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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햇빛·새소리에 안겨… 비었지만 충만한 삶을 만나다

박경일 기자 | 2019-05-15 14:16

한국의 삼보(三寶)사찰 중 하나인 승보(僧寶)사찰 송광사의 전경. 송광사 남쪽의 작은 언덕에 절집의 전경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 자리가 있다. 신록에서 녹음으로 건너가는 이즈음의 송광사는 온통 초록으로 포위된 형국이다. 한국의 삼보(三寶)사찰 중 하나인 승보(僧寶)사찰 송광사의 전경. 송광사 남쪽의 작은 언덕에 절집의 전경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 자리가 있다. 신록에서 녹음으로 건너가는 이즈음의 송광사는 온통 초록으로 포위된 형국이다.


순천 조계산 ‘암자 순례’

송광사로 가면…
법정스님 말년에 기거한 불일암
베스트셀러 ‘무소유’ 탄생한 곳
800살 곱향나무 버티는 천자암
고된 산행 보상받는 신묘한 멋

선암사로 가면…
대선루 누각 나무 의자 앉으면
창문밖으로 펼쳐지는 녹색지대
손 타지 않은 소박한 아름다움
봄 끝자락서 즐기는 ‘힐링타임’


신록과 녹음이 어우러진 산중 암자를 찾아갑니다. 지금 있는 여기는 서쪽 발치에는 송광사를, 동쪽 발치에는 선암사를 두고 있는 전남 순천의 조계산입니다. 송광사나 선암사야, 워낙 이름난 절집이어서 더 붙일 말이 없습니다만, 두 절집이 품고 있는 암자는 부러 숨겨둔 것처럼 아는 이가 적습니다. 저 아래 대찰들은 부처님오신날에 불자들과 몰려온 관광객들로 종일 북적거렸지만, 그날도 소박한 암자는 정물 같았습니다. 고요한 산중에 이따금 지나가는 바람만 처마의 풍경을 ‘뎅그렁’ 흔들고 지나갈 뿐이었으니까요.

조계산의 암자 중 압권은, 선암사의 대각암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암자가 누각으로 삼은 대선루(待仙樓)의 정취가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활짝 열어젖힌 이층누각의 나무 창문 안으로 초록의 경치가 밀려드는데, 그 광경을 내다볼 수 있는 마루에 긴 의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나무로 짠 그 의자에 앉아서 누각의 창밖으로 연못과 함께 신록 가득한 풍경을 보고 있자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더군요. 대각암의 누각 대선루는 ‘기다릴 대(待)’와 ‘신선 선(仙)’ 자를 쓰니, ‘신선을 기다린다’는 뜻을 걸고 있습니다. 신선의 이름은 선암사로 향하는 오솔길에서 만나는 아치형의 돌다리 ‘승선교(昇仙橋)’와 선암사의 문루 ‘강선루(降仙樓)’에서도 보입니다. 목욕한 선녀가 하늘로 오르는 다리와 신선이 내려온 누각. 부처의 세상인 절집으로 가는 길이, 어찌 된 게 도가(道家)의 세상입니다.

송광사의 암자라면 단연 법정 스님이 말년에 기거했던 불일암입니다. 절집에서 암자로 가는 순한 길에는 운치 있는 대숲을 지납니다. 대숲이 바람에 사각대는 소리가 청량하기 그지없습니다. 암자 툇마루 옆에는 법정 스님이 손수 만들었다는 소박한 의자가 있습니다. 그 의자의 모습 하나만으로도 단박에 스님의 청빈한 정신과 소박한 살림살이를 읽을 수 있습니다. 평생 ‘무소유’로 살아 가진 건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스님은 이곳에서 맑은 햇빛과 신록과 녹음, 그리고 새소리를 제 것 삼아서 사셨겠지요.

불일암 마당에는 베어낸 굵은 나무 둥치를 의자 삼아 두었더군요. 의자가 된 나무 둥치에 그려진 조밀한 나이테가 어찌나 우아하던지요. 나무의 몸에다 시간이 그려놓은 그림이, 마치 혼신의 예술작품과도 같았습니다. 이제는 스님이 떠나고 없는 불일암에서, 스님이 생전에 말하던 ‘무소유’의 소박한 삶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해마다 한 줄씩 그려지는 나이테를 생각하면서 자연처럼, 오래된 나무처럼 그렇게 나이 들어가는 것을 생각합니다.

아 참, 그리고 이맘때 순천에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있어 한 곳 더 보탭니다. 워낙 알려진 곳이어서 따로 말하는 게 새삼스럽지만 그래도 이때라면 낙안읍성 얘기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노거수와 초가집 마당 곳곳의 나무들이 초록에 흠뻑 물드는, ‘한 해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지금 낙안읍성을 지나가고 있는 중이니까요.


