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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추락·최저임금 직격탄… “파산 외 선택지 없어”

김윤희 기자 | 2019-06-13 12:11

광화문·종로 상가 거리 ‘텅텅’
조선 불황 경남·울산은 빚더미
수도권-지방 中企 도산 증가세

스마트폰 등 주력산업 흔들려
수년간 개인·기업 등 지원에도
‘최후의 상황’ 내몰린 이 많아


13일 오전 서울 중심의 ‘정통상권’으로 불리는 광화문 - 종로 - 종각으로 이어지는 대로변에는 ‘임대’ 광고만 붙어 있는 비어 있는 상가가 눈에 띄게 많았다. 유동 인구가 많은 종각의 ‘젊음의 거리’에도 공실이 곳곳에 보였다. 종로상권뿐만 아니라 이태원 ‘경리단길’, 신사동 ‘가로수길’, 연남동 ‘연리단길’, 송파동 ‘송리단길’ 등 뜨는 상권을 지칭하는 ‘∼길’들은 요즘 몰락하는 상권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한국감정원 자료에 따르면 경리단길이 있는 이태원의 공실률(중대형 상가 기준)은 올 1분기에 24.3%까지 치솟았다. 지난 2년간 두 자릿수로 오른 최저임금으로 인건비 부담은 커지고, 근로시간 단축으로 직장인 유동인구가 줄어드는 등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상인들 가운데는 개인 파산을 신청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50대 초반의 A 씨는 20년간 경남 거제도 한 조선소에서 근무하며 월 400만 원을 벌었지만, 조선업 불황이 덮치면서 점차 소득이 줄었다. 3명의 자녀가 성장할수록 부양비는 늘어나는데 소득은 줄어 빚이 점점 늘어났다. 경기불황으로 집값까지 떨어지자 부동산 가치가 담보대출액보다 더 낮아졌고, 집을 팔고 남은 담보대출이 신용대출로 이어지면서 총 1억2000만 원의 빚을 떠안았다. 이를 상환할 방법이 없었던 A 씨는 최후 수단으로 개인 파산을 신청했다.

A 씨처럼 불경기로 빚에 허덕이다 파산과 회생을 위해 법원 문을 두드리는 개인·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개인 파산과 회생은 경기 불황이 덮친 지방 공업도시 지역에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법원 통계에 따르면 개인 파산 신청자는 올해 1∼4월 1만5122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의 1만3907명에 비해 8.7% 늘어났다. 개인 회생 신청자도 2만9042명에서 3만2005명으로 10.2% 증가했다.

개인회생은 월수입에서 최저 생계비를 제외하고 변제 가능한 금액을 3∼5년간 채권자들에게 지급하고 이후 남은 채무는 탕감해주는 제도다. 개인회생의 최소 변제금은 5000만 원 이상 채무일 경우 3% 이상, 5000만 원 미만은 5%로 최대 95∼97%의 빚을 탕감받을 수 있다. 개인파산은 채무자의 보유재산을 돈으로 환산해 채권자에게 배당한 후 채무를 면제해주는 제도로, 재산을 지킬 순 없지만 장래 소득으로 채무를 변제할 필요가 없다.

개인파산·회생 신청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경기불황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로 이자 부담이 늘어나면서 빚을 갚을 수 없는 채무자가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이 지난 3월 28일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대출 증가율은 5.8%로 2013년(5.7%)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가계소득 증가율(3.9%)보다 훨씬 높았다. 정부가 주택시장안정 대책과 함께 대출규제를 강화하면서 대출 증가속도는 둔화세를 띠고 있지만, 소득보다 부채 증가율이 여전히 높았던 것이다.

개인회생도 신청자의 변제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는 서울회생법원 업무지침이 올해 폐지됐음에도 신청 건수는 더 늘어났다. 특히 각 법원이 개인회생 불법 브로커 차단 대책을 세우면서 감소 추세를 보이던 신청 건수가 올해 다시 급증했다. 개인회생 신청자가 생계비 부족을 이유로 변제를 중도 포기해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도 빈번하다.

대한변호사협회 안창현 변호사는 “개인회생 생계비는 매년 보건복지부 공표 중위소득의 60%(4인 가구 약 276만 원)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대학생이 있는 가정이나 서울 지역 가정만 보더라도 그 생계비로는 생계유지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변제 기간에 책정된 생계비가 비현실적으로 낮아 채무자들이 개인회생 변제금을 위해 다시 고율의 대출상품을 이용하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 파산과 회생은 극심한 조선업 불황이 덮친 경남지역에서 두드러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창원지방법원의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지난해 893건에서 30.45% 증가한 1165건을 기록했고, 울산지방법원 신청 건도 지난해 300건에서 387건으로 늘었다.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지난 몇 년간 정부 차원의 개인·기업 지원이 진행됐는데도 파산과 회생이 증가했다는 것은 그만큼 최후의 상황에 내몰린 사람이 많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파산신청을 한 기업도 2017년 1∼4월 242개, 2018년과 2019년 같은 기간 각각 245개, 307개로 꾸준히 늘고 있다. 제조업 추락과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수도권 및 지방 중소기업들의 도산 증가세가 뚜렷하다.

수원지방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기업은 지난해 1∼4월 26개에서 올해 같은 기간 34개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울산지방법원(1개 → 8개)에서도 증가 폭이 컸다.

이처럼 수도권 법원에서 기업 파산신청이 증가한 것은 자동차와 스마트폰 등 주력 산업 부품업체 경기가 악화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파산 전문 변호사들의 중론이다. 이미 수년간 어려움을 겪었던 조선·철강·기계 업종뿐만 아니라 자동차·스마트폰 등 남은 주력산업 업종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김윤희 기자 wor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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