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정충신 정치부 부장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노무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우리는 다시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비극적 죽음으로 끝난 노 대통령의 꿈을 반드시 이뤄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은 컸다. 하지만 실패를 절대 인정하지 않고, 성공에 대한 지나친 강박관념이 현실을 왜곡하거나 무시하는 수준이 되면, ‘성공한 대통령’은 기대 난망이다.

문 대통령의 경제 낙관론과 성공에 대한 집착은 거의 종교에 가까운 수준이다. “총체적으로 본다면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고, 우리 중소기업도 매일매일 기적을 써 내려 가고 있다”(5월 14일). “우리 경제는 거시적으로 볼 때 크게 성공을 거뒀다. 이런 성공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5월 9일). “소비지표는 좋은데, 우리 사회에 ‘경제 실패’ 프레임이 워낙 강력하고, 취사선택해서 보도하고 싶은 것만 부정적으로 보도되는 상황이 너무도 안타깝다”(지난해 송년간담회). 서민경제 파탄, 일자리 참사 등 경제에 비상벨이 연신 울리는 것이 대통령 눈에 안 보인다면, 참모들의 보고 시스템이 오작동한 것일 수 있다. ‘달나라 사람 같다’ ‘성공에 대한 개념이 다르다’ ‘그들만의 성공신화를 쓰겠다는 것인가’ 등 곳곳에서 의구심이 제기된다. 경제만 그런가. 역대 최악의 한·일 관계, 삐걱대는 한·미 동맹 등 외교와 안보 성적표 역시 참담한 수준이다. 외교와 안보를 남북관계의 종속변수로 취급한 자업자득이란 분석이 나오지만, 외교·안보라인에 대한 문책은 없다. 실패에 대한 비판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의 낙관론을 두고 다른 해석도 나온다. 청와대가 틀린 줄 알면서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위해 ‘성공론’을 확대 재생, 오로지 골수 지지층만 바라보고 직진하며 마이웨이를 고수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이던 2015년 3월 17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당시 경제를 혹독하게 비판하며 경제라인 전체 교체를 요구했다. “우리 경제가 너무 어렵다. 국민들 먹고 살기가 정말 힘들다. 정부의 경제 정책은 국민의 삶을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 총체적 위기다. 이런 식으론 경제를 살릴 수 없다.”

그런데 박근혜 집권 후 경제성장률은 2.3% → 2.9%(2013년) → 3.3%(2014년)였고, 문 대통령 집권 후 경제성장률은 3.1%(2017년) → 2.7%(2018년) → 2.4%(올해 성장률 전망치)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앞으로 영수회담이 열리면 문 대통령은 4년여 전 자신이 했던 발언을 ‘되로 주고 말로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전 대표는 최근 “잘못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도 지도자에게는 필요한 덕목”이라며 “더 이상 잘못된 길을 옳은 길이라고 우기지 말고, 지난 2년의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진정한 용기를 보여 달라”고 했다. 국가 정책 추진 과정에서 실패는 병가지상사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근본 해결 없이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야속한 언론 탓, 남 탓 그만하고, 실패를 인정하고, 오류를 수정해나가는 것이야말로 ‘성공한 대통령’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cs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