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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핵협상 실패’ 플랜B 있나

기사입력 | 2019-06-05 14:10

신기욱 스탠퍼드大 교수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미국내 대북 협상 회의론 커져
文정부, 北의 對美오판 막아야
核 폐기 실패 시 플랜B 대비도


미국 행정부의 대북 정책 엇박자가 계속되고 있다.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실험에 대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이어 패트릭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 위반”이라고 밝혔다. “나의 사람들은 위반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배치된다. 이런 상반된 견해는 북한을 핵 폐기 협상의 테이블로 다시 끌어들이려는 노력 못지않게, 결국 시간과 노력만 허비하고 말 것이라는 회의론이 공존하는 미 정부 기류를 반영한다.

미국으로선 대북 협상의 답답한 교착, 하노이 회담 결과에 대한 아쉬움, 비핵화 가능성 자체에 대한 회의론 등 심경이 복잡하다. 돌아보면 미국이 처음부터 하노이에서 노딜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스티븐 비건-김혁철 실무협상에서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설치, 인도적 지원, 인적 문화적 교류 등에 대해 합의했다. 그러나 비핵화에 관해선 북한이 논의 자체를 거부해 정상 담판으로 넘겨졌다. 하지만 북한이 영변 핵 폐기에 대한 대가로 실질적 제재 해제를 요구하며 유연성을 보이지 않자 노딜을 선택했던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딜을 할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왔든지, 아니면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몰리는 상황이라 대폭 양보할 것으로 오판하고 영변의 값을 높게 불렀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 경직된 북한 체제상 실무자들이 김 위원장에게 정확한 보고를 하지 않음으로써 실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품고 있다.

김 위원장 역시 실망과 아쉬움이 컸고, ‘최고 존엄’의 체면도 구겼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하노이 이후 북한은 미국은 물론 한국의 대화 제의에도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아마 내부적으로 전략을 재검토하고 협상팀을 재정비한 후에야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이다. 9월경 실무협상을 재개한 후 올해 안으로 3차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 양국 모두 여기에서 멈추기에는 그동안의 노력과 비용이 너무 많고, 상대 정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자제하고 있는 것도 이런 예상을 가능케 한다. 특히 하노이를 통해 서로의 패를 좀 더 분명히 알게 된 만큼 향후 협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상회담이 무산될 가능성, 또 열린다 해도 양국의 입장을 절충한 딜을 할 가능성과 이번이 마지막 미·북 정상회담이 될 가능성 모두 상존한다.

정체된 현 국면은 역설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역할을 할 기회를 준다. 우선,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설득해야 한다. 북한이 당장은 한국에 대해서도 문을 잠그고 있지만, 한국이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되면 언제든 손을 내밀 것이다. 한국으로부터 직접 식량 지원을 받는 것은 거부하면서도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해서는 지원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북한이다. 김 위원장은 큰 고민에 빠져 있을 것이다. 핵을 내주고 경제발전을 할 것인지, 핵을 쥐고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인지. 문 대통령은 1999년 페리 프로세스를 통해 어렵게 얻은 기회를 놓쳤던 역사적 경험을 상기시키며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뿌리치지 말라고 강권해야 한다.

또한, 북한이 하노이에서의 오판을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미국의 정치 상황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고 있는 북한은 자신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나 필요를 잘 알고 있다고 믿는 듯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하노이에서 실기(失機)한 것도 미국의 정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 기인한 점이 크다. 특히 북한이 과거 한국의 선거에 북풍을 일으켰듯이, 미국의 선거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북한과의 딜을 성사시킴으로써 선거에 유리하게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크겠지만, 북핵 문제가 대선을 좌우할 변수가 되긴 어렵다. 경제나 이민 문제 등 산적한 국내 이슈들을 뛰어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을 설득함과 동시에 플랜 B도 생각할 때이다. 최선을 다해 대화와 협상의 틀을 이어가야 하지만, 지금처럼 출구가 없는 일방통행식 대북 정책은 재고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가 물 건너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얼마 전 만났던 미국 현역 장성은 한·미 연합훈련의 중지가 전력의 약화를 가져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시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주한미군의 위치에 중요한 변동이 생길지도 모른다. 한국 홀로 핵무장을 한 북한에 마주 서야 할 날이 올 수도 있다. 북한의 비핵화 여부는 기로에 서 있다. 올 하반기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으면 미국 내 회의론은 더욱 커질 것이다. 북한은 핵이나 미사일 도발을 강행하려 할 것이고, 문 정부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된다. 문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비교적 자명하다. 북한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설득함과 동시에 비핵화에 실패할 때를 대비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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