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국정농단 사건, 사법행정권 남용 등 소위 ‘적폐 수사’에 전가의 보도(傳家寶刀)처럼 적용된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죄(罪) 적용 기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재심리 필요성이 커졌다. 공무원이 민간인을 상대로 직권을 남용했을 때 처벌하는 입법 취지와는 달리, 추상적인 법 조항을 공직자의 상하관계의 문제로 확대 해석하면서 공직사회 복지부동을 부추기는 것은 물론, 모호성으로 인해 죄형법정주의를 위배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권성 전 헌법재판관은 19일 ‘직권남용의 적용 범위가 모호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권 전 재판관은 2006년 재판관 시절 이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 심사 때 “정권 교체 후 정치적 보복을 위한 전(前) 정부의 고위공직자를 처벌하는 데 이용될 우려가 있다”는 소수의견을 낸 바 있는데, 그대로 현실이 됐다. 최근까지 국정농단 사건 피고인 26명의 직권남용 혐의 97건 중 28.8%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또, 이명박 전 대통령은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반면, 유죄 판결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등 들쭉날쭉이다.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재판 중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재판에서, 같은 법을 가진 일본에선 공직자 상하 간 처벌 사례가 없음을 적시하며 직권남용죄의 남용을 지적했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13일 ‘김학의 사건’ 규명을 지시한 문 대통령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현 검찰의 수사 기준을 대입하면 탈원전·보철거 등도 직권남용 가능성이 크다. 재판부는 권 전 재판관 신청을 수용하고, 헌재는 재심리해 법리의 모호성을 없애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