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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군 돕는 ‘글래머 클럽사장’… B급 영화의 전설로 부활

기사입력 | 2019-07-23 11:00


■ 바브 와이어

‘유명세’ 자체가 직업인 사람들이 있다. 특정 직업도 없이 타블로이드를 휩쓸었던 패리스 힐턴이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셀럽(she is famous for being famous)’으로 불렸던 것처럼 말이다. 2000년대 이후에 힐턴이 있다면 1990년대에는 패멀라 앤더슨이 있었다. 캐나다 출신의 앤더슨은 플레이보이지 모델로 이름을 알리다가 인기드라마 ‘베이 워치’에서 구조대원으로 출연한 뒤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플레이보이 출신이라는 그의 이력으로 추측할 수 있듯이 ‘베이 워치’의 출연으로 그가 주목받게 된 것은 연기력 때문이 아니다. 형편없는 연기력과 발음에도 대중은 성형수술로 만들어낸 DD 컵 사이즈의 가슴과 기형적으로 잘록한 허리에 열광했다. 앤더슨은 머틀리 크루의 드러머 토미 리와 키드 록 등 문제적인 인물들과 결혼한 것 이외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화의 주연으로 출연한 것이다. 데이비드 호건의 1996년 연출작 ‘바브 와이어’(사진)는 동명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만든 SF액션영화다. 영화는 ‘최악의 영화’를 포함한 골든 라즈베리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으나 2011년에 블루레이로 출시되면서 B급 영화의 전설로 부활했다.

이 영화의 배경은 2017년, 내전으로 황폐화된 미국이다. 과격 보수집단에 의해 정부가 파괴되고 스틸하버라는 도시를 제외한 모든 곳에 계엄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저항군과 보수 과격파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무법과 범죄가 난무하는 스틸하버에서 바브 와이어(패멀라 앤더슨)는 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이자, 현상금 사냥꾼으로, 그리고 때때로 스트리퍼로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미국영화사상 가장 압도적인 스트립티즈 장면으로 알려져 있는 이 영화의 오프닝은 무대 위의 바브를 보여주며 시작된다. 건(gun)의 ‘워드 업(word up)’이 흘러나오고 무대 위에는 가슴이 노출된 검정 스판덱스 드레스를 입은 바브가 물세례를 맞으며 춤을 추고 있다. 앤더슨이라는 확실한 섹스 심벌을 내세우고 있는 영화답게 이 시퀀스는 그의 어마어마한 가슴을 클로즈업으로 담는다. ‘효과’라기보단 물폭탄에 가까운 물을 맞으면서도 용케 무대 위에서 그네도 타고, 자극적인 춤을 보이는 바브에게 객석의 남자 손님들은 환호를 보낸다. 물줄기가 얇아지고 노래도 끝이 날 무렵, 한 취객이 바브에게 더 화끈하게 보여달라고 소리를 지르자 바브는 12㎝가 넘는 하이힐을 벗어 던져 남자의 이마에 명중시킨다.

간략하지만 강렬한 5분 정도의 인트로로 이 영화가 설정한 바브의 소개가 확실히 전달된 셈이다. 그는 섹시하고, 남자의 시선을 즐기지만 그들의 조롱은 참지 않는 38 DD 컵의 히로인인 것이다. 또한 바브에게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그는 과거 저항군으로 활동했으나 함께했던 연인에게 실연당하고 현재는 닥치는 대로 돈을 모아 캐나다로 떠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클럽도 잘되고 돈도 모일 즈음, 바브에게 옛 연인 액슬(테무에라 모리슨)이 찾아온다. 그는 저항군의 우두머리 드본셔(빅토리아 로웰) 박사를 캐나다로 피신시키는 임무를 맡고 바브에게 도움을 청하러 찾아온 것이다. 자신을 두고 갔던 옛 연인이 반가울 리 없지만 바브는 자신에게 잠재했던 저항군의 피를 느끼고 이들의 피신을 돕는다. 과격파와의 총격전에서 완승한 바브는 액슬과 드본셔 박사를 무사히 공항까지 에스코트하고 유유히 사라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두 가지 요소는 줄거리의 허술함과 앤더슨의 내레이션이다. 특히 과도한 콧소리와 불안정한 발음으로 숱하게 비판 받았던 앤더슨이 폭력과 내전으로 짓밟힌 세계를 서술하는 대목들에선 실소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명백한 단점들을 보상할 만한 묘한 매력 포인트들이 영화 속에 산재해 있다는 점이다. 시퀀스마다 바뀌는 앤더슨의 스판덱스 의상과 그의 클럽을 통해 보이는 디스토피아의 재현은 이 영화의 배짱 좋은 유치함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영화평론가

김효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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