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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책 통문 열고 화살머리 고지로… ‘진짜 DMZ’를 밟다

박경일 기자 | 2019-05-29 14:40

‘DMZ 평화의 길’ 철원 구간의 도보 코스가 끝나는 공작새 능선 조망대 쪽에서 본 모습. 탐방객들이 DMZ를 굽이치는 역곡천의 물길을 끼고 이어진 시멘트 포장도로를 걷고 있다. 인간의 간섭이 사라진 원시림이나 일촉즉발의 긴장으로 가득한 비장미를 기대했는데, 걷는 길에서 만난 DMZ의 풍경은 그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DMZ 평화의 길’ 철원 구간의 도보 코스가 끝나는 공작새 능선 조망대 쪽에서 본 모습. 탐방객들이 DMZ를 굽이치는 역곡천의 물길을 끼고 이어진 시멘트 포장도로를 걷고 있다. 인간의 간섭이 사라진 원시림이나 일촉즉발의 긴장으로 가득한 비장미를 기대했는데, 걷는 길에서 만난 DMZ의 풍경은 그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내달 1일 민간인 첫 개방
‘평화의 길’ 철원 구간


비무장지대(DMZ)를 내세운 관광지나 여행상품은 여럿 있지만 ‘진짜 DMZ’ 안으로 들어가는 여행은 그동안 없었습니다. 접적지역의 안보 관광이나 평화 관광 코스에서 자주 DMZ가 들먹거려집니다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금껏 DMZ 구역은 민간인들이 절대 출입할 수 없었으니까요. DMZ를 앞세운 관광지나 여행상품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모두 ‘허풍’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오로지 딱 한 코스. 일반 공개를 앞두고 있는 ‘DMZ 평화의 길 철원구간’을 빼고는 말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 길에 대한 것입니다.

한 달 전쯤 DMZ 평화의 길 고성 구간이 처음 열린 데 이어 오는 6월 1일부터 철원 구간의 길이 열립니다. 고성 구간은 DMZ로 들어가는 추진철책선 통문 앞까지만 갔지만, 철원 구간은 철책선 통문을 열고 DMZ 깊숙한 곳까지 들어갑니다. 민간인에게 처음 DMZ 출입을 허락한 길입니다.

철원 구간의 출발 지점은 6·25 전쟁의 격전지였던 백마고지 승전탑. 목적지는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섬처럼 떠 있는 ‘화살머리 고지’의 감시초소(GP)입니다. 개방을 앞둔 그 길을 먼저 가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닫힌 철문을 열고 들어가 마주한 DMZ의 자연은, 두근거리는 기대나 의미의 무게만큼의 감동은 아니었습니다. 전인미답의 숭고한 풍경은 거기 없었습니다. 차가운 분단과 뜨거운 증오로 담금질된 땅에서는 매캐한 화약 냄새와 비릿한 쇳내가 풍기는 듯했습니다. 그곳은 거기 새겨진 의미를, 아직도 선명한 전쟁의 상흔을 보아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화천에서 DMZ 평화의 길 말고 다른 곳들을 덧붙인 건 전쟁의 상흔과 갈등과 대립, 그리고 평화에 대한 기대를 더 감격적으로 보여주는 곳들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철원에는 수만 발의 폭격이 쏟아졌던 격전지도, 끝내 손에 넣지 못한 고지도, 금강산 전기 철도의 흔적도, 철원평야의 너른 들을 굽어볼 수 있는 자리도, 전란 후 들어온 이주민들의 뜨거운 삶의 자취도 있습니다.

