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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냐 돈이냐, 기로에 선 대만

기사입력 | 2019-06-12 14:24


황성준 논설위원

차이잉원 총통, 일국양제 반대
중국 의존 벗고자 신남향정책
국가 정체성, 대선 최대 이슈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9일 “일국양제(一國兩制)는 대만인의 선택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같은 날 홍콩에서 벌어진 ‘범죄인 인도법안’ 반대 시위를 보고 이렇게 천명한 것이다. 1997년 홍콩 주권 반환 이후 최대 규모 시위가 홍콩에서 일어났다. 103만 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한 이번 시위의 핵심 구호는 ‘반송중(反送中)’이었다. 중국을 범죄인 인도 대상 지역에 포함한 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시위였다. 그러지 않아도 2015년 중국 공산당 비판 서적을 팔던 서적상 5명이 중국으로 몰래 잡혀가는 등, 홍콩의 반중(反中) 인사들이 탈법적으로 중국에 끌려가는 일이 발생해 홍콩인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이제 ‘합법적으로’ 데려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중국은 1997년 ‘50년간 중국이 외교와 국방에 대한 주권은 갖되, 홍콩에 고도의 자치와 사법 독립, 언론 자유를 보장한다’는 일국양제 원칙을 약속하면서 홍콩을 영국으로부터 돌려받았다. 그런데 차이 총통이 “일국양제 하에서 22년 만에 홍콩인의 자유는 더는 당연한 것이 아닌 것이 됐다”며, “대만이 깊은 경각심과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 일국양제가 중국이 대만에 제시하는 통일 모델이란 점이다. 따라서 ‘대만 사람은 민주를 사랑하고 우리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견지한다’고 말해야 한다는 차이 총통의 메시지는 중국의 통일 방안을 거부한 것이 된다.

현재 대만은 내년 1월 11일 치러질 총통 선거 및 총선을 앞두고 여러 정파가 계산기 두드리기에 여념이 없다. 차이 총통도 재선 도전 의사를 밝힌 상태다. 내년 선거에서의 최대 이슈는 중국과의 관계, 그리고 이와 밀접히 결부된 경제 문제다. 차이 총통의 민진당 정부는 탈(脫)중국 노선을 취했다. 심지어 국호 변경 및 대만 독립 문제를 부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이 이런 움직임에 경제 보복을 가하자, 대중 경제 의존도가 높은 대만 경제는 휘청일 수밖에 없었다. 차이 총통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자 동남아, 더 나아가 인도·호주 등과 연계하는 신남향정책을 추구했으나 당장 가시적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못 살겠다는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민진당의 아성인 가오슝(高雄)마저 국민당에 내주고 만 것이다.

이런 시점에 터진 홍콩 시위는 차이 총통에게 상황 반전을 위한 호재가 될 수 있다. 또, 미국 국방부가 지난 1일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대만을 국가로 언급한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해석하기에 따라선 미국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버리고 대만 독립을 지원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 인도·태평양 차관보는 6일 “중국의 위협이 커지고 있다”며 “미국은 대만관계법에 따라 계속 군사장비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중국 외교부는 10일 “미국에 엄중한 교섭을 제기해 잘못을 고칠 것을 요구했다”며 “‘2개의 중국’을 만들려는 어떤 시도에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통일이냐 독립이냐 현상유지냐는 대만의 인구 구성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고산족(高山族)이라 불리는 대만원주민은 한족(漢族)이 아니다. 언어도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이다. 이들은 2%에 불과해 영향력이 거의 없다. 한족은 본성인(本省人)과 외성인(外省人)으로 나뉜다. 흔히 대만인으로 불리는 본성인은 명·청 때 이주해 온 한족인데, 다시 혹로(福佬)와 하카(客家)로 나뉜다. 혹로는 민난어에서 파생된 대만어, 하카는 하카어를 사용한다. 이들 대부분은 표준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이중언어사용자다. 외성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민당 정부와 함께 옮겨온 중국인을 가리킨다. 국민당은 외성인, 민진당은 본성인이 주요 지지기반이다.

외성인 대부분은 중국인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본성인 정체성은 중국인, 대만인, 대만 중국인 등으로 분열돼 있다. 그동안 대만인이 중국인의 압제 속에 살았다고 여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륙에서 쫓겨 온 국민당 정부는 과거 학교와 공공기관에서 대만어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등 강한 ‘중국화 정책’을 추구했다. 과거 ‘대만 민주화 운동’은 외성인에 대한 본성인의 항거란 성격도 내포하고 있었다. 민진당 정권이 장제스(蔣介石)는 물론 쑨원(孫文) 지우기에 앞장서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한국은 과거 대만을 ‘자유중국’이라 칭하다가, 중국과 수교하면서 내동댕이쳤다. 한때 한국∼대만 직항로를 폐쇄하기도 했다. 화웨이 사태로 대변되는 미·중 대립은 한국이 거대한 중국시장에 부속된 ‘큰 홍콩’이 되느냐, 아니면 미국·일본과의 ‘민주동맹’으로 나가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안미경중(安美經中)식 정경분리 노선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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