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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 ‘코드’가 먼저인가

기사입력 | 2019-05-17 12:10

유병권 정치부장

적폐청산은 주류 교체의 수단
정치철학 내세워 건의 뭉개기
北주민 인권 외면도 어불성설

현실과 괴리된 유체이탈 화법
文대통령 갈수록 완고한 행태
겸손하게 잘못 바꿀 용단 필요


문재인 대통령은 2년 전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해 ‘감사합니다’로 끝나는 3000여 자 분량의 취임사에서 여러 가지 약속을 했다. 그중 세 번이나 약속한 것은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였다. 그리고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며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2003년 2월 25일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를 끝내겠다’고 다짐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사와 많이 닮았다. 노 전 대통령과 운명처럼 얽힌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대한민국은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었다.

지난 2년의 국정 운영을 되돌아보면 이러한 초심이 지켜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문재인 정부가 포기하지 않는 적폐청산,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탈원전, 대북 정책 등에서 사람보다 이념과 진영 논리, 정치철학이 우선한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좋은 의도에서 시작했다고 해서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반대로 최악일 수도 있다. 지난 2년간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서 현직 검사와 변호사, 예비역 장성, 기업인 등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적폐청산 광풍이 경쟁적으로 몰아친 부처에서는 이전 정부에서 잘나갔다는 이유 하나로 모욕과 수모를 당하는 인격 살인이 자행됐다. 사람 목숨보다 더 좋은 미래가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사람을 우선시하지 않고 ‘코드’를 앞세우다 보니 ‘내 편’으로의 주류 교체를 위한 좌파 정책으로만 비친다.

미세 먼지 경감 대책을 담당하는 한 공무원 얘기다. 그는 청와대에 미세 먼지를 줄이려면 화력발전소 가동을 축소하고, 원자력발전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다가 “탈원전은 정부의 철학”이란 싸늘한 대답을 들었다. 청와대 관계자가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을 했다면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경제성장률까지 잠식하는 미세 먼지를 잡는 가장 효율적인 대책을 앞에 놓고 정치철학 운운하며 거부했을까. 일용직 노동자와 아르바이트생에게 일자리는 생존의 문제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라 멀쩡했던 일자리가 사라졌다면 그것은 무엇을 위한 정책인가. 부족하더라도 돈을 버는 일자리가 실업자보다 나은 것 아닌가.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약속한 정부가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기도 한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그러는 것이라면 우선순위가 잘못됐다.

정책은 세상을 바꾸는 수단이다. 철저히 준비해 좋은 정책을 수립하고, 현실과 끊임없이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집행할 때 제대로 구현된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최근 발언 몇 가지만 봐도 이런 과정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내세울 만한 국정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자랑하고 싶은 의욕이 앞섰을 수도 있지만, 현실 왜곡 지적을 받을 지경이어선 곤란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2주년 특집 대담에서 “청년 실업률이 아주 낮아졌다”고 했지만, 15일 발표된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11.5%로, 4월 기준 2000년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적폐 수사나 재판은 우리 정부가 시작한 게 아니라 앞 정부에서 이미 시작했던 일”이라고 했지만, 공감하지 않는 국민이 더 많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7일 문재인 정부 2주년 정책콘퍼런스를 열어 국정 농단 관련자 45명을 기소해 22명을 구속했다고 소개까지 했다. 적폐청산과 관련해 기소된 이전 정권 인사가 110여 명에 달하는데도 “우리가 안 했다”고 하니, 유체이탈 화법이 따로 없다.

현실과 괴리된 인식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겉으론 경청하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론 “고집이 세졌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완고해졌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소통 대통령’을 세 번이나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답도 취임사에 있다. 문 대통령은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겸손한 권력이 되겠습니다”라고 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점이 드러나면 “죄송합니다. 수정해서 더 잘하겠습니다”라고 하면 된다. 갖은 시행착오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아직 50% 가까운 국정 운영 지지율을 얻고 있다. 임기도 3년 남았다. 아직 희망은 있다. 겸손하고 정직하며 따뜻한 대통령이 되겠다던 초심으로 돌아가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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