# ‘조계’의 이름으로 절집을 거느리다

전남지역에서는 물론이고, 전국에서도 내로라하는 절집으로 손꼽히는 대찰인 송광사와 선암사를 함께 품고 있는 산이 전남 순천의 조계산이다. 조계산은 그리 익숙하지 않다. 이름난 대찰 두 곳에 치어 산이 쪼그라든 형국이다. ‘조계(曺溪)’란 이름은 중국에서 왔다. 송광사의 내력을 적은 ‘송광사지’에 그 내용이 있다.

때는 신라 문무왕 원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인 661년에 당나라의 대감선사 혜능이 조씨 집성촌 마을의 계곡에 전란으로 불탄 옛 절터에다 새 절을 지었다. 절은 이내 많은 스님이 몰려 대찰이 됐다. 마을을 떠나게 된 혜능이 마을 유지였던 인물인 조서량의 성(性)인 ‘조(曺)’에다 계곡의 ‘계(溪)’ 자를 써서 산의 이름으로 삼았다는 게 중국 조계산의 지명 유래다.

그다지 별스러워 보이지 않는 내력을 가진 중국의 산 이름을 빌려다 쓸 만큼, 중국의 조계산이란 이름이 불가에서 신성시되는 건, 당대의 고려 승려들이 추앙해 마지않았던 불교의 절대 선각자인 혜능이 불법을 펼친 곳이기 때문이다.

조계산이란 이름을 갖기 전에 순천의 조계산은 본래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송광사 쪽에서는 조계산을 ‘송광산’이라 불렀다. 그때는 절의 이름도 송광사가 아닌 길상사였다. 송광산 길상사. 그러다 고려 때 지금처럼 조계산 송광사가 됐다. 반대편 산자락에 있는 선암사에서는 조계산을 청량산이라 부르다가 역시 고려 때 조계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건, 천태종 종파를 이끌며 선암사에 기거하던 대각국사 의천이, 신라의 구산선문을 통합한 종파인 조계종을 존중해 본래 청량산이란 이름을 조계산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종파를 가리지 않는 포용이다. 선암사 소유권을 놓고 수십 년이 넘도록 조계종과 태고종 사이에 다툼이 있어 왔고, 그 다툼이 여전히 이전투구로 진행 중인 상황에서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 작고 여린 것들 사이로 절집을 가다

조계산의 송광사와 선암사는 종교나 사찰의 의미를 넘어선다. 송광사나 선암사에 간다는 것이 꼭 ‘절에 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불교를 믿지 않는다 해도 이 두 곳의 절집에 깃들어 있는 고요하고 맑은 자연의 기운과 그윽한 정취만으로도 거기까지 가볼 충분한 이유가 된다. 법당에서의 삼배가 없어도, 두 손 모을 기도가 없어도 상관없다. 절집을 향해 숲 한가운데로 난 오솔길을 걷는 일 하나로도 마음은 순해진다.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의 가르침 목적도 사람들에게 이런 마음을 갖게 함이 아니겠는가.

마침 사찰의 숲이 가장 아름다울 때가 바로 지금이다. 지금 송광사로, 선암사로 가는 길에서는 연초록 신록에서 녹음으로 건너갈 때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새삼 알게 되고, 이런 여린 초록의 색감이 얼마나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지를 저절로 느끼게 된다. 작고 여린 것들의 보드라운 새순에서 느끼게 되는 건 살아 있음의 감동이다. 이것이 지금, 조계산을 가야 하는 이유다. 부처님오신날이 지났어도 말이다.

조계산의 송광사나 선암사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이름난 절집이기도 하거니와 산문을 들어서 안내 현판만 따라가도 웬만한 것들은 놓치지 않고 다 볼 수 있다. 새삼 다시 말해주지 않는다 해도 그렇다.

이를테면 송광사나 선암사 모두 절집으로 드는 숲길이 훌륭하지만, 수다스럽게 말하지 않더라도 거기까지 가려면 누구나 숲길을 걸어야 한다. 스스로 걸으면서 몸으로 느낄 수 있으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러니 여기서는 두 절집에서 덜 알려졌거나, 발길이 덜 닿은 곳 얘기를 꺼내본다. 지금부터는 송광사나 선암사에 갔다 해도, 순천의 조계산에 갔다 해도 모르면 자칫 지나칠 수 있는, 그런 곳들 얘기다.