이런 자취를 찾아가는 길에서 새삼스러웠던 건 접적지역 주민들의 일상과 분단이 놀라울 만큼 가깝다는 것이었습니다. 삼엄한 철조망과 지뢰지대 표지판 건너편에 막 모내기를 마친 논이 있었습니다. 민통선을 넘나들며 농사를 짓는 주민들은 뜻밖에도 화해와 평화에 무관심했는데, 그 이유를 민통선의 논에서 삽을 씻던 한 늙은 농부에게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농부는 긴 한숨처럼 말했습니다. “저러다가 또 말겠지….” 증오와 화해 사이를, 기대와 실망 사이를 오가는 과정에서 오랜 체념이 굳은살처럼 박인 모양이었습니다. 이번만큼은 다를 수 있을까요. 과연 길이 평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 격전지에서 시작하는 평화의 길

적의와 긴장으로 가득했던 비무장지대(DMZ)에 ‘평화’의 이름을 매단 길이 차례로 놓이고 있다. ‘DMZ 평화의 길’. 평화의 길은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DMZ 내 긴장 완화를 목표로 놓고 있는 ‘걷기 길’이다. 한 달 전쯤 첫 번째 ‘평화의 길’이 강원 고성에 놓였고, 두 번째 평화의 길 철원 구간이 새로 놓여 오는 6월 1일 개방을 앞두고 있다.

‘DMZ’의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평화의 길 다른 구간은 추진철책선 바깥의 전방관측소(GOP)까지만 간다. 하지만 철원 구간은 무장한 병력의 경호를 받으며 팽팽한 긴장 속에서 ‘진짜 DMZ’ 안의 감시초소(GP)까지 들어간다. 북한 초소가 코앞인 GP를 민간인에게 상시 공개하는 것은 ‘분단 이후 최초’다.

최전방의 긴장과 DMZ의 비장함, 그리고 ‘최초’가 주는 기대까지…. 개방을 앞둔 평화의 길 철원 구간에 발을 딛는 감상은 복잡했다. 먼저 평화의 길 철원 구간의 개요부터 보자. 평화의 길 출발지는 강원 철원의 백마고지 전적지. 반환점은 DMZ 안쪽의 화살머리 고지 GP다. 총 이동 거리는 15㎞ 남짓인데 이 중 3.5㎞ 구간만 걷고, 나머지는 차로 이동한다. 이렇게 움직이면 3시간쯤 걸린다.

평화의 길 시작점인 백마고지 전적지는 한국전쟁을 통틀어 가장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곳이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 동안 벌어진 백마고지 전투에서는 세계 전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처절한 포격전과 수류탄전, 백병전이 벌어졌다. 그걸 다 누가 헤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록에 따르면 전투 중 백마고지에 쏟아진 포탄만 27만4954발에 이른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친 국군이 3500명, 중국 인민군은 1만여 명에 달했다. 하필 이 자리를 평화의 길의 출발점으로 삼은 건 ‘전쟁의 자리에서, 평화가 시작된다’는 뜻일까.


# 일상과 분단 사이의 거리

백마고지 전적지가 ‘백마고지에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전적지에서 백마고지는 멀다. 백마고지는 지금도 접근 불가 군사시설로 활용되고 있어, 대신 백마고지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찾아 전적지를 만든 것이다. 전적지는 승전을 기념해 만든 것이지만 관광객들이 숙연하게 서는 곳은 전승비가 아니라 전사자의 명단이 빽빽하게 적힌 위령비 앞이다.

마침 이날 제주 노인대학의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단체관광으로 전적지를 찾았다. 전사자 명단이 빽빽하게 새겨진 위령비 앞에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제주의 할머니들은 마치 곡(哭)처럼 신음을 쏟아냈다. “아이고….” 승전의 영웅담보다, 병사들의 측은한 죽음이 마음을 붙잡았다.

백마고지 전적지 언덕 뒤쪽에 자물쇠로 잠긴 철문이 있다. DMZ 평화의 길 철원 구간은 전적지를 관통해 그 철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탐방객들은 철문으로 나가서 승합차를 타고 1.5㎞를 이동한다. 이 구간을 차로 이동하는 건 순전히 시간과 거리 단축을 위해서다.

