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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한국 원전의 핵심 기술이 해외로 유출됐다는 의혹에 정부가 조사에 착수했다. 한국전력기술은 적법한 절차를 따른 데다 계약 시 제한 사항도 있는 만큼 기술 유출은 아니라고 소명한다.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우리가 60년 넘게 공들인 ‘제3의 불’에 빨간불이 켜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한 지 만 2년, 1959년 원자력연구소 설립 후 세계 최고급으로 성장한 국내 원전산업이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인력 누출에 이어 기술 유출도 가시화하고 있다. 지난해 원자력 관련 공기업에서 자발적으로 퇴직한 사람은 144명으로 상당수는 해외 원자력 업체에 재취업했다. 이 과정에서 기술 유출 의심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원자력으로 매년 수천억, 수조 원대 이익을 내던 공기업들은 일제히 적자로 돌아섰다. 원전 이용률 하락이 주요 원인이다. 강소기업마저 문을 닫고, 핵심 인력과 고급 기술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서 원전을 수출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 일본, 캐나다, 한국, 그리고 중국이다. 이 중 한국이 척박한 풍토에서 원자력으로 발전하는 기술을 자립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 원자력은 국가 차원의 다학제 지식과 세계 수준의 최고급 기술을 필요로 한다. 세계 원전 시장 주도권은 천연우라늄 중수로를 내세운 캐나다가 1980년대 세계 시장에서 밀려나면서, 농축우라늄 경수로를 앞세운 미·프·일에서 2000년대 한·러·중으로 판이 새로 짜이고 있었다. 그러던 2017년 여름, 한국 정부는 돌연 ‘에너지 전환’이라는 이름 아래 탈원전을 선포했다.

원전을 지어주는 나라는 그만큼 세계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진다. 미국은 지금 러시아와 중국보다는 한국에 손을 내밀고 있다. 원전의 건설 비용과 공사 기간을 둘 다 맞추는 것은 매우 어려운데, 한국형 원전은 자국은 물론 타국에서도 시간과 예산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점이다.

2009년 11월 16일 미국 워싱턴DC 옴니쇼어햄 호텔, 원전 원조 미국원자력학회 동계 대회장. 아랍에미리트(UAE)가 한국 원전을 낙점할 게 거의 확실해 보인다는 소식에 순간 숨이 멎었다. 한 달 전, 중대사고 시 수출 노형인 신형 경수로의 안전 문제점을 제기하며 UAE에서 날아온 미국인 전문가 앞에서, 3차원 동영상과 함께 가상현실에 인공지능(AI)을 도입해 현존 원전 중 세계에서 최고로 안전하다고, 그래서 사고 시 사흘이나 손을 놓고 있어도 저절로 안정을 찾는다고 강변하고 온 터라 감회가 남달랐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한여름 밤. 불현듯 눈을 떴을 때 원자력은 신기루처럼 사그라지고 있었다. 서울대 관악교정 32동 2층 교수 연구실. 왁자지껄 들락거리던 대학원생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강의실을 가득 메워야 할 학부생과 교수진은 광화문과 서울역에 나가 ‘원자력 바로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국익의 자해(自害)도 넘어 자살(自殺) 수준이다.

화석이 지하에서, 풍력이 지상에서, 태양이 천상에서 나오는 동력이라면, 원전은 두뇌에서 캐내는 전기다. 화석연료와 달리 유일무이한 무탄소원으로 태양이나 풍력보다 탄소 족적이 작다. 신재생과 함께 한 오백 년 한반도를 떠받쳐 줄 소중한 자원이다.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적은 곳에서는 사람의 머리에서 캐낼 수 있는 동력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하며, 우수한 과학기술자를 무수히 길러내야 한다. 원자력이 존재 이유를 되찾을 때 신재생도 끊김 현상을 극복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