# 밖에서, 안에서 송광사를 보는 자리

두 곳 절집 중에서 송광사부터 가보자. 승보사찰로 불리는 송광사는 손꼽히는 큰 절인데, 법당들의 단정하고 정연한 앉음새가 특히 돋보인다. 송광사의 전체적인 규모는 절집 안에서는 잘 안 보인다. 주변을 둘러봐도 절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자리가 없다. 하지만 꼭꼭 숨겨진 곳이 한 곳 있다.

가는 길이 멀지 않지만 찾기가 쉽지는 않다. 절집의 일주문을 들어서 우화루를 건너지 말고 직진해 세월각과 척주당을 지나 화엄전 영역 쪽으로 50m쯤 가면 오른쪽 산기슭에 희미한 오솔길의 자취가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오르막을 걷다가 만나는 두 번의 갈림길에서 모두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송광사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자리가 나온다. 산길을 오른다지만 그래 봐야 10분 남짓이다.

내내 숲이 우거진 오솔길을 지나 그 자리에 서면 거짓말처럼 사찰 전체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지금 여기서 보는 송광사는 초록에 포위된 형국이다. 사찰이 신록에서 녹음으로 건너가는 녹색 숲의 바다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인다. 그리 높지 않은 자리에서 이런 전망이 나온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조망처에서 보는 지금 송광사 사찰의 규모도 대단하지만, 똑같은 자리에서 일제강점기에 찍은 사진 속의 송광사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지금 송광사의 법당 건물은 모두 80채 남짓인데, 성보박물관의 전시 사진을 보면 일제강점기에는 법당 숫자가 108채에 달했다. 법당의 규모도 훨씬 더 커 보였다. 옛 사진 속의 송광사는 사찰이 아니라 도시처럼 보일 정도다.

송광사 법당 안에도 절집을 조망하는 자리가 있다. 관음전 뒤편의 보조국사 감로탑 자리다. 가파른 계단 위의 탑 앞에 서면 송광사 법당의 지붕 선이 다 눈에 들어온다. 해 질 무렵, 이곳에 서면 맞은편 모후산 자락에 햇살이 비끼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어둑한 절집의 지붕과 산자락 사이로 모후산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모습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 송광사 암자를 찾아가는 길

송광사는 한때 2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암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암자 이름만 읊기에도 숨이 찬다. 보조국사가 창건했다는 보조암부터, 진국국사가 주석한 광원암, 은적암, 묘적암, 북암, 천자암…. 지금은 광원암과 천자암, 감로암, 부도암, 불일암, 인월암, 이렇게 6개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암자 터와 이름만 전한다.

송광사가 워낙 이름난 사찰이라 그런지 송광사에 딸린 암자는 덜 알려졌다. 딱 한 곳 ‘불일암’을 빼고는 말이다. 불일암은 법정 스님이 말년에 기거했던 암자다. 법정 스님은 봉은사 다래헌에서 송광사로 내려와 허물어진 암자 터에 손수 암자를 짓고 ‘불일암’이라 편액을 내걸고 줄곧 혼자 살았다. 법정 스님은 송광사 수련원장을 맡기도 하면서 불일암에서 한 달에 한 편, 글로 세상과 소통하며 지냈다.

이때 쓴 글을 엮은 수필집 ‘무소유’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자 그는 1992년 홀연히 불일암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강원 오대산 자락의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렇게 토굴생활을 하던 도중 폐암을 선고받고 투병하다 퇴원해 2010년 서울의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송광사에서 불일암으로 이어지는 대숲과 삼나무, 편백나무 늘어선 800m 남짓의 오솔길에는 ‘무소유 길’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법정 스님의 수필 ‘무소유’에서 따온 이름이다. 길 이름에 어울리려면 이 길에서는 되도록 속도를 늦춰야 한다. 그렇게 다녀온다 해도 왕복 1시간 30분이면 넉넉하다. 불일암은 법정 스님이 기거하면서 손수 만든 의자와 작은 채마밭이 딸린 암자의 소박한 아름다움도 좋고, 암자로 드는 길에 펼쳐지는 대숲의 청량감도 일품이다.

내친김에 광원암과 감로암, 부도암(율원)을 함께 이어 걸으며 둘러보는 건 어떨까. 불일암을 빼고 난 나머지 중에서는 감로암의 정취가 가장 낫다. 감로암 담 밖에는 맞은편 산자락을 마주 본 채 비석을 짊어진 거북이가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형상의 원감국사 보명탑이 있다. 탑 뒤로 보이는 맞은편 산자락의 초록이 마치 수채화 물감으로 칠한 배경 같다.