철조망 너머로 북에서 발원한 역곡천 물길이 남쪽을 향하다 물굽이를 다시 북쪽으로 돌리는 지점쯤에서 탐방객들은 차에서 내린다. 역곡천은 물길이 북쪽으로 거꾸로 흐른다 해서 붙여진 이름. ‘거스를 역(逆)’에 ‘골 곡(谷)’ 자를 쓴다. 여기서부터 탐방객들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공작새 능선까지 3.5㎞를 걷는다.

평화의 길이 추진 철책선에 바짝 붙어 갈 것으로 기대했는데, 추진철책선에서 20∼30m쯤 뒤로 물러난 자리에 쳐놓은 철조망을 끼고 길이 이어졌다. 그것도 오솔길이 아니라 시멘트 포장도로다. 전인미답의 산중이나 적막한 숲을 생각했는데, 길은 여느 평범한 시골길과 별다를 게 없다. 철조망 근처에는 민통선 출입허가를 받은 주민들이 드나들며 농사를 짓는 논도 있었다.

도보 코스가 끝나는 공작새 능선 조망대에서 바라보는 역곡천 풍경은 훌륭했지만, 거기를 빼고 나면 인상 깊었던 풍경은 없었다. 다만 새삼스러웠던 건 주민들의 일상과 분단 사이의 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깝다는 것이었다.


# ‘진짜 DMZ’에 들어서다

도보 코스가 끝나는 공작새 능선 조망대부터는 안전을 위해 줄곧 차량으로 이동하게 된다. 차가 DMZ로 들어가는 추진철책 통문 앞에 섰다. 삼엄한 경계의 통문에 ‘체포 및 사살’을 경고하는 문구가 섬뜩하다. DMZ는 ‘비무장지대’란 이름이 무색하게, 무장한 경호 병력의 동행 없이는 출입할 수 없다. 민간인이든 군인이든, 1명이 들어가든 10명이 들어가든 마찬가지다. 탐방객들의 전후좌우로 무장한 병사들이 따라붙었다.

이쯤에서 DMZ에 대해 알아보자. 남북한의 경계인 군사분계선(MDL)을 중심으로 남쪽 2㎞ 지점에 남방한계선이, 북쪽 2㎞ 지점에 북방한계선이 있다. 군사 충돌을 막기 위해 그어놓은 선이다. DMZ는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의 폭 4㎞의 지역을 말한다. 이게 공식적인 DMZ다.

그런데 남북 대립의 시기에 남과 북 모두 한계선 철책을 군사분계선 가까이로 옮겼다. 우리는 남방한계선 철책을 끌고 올라갔고, 북한은 북방한계선 철책을 밀고 내려왔다. 이 과정에서 남쪽 철책과 북쪽 철책 사이의 폭은 2㎞ 정도로 줄어들었다. DMZ 평화의 길 철원 구간이 ‘진짜 DMZ’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말하는 건, 철원구간의 길이 2㎞ 폭의 추진철책선 안쪽의 DMZ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굳게 잠긴 통문이 열리자, 차량이 DMZ 안으로 들어섰다. 탐방객들은 물론이고 경호를 위해 동행한 무장한 군인들의 표정에서도 긴장이 묻어났다. 목적지는 화살머리 고지의 GP. 화살머리 고지는 6·25 전쟁의 막바지 격전지다. 정전협정과 군사분계선 확정을 앞두고 이 고지에서는 한 뼘이라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고지전이 펼쳐졌다.

고지 전투 중 전사한 유해는 수습되지 못했다. 정전 후에 출입마저 자유롭지 않은 삼엄한 경계의 땅이 되면서 고지 전투 중 전사한 200여 구의 국군 유해도, 300구 남짓으로 추정되는 미군과 프랑스군의 유해도 잊혔다. 그리고 65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남북군사합의로 화살머리 고지 일대가 시범적 유해 발굴 지역으로 결정됐다. 묻혀 있던 죽음들이 반세기를 훨씬 넘어 이제야 꺼내지게 된 것이었다.

