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기동 성균관대 명예교수·유교철학

무역전쟁·경제보복 등 유치한 다툼
상대를 존중하는 분위기 사라져 가

모든 문제 원인엔 ‘因’과 ‘緣’있어
因은 근본원인이고 緣은 직접원인

근본 해결책은 사람다움 회복하기
그 출발점은 바로 ‘나’에서 찾아야

요즈음 잇달아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자꾸 걱정된다. 국제적으로도 그렇고 국내적으로도 그렇다. 나라의 안팎을 막론하고 상대를 존경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사라져 가고 있다. 지금의 세상은 마치 나이 어린 폭력배들의 유치한 싸움판같이 바뀌어 가고 있다.

복잡한 문제가 생기면 생길수록 사람들은 그 문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 다급해진다. 하지만 그럴수록 문제는 점점 더 엉키고 만다. 모든 문제가 생기게 된 원인에는 인(因)과 연(緣)이 있다. 인은 근본 원인이고, 연은 직접 원인이다. 도둑을 맞았을 때에도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집을 관리하지 않아 허술하게 된 것은 도둑맞게 된 인이고, 도둑이 들어온 것은 연이다. 이 두 문제의 원인 중에서 집단속을 방치한 채 법을 강화해 도둑 잡을 방도만 마련한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리고 어떤 도둑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법은 만들 수가 없다. 도둑을 맞지 않는 근본 방법은 집단속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국내외 정세가 자꾸 복잡해지는 것은 문제의 근본 원인인 인은 놔둔 채 직접적인 원인인 연만 해결하려는 데 있는 듯하다.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과다하게 관세를 부과하는 것, 징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출 규제를 하는 것,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해서 출산하는 산모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것,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노인들에게 일자리와 월급을 주는 것 등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문제 해결책은 거의 인은 놓아두고 연에만 매달리는 것들이다. 이런 방식들은 미봉책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점점 더 복잡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옛날 중국의 춘추시대 때 제나라의 왕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그때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게 되고, 신하는 신하답게 되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되고, 아들은 아들답게 되는 것입니다’ 하고 답변했다. 어머니는 어머니답게 되고 딸은 딸답게 돼야 한다는 말은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되고, 아들은 아들답게 돼야 한다는 말에 포함돼 있다. 이 말 외에도 스승은 스승답게 되고, 학생은 학생답게 되며, 사장은 사장답게 되고, 사원은 사원답게 돼야 한다는 등의 말이 모두 포함돼 있다.

자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어머니다. 남의 어머니를 높여 이르는 자당(慈堂)이라는 말의 ‘자(慈)’는 ‘그 마음’, 즉 ‘그와 하나가 되는 마음’이란 뜻이다. 아들딸이 학교에서 좋지 않은 성적표를 가지고 올 때는 죽을 맛이다. 이때 아들딸과 한마음이 되는 어머니는 꾸짖지 않고 그들의 마음이 돼 위로한다. 그렇지만 아들딸과 한마음이 되지 못하는 어머니는 심하게 꾸짖는다. 결국 죽을 맛으로 오는 아들딸을 더 죽이는 일이 되므로 꾸짖는 어머니는 어머니가 아니라 저승사자다. 아들딸은 자기가 살기 위해 저승사자에게 저항한다. 저승사자가 된 어머니는 어머니다운 어머니가 아니다.

어머니가 아들딸의 마음이 될 수 있는 것은 자기에게 어머니라는 의식이 없을 때 가능하다. 임금도 그렇고 신하도 그렇다. 임금이 임금이라는 의식을 가지게 되면 신하들의 마음과 하나가 될 수 없고, 백성의 마음과 하나가 될 수 없다.

임금이 임금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되고, 신하가 신하라는 이름에 걸맞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답게 되지 않은 사람이 임금이 되면 임금답게 되지 못하고, 신하가 되면 신하답게 되지 못한다. 정치가 제대로 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노력을 하지 않는 데 기인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잘못된 정치의 책임을 임금에게 돌려 임금을 임금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다른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면, 그 사람 역시 임금다운 사람이 아니므로 잘못된 정치가 되풀이된다. 그러니 정치가 바르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노력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우리가 사람답게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 까닭은 자기가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자기만큼 못된 사람이 사람의 표준이 되기 때문에, 자기보다 착한 사람을 보면 “너처럼 착해 빠진 사람은 세상을 살기 어렵다”고 타이르기도 하고, 자기보다 더 못된 사람을 보면 “저런 못된 놈들 때문에 나라가 안 돼” 하고 꾸짖기도 한다.

사람들의 삶에서 자기가 기준이 돼버린 근본 원인은 서구 근세철학에 기인한다. 서구의 근세는 과거의 기독교를 부정하고 신으로부터 해방되면서 시작됐다. 신으로부터 해방된 서구인들은 엄청난 과학기술로 무기를 만들어 세계를 유린했고, 온 세계는 앞다퉈 서구화를 향해 달려왔다. 그 결과 우리는 인간성 상실이라는 엄청난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내가 허술하게 교회에 가면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외로운 영혼이고, 절에 가면 아직도 불쌍한 중생이며, 향교나 성균관에 가면 아직도 소인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구원받기 위해 노력하고, 성불하기 위해 노력하며, 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것이 인간답게 되는 지름길이지만, 지금은 그런 가르침이 서구 근세철학에 위배되므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서구화를 통해 물질문명의 혜택을 엄청나게 누리지만, 그 대가로 영혼이 외롭게 됐고, 온 세상이 혼란에 빠져들게 됐다. 이런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길을 회복하는 것뿐이다. 그것은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오늘의 사태들을 걱정하다가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결국 나의 문제로 귀결됐다. 나부터 사람 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이미지 크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