송광사의 암자 중에서는 둥치를 뒤틀며 자라는 800살 수령의 곱향나무 노거수 두 그루가 법당 뒤를 지키고 있는 작은 암자, 천자암도 빼놓을 수 없다. 송광사에서 천자암은 걸어서도, 차를 타고도 갈 수 있다. 송광사 뒤편의 숲길로 걸어가면 1시간 30분 남짓 걸리는데, 송광사에서 나와 차를 타고 가면 20분이면 암자 앞까지 간다. 차를 타고 가도 암자까지는 가파른 산길을 10분 정도 더 걸어 올라야 하지만, 신령스러운 곱향나무를 만나는데 바치는 노고로는 황송하다.


# 선암사 암자에서 보아야 하는 것

조계산 동쪽 자락의 절집 선암사는 이른 봄의 경관을 최고로 친다. 나른한 봄날, 칠전선원 담벼락에 줄지어 선 600년 묵은 매화나무에 고매화가 피어 그윽한 향기를 뿜어낼 때 선암사의 아름다움을 노래로 비유하자면 ‘절창(絶唱)’이다. 매화 필 때 선암사의 정취야 익히 알려졌지만, 매화도 지고 벚꽃도 다 지고 난 뒤에 선암사 경내에서 피어나는 연분홍 겹벚꽃의 아름다움을 아는 이는 적다. 선암사 겹벚꽃은 피어 있을 때도 그렇지만, 질 때도 절집 마당을 분홍빛으로 물들일 정도로 강렬하다. 그렇다 해도 지금은 겹벚꽃도 다 지고 없을 때다. 농염하게 피었던 철쭉과 영산홍도 이제 지고 있는 중이다.

꽃이 지고 난 이즈음의 선암사는 신록과 녹음이 변주하는 공간이다. 짙은 숲 오솔길을 끼고 이어지는 물길에 놓인 아치형의 다리 승선교도, 누각 강선루도 초록의 바탕색 위에서 더 우아한 모습이 된다. 절집 뒤 편백나무 군락의 초록도 하루하루 더 맑아지고 있다. 선암사가 두르고 있는 야생차밭의 초록도 마음을 정갈하게 씻어준다.

선암사는 한때 37개의 암자를 거느렸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기록으로 확인되는 선암사의 암자는 23개다. 확인된 것말고도 암자 터가 하나둘이 아니니 암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그때는 선암사를 중심으로 온 산이 다 불법 수련장이었으리라. 그렇게 많던 암자가 일제강점기에 6개까지 줄었다가, 여순사건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모두 폐허가 됐다.

지금 남아 있는 선암사의 암자는 4곳. 그중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을 한 곳만 고르라면 단연 대각암이다. 대각암은 대각국사 의천이 짓고 머물렀던 암자라고 알려져 있다. 대각국사는 11살에 출가한 고려 문종의 넷째 왕자로 송나라에 유학해 수많은 장경을 수집하고 천태종을 개창한 고려 불교의 선각자다. 대각국사는 이곳 대각암에 머물면서 선암사를 고려 제일의 거찰로 중창했다고 전해진다.

암자에 깃든 이런 거창한 의미와는 사뭇 다르게 대각암은 소박하기 짝이 없다. 근래 중건한 본당에 누각 형식의 대선루, 그리고 요사체 하나가 암자의 전부다. 그럼에도 이곳을 꼭 가보라 권하는 건 누각 ‘대선루’ 때문이다. 신선을 기다린다는 뜻의 현판을 달고 있는 대선루의 마루에는 누군가 놓아둔 투박하게 짠 나무 의자 하나가 있는데, 거기 앉아 있으면 누각 앞의 사각 연못과 초록의 풍경이 나무로 짠 창문 가득 펼쳐진다. 잠깐만 앉아 있어도 들숨과 날숨에 초록이 묻어날 것만 같은 자리다. 지금 암자를 찾아가 그 자리에 앉으면, 볼 수 있겠다. 절집과 암자가 지어지고 허물어지고 또다시 지어진 자리에서 그 시간의 겹과 겹 사이로 지금 봄날의 신록이 또 찰나처럼 지나는 장면을….

순천=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전남 순천의 조계산 송광사 경내에서 암자 불일암으로 이어지는 ‘무소유길’에서 만난 청량한 대숲. 왼쪽부터 선암사로 드는 계곡길의 누각 강선루. 선암사가 거느린 산내 암자 대각암의 대선루 마루에 놓아둔 의자. 여기 앉으면 눈 돌리는 곳마다 초록이다. 송광사 암자 불일암에 남아 있는 법정 스님의 자취. 송광사 천자암의 법당 뒤에서 자라는 쌍향수. 기이한 형상의 800살 먹은 곱향나무 두 그루가 신령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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