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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외롭더라, 니가 있어 고맙다, 친구야’… 동창회 울리다

기사입력 | 2019-07-11 11:05


■ 안치환 ‘오늘이 좋다’

그날 동창회는 색달랐다. 고3 때 담임선생님들까지 함께 모신 덕분이다. “자, 각자 담임선생님 찾아서 반별로 모이세요.” 회장 녀석의 느닷없는 제안에 몇몇 친구가 어리둥절해한다. “내가 고3 때 몇 반이었지?” 숫자는 잊는다 해도 설마 담임을 기억 못하나. 그게 아니라 사실은 고2 때 유급을 당해서 학교를 1년 더 다닌 친구들이었다. ‘친구는 그래도 옛 친구’라며 달려왔는데 그 시절 담임들의 깜짝 등장으로 졸지에 난감한 처지에 놓인 것이다.

궁금한 사람은 묻고(ask) 싶은데 숨기려는 사람은 그냥 묻고(bury) 싶은 것, 그게 과거다. 생활기록부를 들춰야 할(감춰야 할) 그 상황에서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두 번은 없다’ 중). 낙제가 낙망이 될 순 없다. 어제는 오늘의 재료일 뿐이다. ‘두 번은 없다/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그러므로 우리는/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어색한 분위기를 하나로 만드는 데 노래만 한 게 없다. 질풍노도 시절의 엘비스 프레슬리도 슬그머니 부활한다. ‘지금이 아니면 무슨 소용 있나요(It’s now or never)’. 나는 안치환(사진)의 ‘오늘이 좋다’로 화답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누구는 저세상으로/또 누구는 먼 나라로 떠났지만/그립던 너의 얼굴 너무 좋구나/니가 살아 있어 정말 고맙다/만만치 않은 세상살이/살다보니 외롭더라/니가 있어 웃을 수 있어 좋다’.

잘 부른 노래는 감탄에 머물지만 잘 고른 노래는 감동까지 간다. 건성으로 박수 치던 ‘아이들’의 눈에 이슬이 맺히는가 싶더니 끝부분에선 아예 눈물을 훔치는 친구들까지 보였다. ‘잘난 놈은 잘난 대로/못난 놈은 못난 대로/모두 녹여 하나 되어 마시자/하지만 우리 너무 취하진 말자/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구나/남은 인생 통틀어서/우리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내 친구야’. 노래 제목이 뭐냐고 묻기에 ‘오늘이 좋다’라고 했더니 한 친구가 술잔으로 허공을 젓는다. “나 아직 쓸모는 있는데 어디 쓸 데가 없구나.”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맞장구에 엷은 한숨이 실린다. “오늘이 참 좋은데.”

하지만 낭만주의는 기필코 사실주의에 공격당한다. “내일은 좀 불안해.” 테이블에 앉은 녀석들의 표현이 조금씩 달라서 흥미로웠다. 축구를 좋아하던 친구는 인생 후반전이라고 하는데 문예반 하던 놈은 인생 2막이라고 했다. 순박한 행색의 녀석은 인생 2모작이라고 자신의 미래를 규정했다. 노장의 역전승도 좋고 황혼의 주인공도 좋다. 풍년의 꿈인들 마다하겠는가.

‘오늘이 좋다’는 2010년에 나온 안치환의 10집 앨범에 실렸는데 동창회에 다녀온 후 그 느낌을 살려 만들었다고 한다. 차제에 음악 프로그램으로 동창회 형식은 어떨까 싶다. 함께 모이는 동창회(同窓會)이자 함께 노래하는 동창회(同唱會) 말이다. 그와는 1989년 대학생 퀴즈프로그램(퀴즈아카데미)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으니 벌써 30년이 넘었다. 그때 부른 노래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였는데 요즘 갑자기 TV의 은행 광고에 그 노래가 등장해서 감회를 복잡하게 만든다. ‘머리가 가슴을 따라주지 못하고/저도 몰래 손발도 가슴을 배신한다’(안치환 ‘마흔 즈음’ 중). 안치환의 11집 표제가 ‘50’이었는데 그때 그의 나이 50세였다. 작년에 나온 12번째 앨범 ‘53’도 그의 나이다. 그가 암을 이겨냈다는 건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나이를 의식하는 건 하루하루가 감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기가 한창일 때 “요즘 뜬 것 같은데”라고 했더니 그가 이렇게 되받았던 기억이 난다. “물 위에 뜬 게 뭐가 그리 좋겠어요”. 다시 들으니 노래에도 이런 그의 일부가 보인다.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 사람’.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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