. 장기적으론 허리띠를 졸라매고 기초 분야의 기술 확보에 나서야 하고, 단기적으론 국익을 위해 큰 인내를 갖고 문제 해결을 위한 냉철한 외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드(THAAD) 배치 때 중국이 얼마나 횡포를 부렸고 이 횡포는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됐다. 이제 반도체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숨통을 막는 일본을 보게 됐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의 식민지배 등 당할 만큼 당한 치욕스러운 역사를 안고 사는 대한민국의 앞길에 일본과 중국이라는 주변 강대국의 위협이 시작되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후손과 미래를 위한 대비를 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