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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상황 아동’ 정책 안 보인다

기사입력 | 2019-05-16 11:58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어린이날 직전의 충격적 사건
학대 아동 보호 급속하게 증가
가족해체 늘어 더 악화할 전망

선거권 없어 정치권도 소극적
정부의 정책 책임과 조율 난맥
보육정책과 보호정책 병행해야


어린이날을 한 주 앞둔 지난달 28일 광주에서 12세 여아가 살해·유기된 채로 발견됐다. 친모까지 유기에 가담해 충격을 더했던 이 사건은 한국 아동 인권과 안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친부에게도 가정폭력을 당했던 그 아이는 성범죄 신고에 앙심을 품은 의붓아버지에게 살해당했다. 아이를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진 부모가 아이를 학대하는 현실은 이제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전국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학대 피해 아동 보호 건수는 2014년 1만 건을 넘었고, 그 후로 계속 늘어 2018년에는 2만4064건에 이르렀다. 가정에서 아동 학대가 일어난 경우가 80%로 대다수를 차지하며, 피해 아동의 70% 이상이 최소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또는 그보다 자주 학대를 당했다.

공표된 아동 학대 보호 건수는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신고·접수된 사례만 집계한 결과로, 경찰서 등 다른 기관에 접수된 것들은 빠져 있다. 최근 들어 그 건수가 빠르게 늘어난 것은 2013년 울산 아동 학대 사망 사건 뒤 여론이 비등하자 2014년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정과 ‘아동복지법’ 아동 학대 관련 조항 개정 등 법제를 정비한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아동 보호 제도는 너무 취약하다. 대표적으로 아동을 학대하는 부모로부터 격리 보호하는 게 어렵다. 아동 학대로 확인된 경우에도 취해진 조치를 보면 80%가 넘는 아이가 가정으로 돌아갔다. 보호시설에 들어간 아이 중에도 일정 기간이 지나 다시 가정으로 돌아간 경우가 4명 중 1명이라고 한다. 이처럼 사후 보호 조치가 이뤄지지 못하는 것은,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받아들일 시설이 미비하기도 하고, 아이는 결국 부모에게 맡겨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봐야 할 책임이 있는 학교 역시 아이들을 학대로부터 보호하기에 부족한 건 마찬가지다. 외국에선 어린 학생들에게 상처나 멍이 자주 발견되는 경우 담임교사가 가정방문을 하기도 하고 상담을 통해 문제점을 찾으려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학교의 이러한 노력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울 뿐 아니라, 학생의 학대 사실이나 고충을 발견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조치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광주에서 살해·유기된 여아 역시 초등학교에서 가정환경 때문에 관리를 받았지만, 이후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런 사실들이 전달되지 않아 문제점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교내에서 따돌림이나 폭력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찾아내는 데도 소극적인 학교들이 가정에서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찾아내고 보호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아이들의 안전과 행복에 모두가 관심을 갖고 책임을 져야 할 때다. 아이의 안전 도모는 약자 보호뿐 아니라, 사회 지속 가능성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합계출산율이 1.3 이하인 초저출산에 접어든 지 20년에 가깝다. 출산을 늘리려는 힘겨운 노력 못지않게 이미 태어난 한 명 한 명의 아이를 소중히 잘 키우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그런데 아이들의 복지와 행복, 안전과 건강을 책임지려는 적극적인 태도는 정치권이나 정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권에서는 선거권을 갖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법·제도·정책에 소극적이다. 아이를 돌보는 부모의 관심이 쏠린 보육정책에 적극적인 것과 대조적이다. 정부에서도 아이를 돌보고 보호하는 정책적 책임이 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교육부 등으로 나뉘어 있어 정책 조율과 총괄이 어렵다고 한다. 이들은 아이의 삶을 가정과 학교 등으로 나누어 맡을 따름이지 아이들의 삶 전반에 관심을 갖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은 최근 들어 급격히 달라졌다. 이혼이 늘면서 가족 해체가 빈번해졌고, 사회·경제적 불안정이 심해지면서 가족이 함께 모여 살기 힘든 경우도 늘었다. 부모와의 갈등으로 가정을 뛰쳐나온 아이도 늘었다. 반면 아이를 적게 낳는 풍조가 일반화하면서 부유층 가정에서는 아이 양육과 조기교육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계속 늘고 있다. 서구에서 심각해진 불평등한 어린 시절 문제가 우리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취약한 환경의 아이들에 대한 보호와 지원은 사회통합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한계상황의 아이들을 불안정하고 위험한 가정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보호하고 도움을 주는 것은 정부에서 표방하는 포용국가가 해야 할 중요한 정책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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