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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직 논설위원

빅데이터·인터넷은행 등 혁신
거부하는 수구적·퇴행적 행태
進步 이름으로 공공연히 진행

진보진영 혁신거부는 코미디
文정부는 수구적 진보로부터
욕먹을 각오로 혁신 매진해야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지닌 ‘진보(進步)’는 ‘보수(保守)’보다 개념적으로 우위에 있다. 진보라는 말 자체에 내재된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이미지와 함께 보다 나아지길 원하는 인간 본성의 욕구가 맞물린 결과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자칭 ‘진보’는 종종 수구(守舊)세력으로도 표현되는 보수와 대칭되면서, 도덕적·윤리적 프리미엄까지 만끽하고 있다. 진보 진영에 가담하면 무언가 지적(知的)이고 개념 있어 보인다는 선입견이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보수·진보’란 용어 대신 ‘우파·좌파’란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정명(正名)운동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국내 각 부문에서 첨예하게 논란이 되는 사안과 이를 둘러싼 공방을 들여다보면 ‘진보·보수’에 대한 통상적 규정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글로벌 추세와 미래에 부응하는 변화와 혁신을 거부하면서 알량한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수구적이고 퇴행적인 행태가 ‘진보’라는 깃발 아래 너무도 당당하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는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수요소이기에 ‘21세기 원유’로 불린다. 우버·에어비앤비 등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글로벌 경제는 빅데이터로 고속질주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빅데이터 후진국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분석한 한국 빅데이터 순위는 63개국 중 31위. 이를 타개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지난해 “산업화 시대의 경부고속도로처럼 데이터 경제 시대를 맞아 데이터고속도로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이후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빅데이터 육성을 위해 신용정보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 등 ‘빅데이터 경제 3법’ 통과가 필수적인데 소위 진보단체들이 똘똘 뭉쳐 이를 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가 오·남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법안 전면 철회를 주장하는 시민단체 모임에는 참여연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한국을 대표하는 진보단체가 망라돼 있다.

ICT기업 등 새로운 산업자본의 진입을 유도해 금융 혁신을 촉진하자는 취지로 금융당국이 추진했던 제3 인터넷전문은행은 어떤가. 지난 5월 진행됐던 제3 인터넷은행 예비인가 심사에서 신청서를 냈던 컨소시엄이 모두 탈락하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온 뒤 업체들은 물론 집권 민주당과 금융당국도 눈치만 살피고 있다. 인터넷은행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당정협의까지 열고 대주주 자격 요건 완화 방안 검토에 나섰지만, 주요 진보단체들이 “특혜”라고 주장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행을 막아선 한 중심에도 참여연대·민변·경실련·금융정의연대 등 쟁쟁한 진보단체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경제가 살기 위해선 생산성과 유연성을 높이는 노동개혁이 필수”라고 거듭 권고하지만 역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진보 진영의 좌장격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딱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민노총의 기득권 지키기 투쟁으로 나머지 90% 근로자와 청년실업자 고통만 커진다”는 원성이 자자하지만 마이동풍이다. 오히려 “문 정부를 길들이겠다”며 총파업을 준비 중이다. 이외에 원격의료 등 스마트 의료서비스와 기업 혁신을 이끌 규제 타파를 막아서는 중심에는 어김없이 진보의 깃발을 든 시민단체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역사 발전을 믿고 사회 변혁을 이끌겠다는 진보 진영이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며 혁신 현장 곳곳에서 최대 저항세력이 된 현실은 코미디다. 말로는 공정 경제를 외치면서 이권의 보호막을 지키기 위해 올인하는 진보단체의 불공정한 행태는 자기모순이다. 세상의 변화를 거부한 채 높은 울타리를 둘러치고 그 안에서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이득만 챙긴다면 이게 진보인가, 수구인가. 이제 문 대통령은 선택해야 한다. 문 정부의 핵심 지지층인 진보단체의 뜻을 따라 변화와 혁신을 거부하며 수구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진보 진영으로부터 욕먹을 각오를 하고 혁신의 길을 갈 것인가. 때마침 문 대통령은 참여연대 출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임명했다. 문 대통령과 김 실장은 참여연대로부터 욕먹을 용기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