GP에서 내려다보이는 화살머리 고지 유해 발굴 현장에서 지금까지 발견한 유해는 300여 점. 계급장과 철모, 수통, 숟가락, 총 등의 유품도 함께 발견됐다. GP 안에는 발굴된 유품 일부가 전시돼 있었다. 26발의 총탄 자국으로 벌집이 된 수통, 5∼6발의 총알이 관통한 철모, 그리고 장전돼 발사되지 않은 녹슨 소총…. 누구의 것이었을까. 한때 죽은 병사들의 온기가 담겼을 유품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 생태와 자연의 눈으로 DMZ를 보다.

사실 평화의 길 철원 구간은 접적지역의 긴장과 역사적 의미의 무게 등을 빼고 나면 감흥의 밀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철원의 다른 곳들을 코스로 엮어서 함께 가보길 권하는 것은 그래서다.

철원에는 DMZ 평화의 길 말고도 전쟁과 분단의 흔적이나 평화의 염원이 깃든 곳이 곳곳에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철원의 최북단 마을 생창리에 들어선 ‘DMZ 생태평화공원’이다.

DMZ 생태평화공원은 ‘공원’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남방한계선 철책까지 이어지는 두 곳의 탐방로를 묶어 부르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DMZ 평화의 길이 전쟁의 역사와 평화의 가치에 집중하고 있다면, 이곳 DMZ 생태평화공원은 자연과 생태에 주목하고 있는 곳이다. 잘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자연 경관이나 고즈넉한 분위기만 보자면, 새로 개방하는 평화의 길보다 오히려 여기가 더 낫다.

생태평화공원에는 두 개의 탐방로가 있는데, 하나는 북녘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흐르는 화강(花江)의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 남방한계선 철책 바로 앞까지 이어지는 ‘용양보 탐방로’이고, 또 하나는 한 교회가 군부대와 협조해 민통선 내 성재산에 세운 ‘십자가 탑’까지 다녀오는 ‘십자탑 탐방로’다.

탐방로가 지나는 용양보는 일제강점기에 금강산 전철 교각을 둑으로 활용해 지은 농업용 저수지. 물을 막는 보의 둑이 된 교각에는 금강산을 오가던 철교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탐방로는 용양보를 지나 화강 상류인 남방한계선 통문으로 이어진다. 보로 막은 저수지에는 DMZ 경계근무 병사들이 이용했던 출렁다리가 있다. 발판이 떨어져 나가고 철탑 지지대와 철선만 앙상하게 남은 출렁다리에는 젖은 깃털을 말리는 민물가마우지가 까맣게 줄지어 앉아 있다.

십자탑 탐방로는 군 작전도로를 다듬어 만든 코스라 등산에 가까워 찾는 이들이 적은 편이다. 탐방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성재산의 십자탑이다. 십자탑 앞에 서면 맞은편 북한 땅에 6만 명의 병력이 숨을 수 있는 지하요새가 있다는 오성산이 우뚝하게 보인다. 오성산의 발치로 DMZ를 굽이치는 화강의 유연한 물길과 옛 금강산 철로의 흔적이 펼쳐진다.


# 1000년 전 평화의 기원을 만나다

철원까지 간 길이라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 두 곳 있다. 한 곳은 철원 평야가 한눈에 다 들어오는 철원읍의 소이산. 해발 362m에 불과한 소이산 정상이 보여주는 장쾌한 전망은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 어려울 정도다. 모내기를 마치고 물을 담아놓은 논들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펼쳐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소이산이 최고의 경관을 펼쳐 보여주는 때다. 한밤중에 소이산 정상의 덱에 오르면 스크린 속 영화 장면처럼 정면으로 뜨는 수많은 별을 만날 수도 있다.

