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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아버지

기사입력 | 2019-05-31 14:25

백형찬 서울예술대 교수·교육학

몸과 마음 힘들면 찾는 인천
아버지와 물고기 잡던 곳…

엄마 몰래 용돈 쥐여주던 손
마음 따뜻하고 자상했던 당신

화장장에서 엉엉 울고 울었다
가족사진 속 아버지가 보고 싶다


몸과 마음이 힘들면 인천을 찾는다. 인천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이다. 살던 집과 정든 동네, 그리고 공부하던 학교를 한 바퀴 둘러보면 어느새 복잡한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는다. ‘케렌시아’(안식처)라는 말이 있다. 투우장에서 소가 투우사와 사투를 벌인다. 투우사는 소를 쓰러뜨려야 하고, 소는 투우사를 이겨야 산다. 서로의 목숨을 건 싸움이다. 투우사의 칼 여러 개가 소의 등에 박히고 소는 헐떡인다. 소는 잠시 숨을 고를 곳을 찾는다. 소가 숨을 고르며 마지막 기운을 모으는 곳이 바로 케렌시아다. 그곳은 소에게 마지막 안식처이기에 투우사는 공격하지 않는다. 내게도 케렌시아가 있다. 인천이다. 해안동 집과 골목길, 웃터골 학교 교정, 자유공원 기슭과 홍예문, 신포시장과 답동성당, 북항과 월미도, 차이나타운과 인천역.

인천에 들어서니 원목 통나무 냄새가 가득하다. 북항에는 오래전부터 목재 가공 공장이 있었다. 커다란 배들이 외국에서 원목을 싣고 들어와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 그 원목 위로 바람이 불면 인천 시내는 온통 원목 냄새로 가득 찼다. 지금도 북항에 가면 원목이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원목 냄새를 깊이 들이마시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 집은 북항과 가까워 친구들과 낚시를 많이 다녔다. 밀물 때가 되면 바다에 원목들이 둥둥 떴다. 그 원목 위에서 낚시를 했다. 갯지렁이를 끼운 낚싯대를 물속에 던지면 곧바로 망둥이가 올라왔다. 배가 볼록한 복어도 물었고, 사나운 물고기 양태(장대)도 올라왔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원목 위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물고기가 잘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원목으로 옮겨 갔다. 그랬더니 원목 사이에 어른 팔뚝보다 더 굵은 숭어가 끼여 펄떡이고 있었다. 숭어 철이 되면 인천 앞바다에 숭어가 떼로 몰려온다. 숭어는 힘이 좋아 물 밖으로 치올라온다. 잘못 올라온 숭어가 원목 사이에 걸렸던 것이다. 꼬마는 펄떡이는 숭어를 가슴에 안고 집으로 달렸다. 아버지가 놀라며 기뻐하셨다. 그때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늘 원목 냄새를 맡으니 아버지가 무척이나 그립다.

아버지는 6·25전쟁 때 황해도에서 피란 나왔다. 아버지는 배를 타고 나오다가 몸을 크게 다쳤다. 그것이 지병이 돼 평생 숨이 찼다. 이북에는 두고 온 자식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 자식을 늘 그리워했다. 연필로 자식의 이름을 또박또박 쓰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얼마나 보고 싶으면 그랬을까? 아버지는 말씀이 별로 없었다. 동네에선 아버지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 아버지 이마 한가운데에는 부처님처럼 작은 돌기가 나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의 아버지를 좋아했다. 아버지는 마음이 따뜻하고 자상했으며 동네 일을 앞장서서 했다.

아버지에 대한 여러 가지 추억이 떠오른다. 우리 집은 길가에서 작은 음식점을 했다. 그러다가 돈을 벌어 넓은 집으로 이사 왔다. 그 집은 일본인이 살았던 이층집 적산가옥이었다. 남향이었는데, 마당도 넓고 정원과 연못도 있었다. 정원에는 사철나무가 자라고, 마당에는 감나무가 있었다. 집 뒤 담장에는 담쟁이 넝쿨이 가득했다. 오래된 우물과 광도 있었다. 이층 방은 다다미방이었다. 가족 모두가 신났다. 아버지는 ‘황해식당’이란 간판을 크게 달았다.

이런 일도 기억난다. 아버지는 우리 삼 형제에게 물고기를 잡으러 가자고 했다. 바가지 몇 개만 들었다. 수인선을 타고 어느 시골 역에 내렸다. 무척 많이 걸었다. 냇가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다른 곳으로 물길을 내 물줄기를 돌렸고, 우리는 냇물이 흘러내리던 위·아래쪽을 흙으로 쌓아 막았다. 그러곤 바가지를 들고 연신 물을 퍼냈다. 얼마나 물을 퍼냈는지 모른다. 물이 점점 줄어들더니 바닥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물까지 퍼내자 붕어, 미꾸라지, 가물치, 참게 등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놀랍고 신기했는지 모른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대학생 때 돈이 필요했다. 책도 사야 했고, 용돈도 필요했다. 돈은 장사하던 어머니에게 늘 타서 썼다. 어려운 집안 형편을 알기에 더는 어머니에게 손을 내밀 수가 없었다. 이를 눈치챈 아버지가 가만히 나를 안방으로 불렀다. 베개 속에서 고무줄로 묶은 돈뭉치를 꺼냈다. 그러곤 내 손에 쥐여주었다. 그 돈은 아버지가 바깥일을 간간이 하면서 어머니 몰래 모은 것이었다. 얼마나 죄송하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돈을 받으면서 단단히 각오했다. 내가 돈을 많이 벌어 꼭 아버지를 호강시켜 드리겠다고. 하지만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청주에서 들었다. 허겁지겁 인천 집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병석에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 막내딸이 정성을 다해 간호했으나 끝내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화장장 불 속으로 밀어 넣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정말 엉엉 소리 내 울고 또 울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많이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다. 내 책상에는 오래된 가족사진 한 장이 있다. 사진 속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지 서른 해가 훨씬 지났고, 어머니와 형님도 몇 해 전에 돌아가셨다. 이제 사진 속에 남은 사람은 나와 남동생 그리고 여동생뿐이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는 할아버지가 됐다. 명절을 맞아 덕수의 자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가족들은 거실에서 떠들썩하게 웃고 노래한다. 덕수는 안방으로 들어가 흑백사진 속의 아버지를 보고 울며 말한다.

“아부지예,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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