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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 내팽개친 ‘단물 정부’

기사입력 | 2019-06-12 14:18

김병직 논설위원

문재인 케어·예타면제 등 정책
책임 안 지면서 생색만 내려는
무책임한 체리피커 정부 행태

세금 퍼붓는 생색은 위기 초래
지지층에 미움받을 용기 갖고
다음 세대 배려한 리더십 필요


신용카드 업계가 요즘 체리피커(cherry picker)와의 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체리피커란 신포도 대신 체리만 골라 먹듯이 자신의 실속 챙기기에만 몰두하는 소비자들을 일컫는 말. 그동안 기프트카드 충전액의 80% 이상을 사용해야 잔액을 환불해줬지만, 지난해부터 60%만 써도 잔액 환불이 가능해지자 체리피커가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100만 원 충전 기프트카드로 항공 마일리지 적립 등 각종 혜택을 누린 뒤 60만 원만 사용하고 40만 원을 환불받는 방식으로 잇속을 챙긴다. 이 같은 행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똑똑하고 야무진 소비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이 아닌 정부가 ‘단물만 빨아먹는’ 행태를 보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문재인 케어, 고용장려금 지급 확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확대… 문재인 정부가 지난 2년간 펼친 정책 가운데 거센 논란을 불러온 현안 중 일부다. 그런데 이들 정책의 기저를 관통하는 특징이 있다. 그 정책 시행의 생색은 현 정부가 챙기지만, 그에 따른 부담은 대부분 일반 국민이나 다음 정권, 또는 후세대가 지게 된다는 점이다. 건강보험 적용대상을 크게 확대한 문재인 케어가 첫선을 보인 지난해 7년 연속 흑자 행진을 하던 건강보험 재정은 적자로 돌아섰다. 2018년 기준 20조 원에 달하는 건보 누적 적립금은 문재인 케어가 완료되는 2022년 이후에는 11조 원 안팎으로 반 토막 날 것으로 추산된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대란을 막기 위해 정부가 쏟아낸 청년추가고용 장려금 확대 등 일자리 대책도 마찬가지다. 그 비용을 고용보험기금에서 충당하다 보니 고용보험 곳간이 고갈 위기에 처했다. 기금 고갈 속도를 늦추려면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 결국 현 정부는 일자리 지원이란 미명 아래 돈을 확 풀면서 생색을 낼 수 있지만, 그 부담은 고스란히 회사와 근로자들이 떠안게 되는 셈이다. 선심성 재정사업을 막는 방파제로 도입했던 예타 제도를 정부가 20년 만에 전면 개편해 문턱을 크게 낮춘 것도 결국 그 뒷감당은 다음 정부가 국민 혈세로 해야 할 처지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에 특정 상한선을 두지 않고 향후 3년간 나랏빚을 200조 원 이상 늘려 펑펑 쓰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미래세대의 호주머니를 미리 털어 현 정부가 생색을 내겠다는 발상과도 같다.

국민 지원금을 확 늘리고 자애로운 아버지와 같은 정부 역할을 하고 싶은 건 대중 정치지도자들의 로망일지 모른다. 그러나 땀과 노력 없이 젖과 꿀이 흐르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 노동자들의 지지로 총리에 올랐지만 지난 2003년 강도 높은 ‘하르츠 개혁’으로 노동시장을 대수술해 독일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최근 방한했던 그는 “진정한 리더는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일이라면 비록 선거에서 패배할 리스크가 있어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듯이, 좋은 정책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국가 미래에 도움이 된다면 지지층에 미움받을 용기와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향해 진격하고 있던 1940년 5월 의회 연설에서 “나는 피, 수고, 눈물, 땀밖에 드릴 게 없다”는 말을 남겼다. 지지층에 미움받을 용기를 현 정부에 기대하는 건 언감생심이겠지만, 국민의 피와 땀이 밴 세금을 곶감 빼먹듯 하며 생색내는 정책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세금에 의존해 먹고사는 사람을 늘리면서 경제부흥에 성공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없었다.

책임은 회피하면서 나랏돈으로 정치적 생색만 내려는 체리피커 정부가 득세했을 때 어김없이 재정 파탄과 국가위기가 닥쳤다. 그리스와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이 그 역사적 실례다. 당장 눈앞의 달콤함에 취해 체리피커 정부에 보내는 국민의 박수 소리가 크면 클수록 이들 국민이 감당해야 하는 경제적 고통은 깊고도 길었다.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인생론’에서 “최악의 지도자는 인기 있는 정책만 내놓고, 인기는 없지만 정작 필요한 정책은 주저한다”고 설파한 바 있다.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한다. 다음 선거를 넘어 다음 세대까지 생각하는 진정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선거에 유용한 ‘단물’보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리더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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