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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멸해도 외면해선 안 된다

기사입력 | 2019-06-11 12:07

송병록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 정치학

제로섬도 아닌 마이너스 게임
모두를 敗者 만드는 한국정치
유명人보다 성취人 존중 필요

정치인 말은 사상과 인격 반영
‘생계 수단형 정치’ 경계하고
균형 잡힌 가치관부터 세워야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지적처럼 정치가 비열한 인간의 영역이라 해도 한국의 정치 현실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치가 권력·부·명예 등 한정된 가치의 획득과 배분을 위해 중상·모략·음모·배신 심지어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역사는 이런 결과가 모두 패자(敗者)로 귀결됐음을 일러준다. 즉, 정치가 제로섬 게임(zero-sum game)도 못 되고 마이너스 게임(minus game)이 돼 모두 패자가 된 셈이다.

그동안 한국의 정치는 국가주의란 미명 아래 인간의 존재 가치를 규정하는 개인의 자유와 향유를 제한했다. 개인은 개인의 절대적 권리인 ‘옳음(righteousness)’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정치는 일반적 가치인 ‘좋음(goodness)’을 추구하고 실현하려 한다. 그러므로 개인은 결국 전체를 위해 개인의 권리와 존엄성보다는 공동선과 공공의 이익을 본질적 가치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민주국가에서는 다양한 이익집단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으므로 공동선과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지 않으면 사회는 분열되고 해체된다.

21세기에는 정치의 영역이 고차원의 정치(high politics), 거대정치(macro politics)에서 저차원의 정치(low politics), 미시정치(micro politics)로 옮아가면서 관료화하고 집중화한 중앙정부에 대해 저항이 일상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환경, 안전, 식품, 교육, 여성, 인권, 평화, 실업, 빈곤, 소비자 보호, 납세 정의 등 미시정치의 쟁점들은 즉각적인 해결책을 요구한다. 정치권이 이들 문제 해결에 주저하거나 무능하면 광범위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치인은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水則載舟 水則覆舟·수즉재주 수즉복주)’는, 2300여 년 전 순자(荀子)의 경고를 항상 명심해야 한다.

막스 베버는 그의 저서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두 가지 방식을 설명했다. 하나는 정치를 ‘위해서’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에 ‘의존해서’ 사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치를 생계 수단, 치부 수단으로 여기는 정치인이 너무 많다. 또한, 정치인을 달리 두 부류로 나눌 수도 있다. 유명해지려고 애쓰는 사람과 업적을 남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그것이다. 그러나 유명인보다는 성취인에 의해서 역사는 발전한다. 그러므로 민주국가에서는 ‘누구나’ 정치를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영역은 분명 아니다. 최소한 소명의식과 아울러 균형 잡힌 세계관·역사관·인생관·가치관·종교관의 정립이 선행돼야 한다. 이런 준비가 없으면 정치하는 개인도 불행하지만, 국가와 국민도 불행하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명언처럼, 전쟁이 피를 흘리는 정치라면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다. 즉, 정치란 말로 하는 전쟁이다. 따라서 정치인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말의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말의 힘이란 바로 미래를 명쾌하게 제시해 주는 비전과 사상의 깊이에서 나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정치인의 인격 그 자체에서 나오는 말의 힘이야말로 국민을 설득하고 감동시킬 수 있다. 아울러 많은 사람이 정치인의 자질에 대해 언급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한 서생(書生)의 문제의식과 상인(商人)의 현실감각은 여전히 매력적이며, 정치에서 원칙 중시와 선악(善惡)과 정사(正邪)의 구별은 포기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지난해에 작고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생전 언급처럼, 정치란 결국 허업(虛業)에 불과하다. 그 허업 때문에 악다구니를 치거나 죽기 살기로 싸울 필요는 없다. 정치의 가치와 매력이 인간에 대한 연민,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 정의 실현에 있음을 안다면 더욱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필자는 역사의 진보를 믿으며, 때로는 기적처럼 정치가 위대한 일도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정치를 경멸하면서도 정치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은 정치의 실패가 모든 것의 실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정치에 무관심할 수 없고, 무관심해서도 안 된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플라톤이 말한 철인(哲人)정치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전성기로 이끈 벤저민 디즈레일리 전 영국 총리의 다음과 같은 명언을 한 번쯤 음미해 보기를 바란다.

‘비천하게 살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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