철원 여행의 마무리는 절집 도피안사(到彼岸寺)에서 하는 게 좋겠다. 도피안사의 이름에는 ‘해탈의 피안(彼岸)에 도달한다’는 뜻이 새겨져 있다. 도피안사에서 봐야 할 것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철로 만든 비로자나불. 철원이 가진 유일한 국보다. 6·25 전쟁 중에 법당이 모두 불타는 참화 속에서도 비로자나불이 무사했던 건 누군가 비로자나불을 땅에 묻어뒀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한참이 지난 1959년에 불상은 꺼내졌다. 불상의 등에는 139자의 글씨가 돋을새김돼 있다. 1000년 전 새겨진 그 글에는 평화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 기원은 이제 이뤄질 수 있을까. 다시 묻는다, 길은 과연 평화를 만들 수 있을까.



여행정보

DMZ 평화의 길 철원 구간 탐방은 오는 6월 1일부터 시작된다. 탐방신청은 인터넷 두루누비 사이트(www.durunubi.kr)로 받고 있다.

개방 초기에는 신청자들이 몰려 추첨을 통해 참가자를 선정하게 된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국민에 한해 참가할 수 있으며 10세 미만 아동은 참가가 제한된다.

참가 신청은 4인 이하만 가능하며 4인을 초과하는 단체 신청은 허용되지 않는다. 탐방은 화요일과 목요일을 빼고 하루 두 번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진행된다. 회당 탐방 인원은 20명으로, 해설사 1명과 관리자 교육과 응급조치를 수료한 군청소속 셰르파 2명이 동행하게 된다. 차량 이동 코스에서는 16인승 차량과 12인승 차량 2대에 나눠탄다.

탐방 당일 참가자들은 신분증을 꼭 지참해야 한다. 날씨에 따른 비옷이나 우산, 생수 등은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DMZ 평화의 길은 접적지역이라 금지되는 사항이 많다. 생수 외에 음식물이나 주류, 담배 등은 휴대가 금지되고, 군사시설물이나 허가되지 않은 지역을 배경으로 한 사진 촬영도 엄격하게 금지된다.

DMZ 안에서는 카메라나 휴대전화를 지참할 수 없다. 통문 앞에서 카메라나 휴대전화를 맡기고 들어가야 한다. DMZ 평화의 길에는 포토존이 따로 마련돼 있는데, 철원 구간에는 도보 코스 시작과 끝 지점에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포토존이 두 곳 있다.

DMZ 평화의 길에 비해 김화읍 생창리의 DMZ 생태평화공원은 상대적으로 출입이 쉬운 편이다. 하루 전까지만 전화(033-458-3633)로 예약하면 탐방 코스를 돌아볼 수 있다. 화요일만 빼고 매일 탐방이 진행되는데, 탐방 정원이 따로 없어 제때 신청만 하면 쉽게 들어갈 수 있다. 단 예약할 때 탐방 코스 두 곳 중 어디로 갈 것인지를 정해서 알려줘야 한다. 공원에는 입장료가 있다. 개인은 3000원, 단체는 2000원을 받는다.

탐방 당일에는 생창리의 방문자센터에서 직원의 안내를 받으면 된다. 방문자센터는 가족실 3실과 단체실 2실 등 깔끔한 숙박시설도 갖추고 있다.

철원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강원 철원 DMZ 생태평화공원의 ‘용양보 탐방로’ 모습. DMZ를 순찰하던 군인이 건너다니던 출렁다리가 무너져 폐허가 된 자리에 민물가마우지떼가 날아들어 젖은 깃을 말리고 있다. 철원군의 유일한 국보인 도피안사의 철불. 사진 위부터 철원 평야가 한눈에 다 들어오는 철원읍의 소이산 정상. 분단 이후 최초로 민간인에게 상시 개방되는 DMZ 통문을 경계병이 열고 있는 모습. 화살머리 고지에서 수습된 전쟁 당시 유품인 수통. 26발의 총탄 자국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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