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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을 위한 의무

기사입력 | 2019-05-10 12:00

양방언 재일 한국인 음악가

다른 환경의 사람 주장 각각
‘백지’같은 분위기 긴장 고조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
그것이야말로 공존의 참모습

평화, 말은 쉽지만 큰 대가
공존 의무와 의사표시 중요


‘공존’이란 말은 듣기에는 좋지만 실제로는 그리 간단하고 쉬운 말이 아니다. 특히, 여러 장소나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는 각자의 주의나 주장이 있고, 공존으로 향하는 입구조차 보이지 않는 때도 더러 있다. 함께 모였다는 건 좋지만 ‘이제 어떻게 하지’ 하는 ‘백지’ 같은 분위기가 될 수도 있다. 시작할 때는 모르는 사람들끼리, 서로 경계하거나 거리를 두곤 하는 일도 많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늘 따르는 긴장감도 결코 나쁘진 않다. 이제부터 어떻게 분위기를 풀고 뭔가 이뤄낼 수 있을까, 어떻게 모두가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긴장감도 오히려 즐거운 것이다.

공연을 준비하다 보면, 이벤트나 영상 제작의 취지나 연주하는 뮤지션의 이미지 또는 주장이 생각보다 강하거나, 여러 요인으로 현장이 정리되지 않는 일도 다반사다. 게다가 프로젝트가 해외에서 진행될 때라면 정리하기가 난감하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트러블에 휘말리기도 했다. 생각 밖의 아픔을 겪을 때는 속이 쓰리다. 하지만 ‘아프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피부로 느끼고 배우고, 그 가운데서 가장 안전한 루트를 택하는 ‘야생의 감’ 같은 게 발달해 온 것 같다.

한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과의 제작 프로젝트도 많다. 이는 보통 수단으론 안 된다. 특히, 최근 젊은 세대는 재치가 제법 늘었지만, 이전에는 상대하기가 벅찼다. 인상에 남은 것 중 하나가 중국에서 영화 음악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제작은 중국 정부와 함께했고 감독 등 스태프도 중국인이었으며, 무대가 티베트였기 때문에 많은 배우가 티베트인이거나 중국인이었다. 음악은 한국에서 내가 참여했고, 촬영팀은 일본에서 왔다. 진짜 공존을 그림으로 그린 국제적 프로젝트로, 내가 아주 좋아하던 티베트가 무대이기도 해서 기꺼이 참여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일하기 어려운 현장이었다.

해발 3600m의 티베트 라싸 공항에 내린 순간부터 얼굴 피부가 내 게 아니라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고산병 증세였다. 현지인들은 잘 적응돼 괜찮았지만, 해발 0m에서 올라온 일반인으로선 죽을 지경이었다. 내가 사는 곳이 해발 1000m 지대이니 괜찮겠지 했지만, 전혀 도움되지 않았다. 특히, 해발 5000m 호수에서 촬영할 때는 걷기만 해도 매우 숨이 가빴다. 꼼짝하지 않고 있어도 심장 고동이 크게 울릴 정도였다. 동행한 영화 스태프 중 한 사람은 현지 도착 직후 머리가 깨지는 것 같다고 하소연하기에 급히 하산시켰다. 그런데 그 가혹한 환경에서 밤새 촬영한 그 영화는, 제작 도중에 NG가 나 버렸다. 이는 티베트·국제프로젝트·공존이라는 키워드에 딱 맞는, 내겐 매우 흥미로운 프로젝트였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치도, 쉽지도 않다는 큰 교훈을 주었다.

화제를 돌려서, 내가 요즘 음악을 통해 하고 싶은 것은, 평소 연결되지 않던 사람이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것은 표현 방식을 바꾸면 공존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말이 아니다.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국립극장의 ‘여우락 페스티벌’도 그중 하나다. ‘여우락’은 국악이라는 음악을 현대의 젊은 세대나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린다는 취지의 축제다. 2013년 내가 초대 예술감독을 맡은 이래 현장에서 많은 뮤지션과 청중의 쉽지 않은 만남의 장이지만, 많은 사람의 힌트나 때로는 용기가 돼 차례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오래 음악을 해온 사람으로서 연주하는 것만이 아니라 중요한 역할을 느꼈다.

마찬가지로, 2013년부터는 아버지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제주 판타지―제주 뮤직 페스티벌을 기획·제안하고 예술감독으로 참여했지만, 제주도의 경관 좋은 야외에서 빼어난 음악이 울려 퍼지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음악의 클라이맥스에서 바다로 석양이 질 때 자연경관과 음악이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국카스텐에 이어 쿠바의 천재 색소폰 주자 세자르 로페스가 연주할 때는 2만여 관객이 음악 장르의 장벽 없이 그곳의 풍경과 공기와 음악을 공유하고 있었다. 수준 높고 기분 좋은 음악을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똑같이 즐기는 모습, 그것은 내게 공존의 참모습이었다. 일본에서도 오는 6월에 도쿄(東京)의 중심지 히비야(日比谷) 공원에서 열리는 패럴림픽과 연계된 장애인운동회에 참가해 연주한다. 여기에서는 어디까지나 음악이 주역이 아니라, 주인공인 선수들을 음악으로 응원한다는 형식이 매우 마음에 들었고, 장애인 선수 뮤지션과의 합동 공연도 예정돼 있어 정말로 기다려진다.

또 하나, 2015년 11월 파리에서 유네스코 창설 70주년 오프닝 기념식을 한국이 담당했을 때의 이야기다. 그 기념식은 평화를 테마로 한 공연이었지만, 내가 유네스코의 평화예술대사를 맡고 있었다는 인연으로 곡을 만들고 연주도 했다. 다행히 공연은 호평을 받았고, 종연 후 모두가 평화를 누리고 또 기원하며 웃는 얼굴로 그 현장을 떠났다. 그러나 바로 1주일 뒤 파리 바로 인근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강렬한 허무감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테러는 직전에 있었던 평화의 상징인 유네스코 70주년 기념행사에 대한 안티테제(반정립)로서의 행위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테러가 일어난 곳이 ‘라이브 하우스’라는 콘서트장이었다는 사실도 큰 충격이었다. 바로 전에, 스리랑카에서도 자폭 테러가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

평화나 공존 등을 말하긴 쉽다. 하지만 그 대가가 큰 경우도 있다. 그래서 공존을 향한 의무와 그 의사표시를 계속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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